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세계 각지에서 변화의 파고가 밀려왔다. 특히 1830년 초에 출현한 철도혁명은 속도 면에서 수운과 마차를 앞지르며 교통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말과 수운에만 의존하였던 이전의 운송방식, 즉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 등의 제한으로 자급자족 경제에 머물러있었지만, 증기라는 새로운 동력은 빠른 속도를 내세워 공간과 시간의 지도를 재편하였고, 이에 따라 활발한 물자교류를 촉진하며 저렴해진 가격을 통해 새로운 시장이 개척되었다. 1869년 미국의 대륙횡단철도 완공과 운영도 그러한 예 중 하나이다.
최근에 출판된 영국의 철도저널리스트인 크리스티안 월마가 쓴 《철도의 세계사》에서도 이에 관한 내용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우유를 마시기 위해 시내의 농장에서 젖소를 키우던 뉴욕시민들이 1841년 뉴욕~에리 간의 철도가 개통되면서 해당 농장을 폐쇄하였다. 또한 영국 해안가의 음식이었던 피시 앤 칩스가 영국의 대표적인 메뉴로 부상한 것 역시 신교통수단인 철도 덕분이었다.
이렇듯 철도의 출현은 근대 서구사회에 있어서 산업혁명의 밑바탕이 되며 새로운 시장 개척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철도의 출현은 동양사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화와 산업화가 서구문명 우월주의, 시장 개척 및 미개한 지역의 개화라는 제국주의 명분을 가지고 급속하게 동양사회에 침투했고, 서구권의 각국도 앞 다퉈 진출했다. 특히 철도는 첨병역할을 맡게 되며 강력한 서구의 힘을 동양 국가에 각인시켰다. 영국의 인도에의 철도건설이나 시베리아철도가 그러한 예이다. 특히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시베리아철도는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까지의 구간이 9,289km이며, 1,520mm의 광궤를 가진 철도로, 서쪽으로는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독일, 프랑스까지 연결되었고, 동쪽으로는 당시 동청철도를 통해 하얼빈과 만주, 한반도 그리고 일본까지 연결되었다.
당시 동아시아 정세는 1894년 청일전쟁으로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1905년 러일전쟁은 일본이 한반도를 발판삼아 대륙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철도는 그 중심의 하나였다. 시베리아철도와 동청철도 그리고 영국, 프랑스 등이 동아시아의 철도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였고, 시베리아철도와 동청철도, 만주철도를 둘러싼 치열한 각축전이 전개되었다.
동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이 깨지게 된 것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우리나라가 일본에 합병된 때부터이다. 철도는 일본의 식민지 경영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일본은 철도 이외에 재정, 토지 분야에서도 철저히 식민지적 경영을 수행하였다.
합방 후 일본은 철도를 대륙과 연결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우리 철도는 1911년 만주철도와 연결되며 일본과 만주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었다. 1917년 일본은 만주와 우리나라의 일체적 경영을 위해 우리 철도를 만주철도에 위탁경영시키고 1925년까지 만주철도가 이를 운영하게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철도는 전쟁을 위한 군사적인 목적을 가지고 일본 군부의 대륙정책에 이용되었다. 1925년에 조선총독부에 철도가 다시 환원되지만 1927년 조선철도 12년 계획을 통해 북쪽의 함경선과 두만강을 지나 만주철도와 연결되는 이른바 ‘동해의 일본호수화 정책’이 실현된다. 이를 위해 철도는 만철 쪽에서 길회선이 부설되고, 항만으로 나진항이 개발되며, 청진항과 나진항이 만철에 위탁경영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만주를 둘러싸고 중국과 러시아, 일본, 미국은 군인과 군수품 이동에 필요한 교통로를 확보하는 데 혈안이 되었고, 각국 간의 경쟁이 심화되며 동아시아는 국제적인 분쟁지로 바뀌어갔다.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으로 철도는 전쟁수행의 수단이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그 소용돌이에 들어가게 된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철도는 대륙과 연결, 만주와의 일체적 경영전략, 동해의 호수화 전략 등 전쟁수행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가장먼저 식민지화된 타이완과 사할린, 만주의 철도 역시 제국주의 수단으로 운영되었다.
동아시아에 있어서 철도가 가져온 변화와 그 역할에 대해 초점을 맞춰보고, 각국의 비교를 통해 공통점과 차이점, 제국주의가 가져온 영향 역시 구체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토지, 자본과 철도와의 관련성, 지역에의 영향력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동아시아 철도는 각자의 여건과 문화를 가지고 발전해왔다. 일본은 국유철도와 사설철도를 함께 운영하다가 1987년 민영화 이후 사설철도 위주로 운영해왔다.
---「제1장 ‘서장’」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