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16-18세기의 영국의 시누아즈리와 영국 계몽철학자들의 유교적 계몽주의와 도덕철학을 겸허하고 정직하게 답파했다. 영국 계몽주의 사조에 대한 이 답파과정은 계몽주의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조지 뷰캐넌, 프란시스 베이컨, 로버트 버튼, 존 밀턴 등의 바로크 사조를 발판으로 삼아 존 웹, 윌리엄 템플, 아이작 보시어스로부터 나다나엘 빈센트, 존 로크, 섀프츠베리, 존 트렝커드와 토마스 고든, 매슈 틴들, 프란시스 허치슨, 데이비드 흄, 아담 스미스에까지 이르는 기나긴 사상사적 궤적을 그렸다.
영국의 이 계몽주의 사조 안에서 공자철학의 공공연한 수용 측면에서는 웹, 템플, 빈센트 등이 부각되고, 공맹철학의 접붙이기·짜깁기(패치워크) 식 리메이크 면에서는 뷰캐넌·밀턴·베이컨·로크·섀프츠베리·흄·스미스가 돋보인다. 뷰캐넌과 밀턴은 패치워크 면에서 비교적 성공적이었으나, 공맹철학을 성서구절들과 이음새 없이 짜깁기하고 접붙이는 데 실패함으로써 정치적 곤혹을 치렀다. 그러나 뷰캐넌의 사상은 암암리에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의 배경이념으로 기여했고, 밀턴은 서양 정치사상의 획기적 발전에 기여한 것 외에도 기독교를 교묘하게 중국화·유교화한 ??실락원??과 ??복낙원??의 시문으로 불후의 필명을 날렸다. 베이컨·로크·섀프츠베리는 공맹철학을 철저히 리메이크해서 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재창조했으나, 유교적 영향과 표절의 흔적들을 여기저기서 뚜렷하게 노정하고 있다. 흄은 그의 경험주의적 인식론에 베이컨을 매개로 공맹의 경험주의를 간접적으로 받아들였고, 그의 도덕철학과 정치경제론, 그리고 종교론에는 공맹경전으로부터 직접, 또는 컴벌랜드·섀프츠베리·멜롱 등의 저작에 녹아있는 공맹의 도덕철학과 경제론을 굴절 없이 가장 온전한 형태로 수용했다. 반면, 스미스는 공자철학을 거의 그대로 ‘표절’해서 자신의 이론체계를 독창적으로 비치게 꾸미는 한편, 어느 측면에서는 자신의 관점에서 공맹철학을 굴절시키고 틂으로써 자신의 이론체계를 불구화시켰다. 스미스가 특히 공맹의 인·의·예의 순위를 의·예·인의 순위로 바꾸다가 거듭거듭 자가당착에 빠져 경제학과 국가기능에서 복지를 배제하기에 이르는 대목에서는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진다. 동양에서 순자荀子도 ‘예’를 ‘인’보다 앞세움으로써 공맹철학을 굴절시키고 삭감해 자신의 이론을 스스로 약화시켜 정통유교로부터 내쳐졌었다.
케네가 공맹과 사마천의 농상양본주의를 농본주의로 단순화해 ‘상본주의商本主義’를 삭제하고 상공업을 차별하는 ‘중농주의’를 수립함으로써 스미스의 비판을 초래했다면, 스미스는 경제이론에서 케네의 중농주의와 중국의 농본주의를 암암리에 모방해 농업을 특화하고 중국제국의 복지·교육기능을 삭제하고 도덕철학에서 인혜를 정의보다 뒤로 돌림으로써 ‘야경국가론’의 창시자로 비판받게 된다. 케네와 스미스의 이런 삭제와 굴절이 바로 흄의 공자 수용과 다른 점이다. 영국 계몽철학자들이 공맹철학을 삭감 없이 완전하게 수용했더라면 그들의 이론은 더 완전했을 것이고 그 이론들의 생명력은 더 강했을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야경국가적 자유시장론은 상술된 약점으로 인해 영국에서 국가정책으로 실현되기까지 많은 저항에 부딪혔고 또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런 까닭에 공맹·사마천과 중국의 상본주의적 화식론에 더 충실했던 스위스가 영국을 앞질러 농·상 양본주의 자유시장 경제를 확립하고 유럽제국을 사상적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근대 독일과 스위스의 유교적 계몽주의??에서 상론하듯이, 1830년대 초 스위스의 발전에 놀란 리처드 콥덴이 앞장서 1846년에 겨우 곡물금수법을 폐기하고 1860년 프랑스와 통상조약 체결을 밀어붙였을 때에야 아담 스미스의 경제철학이 비로소 영국 땅에 발을 붙일 수 있었다. 영국정부가 이렇게 곡물금수법을 폐기하고 자유교역정책을 채택한 것은 ??국부론??(1776) 출간 무려 70년 만의 일이었고, 정조의 신해통공 조치(1791)보다 55년이나 뒤진 일이었다.
이 책은 공자의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만 다룬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공자철학과 중국문화의 유입과 중국열광 분위기에 저항하던 박스터·워턴·버클리·디포 등 영국의 위정척사파들도 상론했다. 특히 디포의 여러 소설과 에세이에 대해서는 집중분석을 수행했다. 디포의 상세한 분석과 논파는 디포를 활용한 막스 베버의 근대이론에 대한 비판에 아주 긴요하기 때문이다. 그밖에 공자철학과 중국정치문화를 신봉하고 홍보한 영국철학자들도 많이 논했다. 그들은 애디슨, 포프, 체임버스, 월폴, 버젤, 존슨, 골드스미스, 퍼시, 기타 익명의 저자 등도 상론했고, 중국정원론과 영국정원론 및 영국 낭만주의의 기원에 대해서도 아주 자세하게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계기를 통해, 그리고 어떤 만남을 통해 영국 계몽주의가 더욱 급진전하게 되었는지가 해명되었다. 특정 계몽철학자가 처한 정황과 그의 텍스트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영국계몽주의의 거장들인 로크와 섀프츠베리, 흄과 스미스의 텍스트들이 정밀하게 분석되고, 그 사상적 근간이 공자철학이나 중국의 정치문화, 정치제도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연관과 맥락들이 처음으로 분명하게 밝혀질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그리스와 기독교로부터 유래한 서구 고유의 이념으로 잘못 알려진 로크의 ‘자연적 자유와 평등’ 개념, 흄과 아담 스미스의 자유시장론, 섀프츠베리와 흄·스미스의 비非종교적·세속적 본성도덕론, 흄의 근대민주국가론 등이 모조리 ‘극동산’이라는 것이 이 책에서 명약관화하게 해명되었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영국 계몽철학자들의 사상은 프랑스나 독일의 철학보다도 ‘유럽적 근대’를 창조하는 데 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구 계몽사상을 공자철학적 영향의 시각에서 분석하는 ??근대 프랑스의 공자열광과 계몽철학??에서는 프랑스 계몽주의를 집중 분석한다. 여기서는 특히 피에르 벨, 볼테르, 케네, 루소, 다르장송, 르클레르, 실루에트, 멜롱, 디드로, 엘베시우스 등이 탐구된다. 그리고 위정척사파로서는 페넬롱, 말브랑쉬, 몽테스키외가 집중 분석 분석된다. 그리고 ??근대 독일과 스위스의 유교적 계몽주의??에서는 푸펜도르프, 라이프니츠, 크리스티안 볼프, 프리드리히 2세, 요한 유스티, 오스트리아의 요셉 2세, 스위스의 알브레히트 폰 할러 등이 집중 탐구된다.
--- 맺음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