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나라 수렵, 목축, 제사를 통해서 본 삶의 세계 구축과 신, 인간, 동물의 관계
상대의 가축들은 이러한 길들이기 방식을 통해서 야생동물과 구별되었다. 상대의 사육 기술은 야생동물에게 가해진 기술적이며 제한적인 폭력이었다. … 제사에 바쳐진 희생은 사육 기술에 의해서 길들여진 동물 중에서 특별한 것을 선택하여 도살하였다. 상대 사회에서 목축은 수렵보다 자연의 힘을 통제하는 데 훨씬 덜 위험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양자는 각각 동물을 향한 직접적인 폭력과 길들이기의 차이점이 있지만, 자연에 가한 인간의 간섭과 통제의 형식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 p.24
- 상왕조의 인간희생제의에 관한 연구
상왕조는 자신들을 늘 위협하는 외부 세력에 대하여 위계의 차이를 만들고자 고심하였으며, 이는 전쟁을 통해서 획득한 포로들을 인간희생제의라는 문화적 장치를 통하여 살해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간희생제의는 상왕조의 도시에 마련된 의례 공간에서 공공연하게 거행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위계의 차이를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이를 내부와 주변 지역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방법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 p.59
- 중국 고대의 회맹의례에 나타나는 삽혈에 대하여
회맹의례에서 용혈은 살생(殺牲)과 삽혈이라는 두 가지 계기에서 보이는데, 살생(殺牲)에서의 피에는 일반적인 희생제의에서 신적인 존재에게 바치는 공경이라는 성격과 더불어 저주의 함의로서 위협적 경고의 성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삽혈에서의 피에는 동일한 피를 마심으로써 상징적으로 한 핏줄의 형제(친족) 관계가 된다는 기본적인 의미 외에, 배맹(背盟)한 사람이나 국가에게는 맹서했던 저주가 이르도록 하는 주술적 힘이 있다는 믿음이 관건을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 p.112
- 도교 희생제의에서 매개자로서의 도사의 특성과 의미
도교 제사에서 사제인 도사는 천적 세계와 세속세계를 연결시키는 중개자이다. … 도사는 제사를 통하여 신자들, 혹은 대중들에게 복과 평안을 주기 위해서 자기희생의 작업을 하는 존재이다. 그는 우주와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여 자연 재난이나 질병,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인간들의 죄를 자신이 대신 지고 그것을 속죄하는 고행적 작업을 통하여 우주의 질서를 다시금 회복시키고 재앙의 원인을 제거하고자 한다. 즉 도사 자신이 대중들을 대신하여 희생제물이 되고자 한다.
--- p.145~146
- 도교 희생제의, 그리고 제물
기본적으로 도교는 혈제나 동물희생, 그리고 기복을 위한 제사 등을 거부함으로써 도교 자체의 의례적 성격을 규정하고자 노력하였다. 육조시대 도교인들의 반희생제물, 반기복 제사의 이론은 도교에서 추구하는 것이 물질과 현세적 복락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도와의 합일을 추구하는, 순수한 구도(求道)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종교적 지향에 적합한 제물로서 등장한 대표적인 것이 경전이나 문서이다.
--- p.172
- 동아시아 불교에서의 희생제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에는 있었던 것으로 입증된 희생적 실천이 한국에서도 이루어졌다는 증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신중함은 우리가 다루고 있는 자료의 종류 때문에 정당화된다. 승려들이 쓴 ‘내부’ 자료는 거의 없으며, (승려들의 묘비명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자료는 문인(유학자)들이 저술한 것이다. … 불교 내에서 희생적 실천의 사례들은, 많은 한국 승려들이 언급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한국 내의 배불론자들-인용자 주)에게 분명히 알려져 있었으며,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이를 옹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승려들은 소신공양과 같은 행위는 보살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인도의 본생담은 모방의 대상이 아니라 단순히 보통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고양된(elevated) 모델을 보여주어 신자들로 하여금 겸허함을 느끼도록 한 것이라는 데에 동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 p.213
- 유교 제사에 나타난 ‘희생제의’와 ‘평생의례’의 이중적 성격
송대 이후 가례의 확산에서 보이는 탈희생제의화는 이러한 고대 모습(국가의 공공 제사는 ‘희생제의’의 성격, 士庶人의 제사는 ‘탈희생제의’로 차등화되는; 편집자 주)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러한 현상을 종교적 성격의 약화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희생제의적 성격의 약화가 곧바로 종교적 성격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평생의례로서의 조상제사는 또 다른 종교적 모습을 보여준다. 제사는 인간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상으로서 후손과 관계를 지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조상제사로 대표되는 유교 제사는 인간과 신,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단절과 다름이 아니라 동일성과 감응의 일치점을 찾는 의례행위라 할 수 있다.
--- p.251
- 조선시대 왕실 제사와 제물의 상징
조선시대 왕실의 제향은 한 곳에서 거행된 것이 아니라 … 종묘, 왕릉, 문소전은 각각의 역사성을 지니면서 각자의 형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 형식의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제향에 소용되는 제물의 구성이었다. 종묘는 희생을 중심으로 한 혈식(血食)을 실천하였다. … 왕릉에서 보이는 소식(蔬食) 전통은 고려시대 불교의 유습이었다. … 문소전은 같은 속례인 왕릉과는 달리 육선(肉膳)을 포함한 제물의 구성을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상식(常食)을 통한 효의 실천이었다.
--- p.288~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