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칼바람이 분다. 이런 날은 내 단골이 있는 종로5가 광장시장의 좌판주막에 가고 싶어진다. 그곳의 장터 의자엔 등받이가 없지만 서로가 어깨를 빌려주며 추위와 피곤을 이겨낸다. 서울을 삭막한 비정의 도시라고 말하는 이도 많지만 그것은 선택하는 자의 몫이다. 서울이 세월의 흔적을 점점 잃어버린다는 우려도 많지만 그것 역시 서울 사는 우리가 해결할 몫이다. 내일의 서울이 끔찍한 서울이 될지 빛나는 서울이 될지는 지금 얼마나 서울에 애정을 갖고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내게 서울은 엄마다. 날 낳아주고 길러주신 애틋한 엄마 말이다. 엄마란 그 품에 안겨 있어도 엄마가 그리운 존재. 나이 들어도 더 깊숙이 엄마 가슴팍에 파고들고 싶어진다. 아! 따뜻하다. 서울에 살어리랏다. 추억과 사랑을 먹고 서울에 살어리랏다. (/ '못 다한 연가' 중에서)
냉면 좋아하는 이들은 서로 자기가 가는 단골 냉면집이 낫다며 자존심을 걸고 핏대 올리며 본인의 단골집을 옹호한다. 평양냉면이란 게 사실 묘한 맛이라서 처음 먹어본 이들은 그 진수를 알아채기 어렵다. 그저 밍밍하다고 할 것이고 이 심심한 걸 무슨 맛으로 먹는지 의아해하기 일쑤다. 여러 번 맛을 보고 예민하게 미감을 훈련한 뒤에야 비로소 평양냉면 맛의 진미를 알게 되는데 이때 자기 입맛이 더 뛰어남을 어떡하든 증명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 어쨌든 우리에겐 그렇게 조선옥 양념갈비와 을지면옥 물냉면과의 환상의 궁합을 몇 년간 즐겼던 맛있는 기억이 있다. (/ '연가 二 을지로' 중에서)
기차를 타고 춘천을 향해 가든지 기차에서 내려 대한민국 대표 사창가인 588 쪽으로 가든지 어느 쪽을 택하든 청량리역은 욕망의 출입구였다. …… 삼삼오오 혹은 홀로이 역 주변에서 일탈을 꿈꾸는 젊음의 한 시절을 서울의 남자라면 거의 경험해봤을 터. 그들은 먼저 역전 광장의 순두부 수레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작은 리어카 안의 둥근 양철통에 담긴 뜨끈한 순두부를 조그만 양은냄비에 국자로 서너 덩어리 담아 양념간장을 몇 수저 뿌리고선 훌훌 마시듯이 먹고서야 기운과 용기를 비로소 가졌다. (/ '연가 十四 청량리 588'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