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이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는 사이, 나이 지긋해 보이는 여자가 들어왔다. 당당하고 여유롭게 카페 안으로 들어선 여자는 주문하지도 않고 익숙한 눈길로 해인과 윤지를 살폈다. 윤지 역시 익숙하다는 듯 아침에 구운 쿠키를 포장해서 카운터에 함께 놓았다.
“젊은 친구들이 아침부터 열심이네.”
“사장님, 저희 젊지 않잖아요. 호호호.”
“에이, 내 나이 돼 봐. 그 정도면 청춘이지.”
할머니뻘쯤 되는 여자는 이 건물의 주인이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있다는 말을 증명하듯, 건물주님은 여유가 넘쳐 보였다. 세입자로서 건물주를 아침마다 만나는 건 즐겁지 않지만, 얼마나 빠릿빠릿한지 그녀는 소유한 건물을 매일 돌아다녔다. 공짜로 얻어먹는 커피는 덤이었다.
“내가 뭘 봤는데, 윤지 씨.”
“네?”
안에서 커피를 내리던 윤지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평소보다 반짝거리는 여자의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혼녀라며!”
“어머! 사장님, 그거 어디서 들으셨어요? 아니, 아닌데요? 우리 윤지 아닌데?”
당황한 해인이 윤지보다 먼저 나가 해명을 했다. 아무리 세상에 비밀이라는 건 없다지만 가장 친한 친구들 외에는 말한 적도 없는 그 일이 어떻게 건물주의 귀에까지 들어간 건지 당사자인 윤지도, 친구인 해인도 당황스럽고 놀랍기만 했다.
“내가 결혼사진을 봤는데, 분명 여기 사장이었어.”
“사장님! 아니에요. 절대! 어휴, 누구 혼삿길 막을 생각 있어요?”
“전남편이 피부과 의사 맞지? 아니, 해인 처녀! 왜 이렇게 밀어?”
“어디서 닮은 사람을 보셨나 보네. 괜히 애먼 사람 잡지 마세요!”
“아휴, 그만 좀 밀어.”
해인이 건물주의 팔에 팔짱을 끼더니 문 쪽으로 걸어갔다. 거의 끌려가다시피 하면서도 건물주는 윤지를 보며 할 말이 남은 모양인지 입을 달싹였다.
“내가 궁금한 거 있으면 못 참아서 그래. 그러니까 젊은 사장, 이혼했어? 안 했어?”
“아… 사장님~ 아니라니까요.”
딸랑.
해인이 밖으로 사장님을 데리고 나갔다. 저를 위해 입 한 번 뻥긋해 주지 않는 친구들 덕분에 가끔은 정말 잊고 살긴 했다. 벌써 2년이 지났으니.
“이혼한 거 맞아요.”
두 사람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윤지는 혼잣말을 했다. 새삼 잠을 뒤척인 이유는 전남편 때문이었다. 도종우는 헤어진 것과 동시에 해외 병원으로 스카우트돼서 나갔다. 그러다 얼마 전 귀국해서 개업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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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하니 온 문자에 그가 귀국해서 피부과를 개업한 걸 알게 됐다.
“어휴. 저 아줌마 진짜 주책이야. 어디서 뭘 듣고 와서. 윤지야, 신경 쓰지 마.”
손을 부딪쳐 가며 탁탁 턴 해인이 씩씩거렸다. 윤지는 피식 웃으며 괜찮으니 마저 커피나 마시라고 잔을 다시 그녀에게 내밀었다.
“윤지야, 우리 이 동네 뜰까?”
“이번에 보증금 많이 올리시면 뜨자. 너무 세가 비싸.”
“좋은 생각. 요새 건물주들은 돈독이 올라서 세입자를 귀찮게 해. 사생활 보호도 안 되고. 이 건물 별로네~ 아, 뭐야. 비 오네. 갑자기?”
해인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우산꽂이를 입구에 두고, 문을 열고 나가 차광막을 내려서 비를 가렸다.
* * *
“결혼하자.”
“도종우, 지금 농담하는 거지?”
그러나 그의 표정을 보니 농담이 아닌 거 같았다. 분명, 진심이었다. 친구인 듯 편한 선후배 관계로 남는 동안 상대방은 얼마나 무뎌지려 노력하는지 하나도 모를 그는, 지금 이런 말조차 떨린다는 걸 알지 못할 것이다.
“결혼해. 대신, 도종우. 끝은 내가 내.”
그렇게, 그와 결혼을 했다. 결혼 생활 하는 동안 윤지는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리고 6개월 만에 트렁크 가득 제 짐을 싸서 나왔다.
“이제 그만해!”
제 마음껏 사랑하고, 하고 싶던 소꿉놀이는 끝이 났다. 여자가 그만하자고 할 땐 잡아 달라는 건데, 그는 여전히 무심하고 눈치가 없었다.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법적으로 묶여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짐을 싸서 나오진 않았을 거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