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에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성장하였다. 광주문화방송 성우를 거쳐, 《전남매일》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1996년 단편 「누에는 고치 속에서 무슨 꿈을 꾸는가」로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1999년 단편 「다시 나는 새」로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소설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장편소설 『비둘기집 사람들』로 삼성문학상을 수상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금기시되고 터부시되는 근친 간의 사랑과 동성 간의 사랑 등을 중심으로 인생과 사랑의 어두운 그늘을 다뤘던 『소수의 사랑』으로 지난한 생의 그림자에 대한 고유의 진지한 성찰력을 보여 준다는 평을 받았다.
성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현대판 남사당패라 할 만한 떠돌이 엿장수 공연단의 애환을 그려 낸 『바람의 노래』를 발표했을 때는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예사롭지 않은 솜씨로 언론의 시선을 모았다. 그의 여러 단편들을 모아 엮은 첫 단편소설집 『만두 빚는 여자』는 쓸쓸한 일상을 붙잡고 삶을 이어 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통해 삶의 숭고함을 토로해 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작품으로 단편소설집 『만두 빚는 여자』가 있고, 장편소설 『소수의 사랑』, 『바람의 노래』, 『18세, 첫경험』,『바람남자 나무여자』,『나비야 나비야』, 『흑치마 사다코』등이 있으며, 청소년평전으로 『조선의 천재 화가 장승업』, 『창조와 파괴의 여신 카미유 클로델』,『인류의 빛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등이 있다.
카미유는 표정 없는 얼굴을 뭉개 버렸다. 폴의 표정을 다시 살려야 했다. 잘 반죽된 흙은 그녀의 손끝에서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으리라. 카미유는 폴의 눈빛을 살리는 데 시간을 많이 들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폴의 눈빛이 반짝이는 듯했다. 이번에는 마음에 들었다. “안녕, 폴.” 카미유는 자신이 방금 빚은 동생에게 인사를 했다. 폴은 웃고 있었다. “누나의 세상에 온 걸 환영해.” ---p. 25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조각 생각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좀 더 생생한 표정을 얻을 수 있는지, 면과 선을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 하는지, 흙과 나무와 돌멩이의 서로 다른 질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어지러웠을 뿐이다. 흙은 부드러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무리 없이 표현할 수 있었다. 나무 또한 부드럽되 곧아, 나름대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지만 돌은 아무래도 자유롭게 다룰 수 없었다. 그때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카미유는 누군가한테 물어보고 싶었지만 주위에 가르쳐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더 힘들었다.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이 어머니의 사랑을 잃는 것보다 더 카미유를 괴롭혔다. ---p. 51
파리. 파리가 카미유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파리는 아직 카미유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파리에게 카미유는 단지 시골 출신의 순박한 소녀에 지나지 않았다. 빳빳하게 풀을 먹인 깃과 발등을 덮는 치마, 낡은 구두에 질끈 묶은 머리, 꼭 다문 입이 전형적인 시골 아가씨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카미유는 생각했다. 이제 조만간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듣게 되리라고. 꼭 그렇게 만들고야 말리라고. 카미유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세게 물었다. ---p.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