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14세에 내소사 만허선사에게 득도하고, 17세에 백양사에서 만암대종사를 계사로 사미게를 수지하였다. 18세인 1918년 12월, 성도절을 앞둔 '7일 용맹정진'에서 학명 선사로부터 은산철벽을 뚫으라는 화두를 받고 생사를 걸고 정진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7일째 되는 날, 저녁 공양을 알리는 목탁소리에 이어 종소리가 울리고 죽비소리가 탁!탁!탁! 들리는 순간 시방세계 벽이 무너지고 사면의 문이 없어져 다생겁래로 찾던 길을 알게 되었다. 22세에는 불교중앙학림을 졸업하고 중국으로 구도행을 떠나 선지식들을 참방하는 한편 북경대학에서 2년간 불교학을 공부하였다. 고국에 돌아온 스님은 주로 내소사와 월명암, 금산사 등에 주석하며 참선과 대중 교화에 전념하였으며, 선원(서래선림)을 개설하고 납자들을 제접하였다. 1969년에는 스님을 따르던 대중들이 불교전등회를 창립하여 스님을 대종사로 추대하니, 스님은 내소사 외에도 전주와 서울에 주석하시며 대중들을 이끌어주었다. 1974년 3월 9일(음) 새벽, 내소사 서래선림에서 입적하니, 세수 74세, 법랍 57년이었다.
1950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난 동명(東明) 스님은 64년 해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내소사에서 사미계를, 통도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했다. 75년 합천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고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백양사 등 제방선원에서 ‘은산철벽(銀山鐵壁)’을 화두로 참구했다. 87년 동국대 불교대학원을 졸업한 스님은 부안 내소사 주지와 조계종 종회의원, 개운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현재 전등사 주지 겸 선원장을 맡고 있는 스님은 해안 선사의 유지를 받들어 시민선방을 개설, 사부대중에게 참선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