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 위로 부드러운 것이 스쳐 갔다. 현은 눈을 반짝 뜨고 코앞의 서인에게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뭐 한 거야, 방금?”
“미, 미안해요. 기분 나쁘셨다면…… 그냥 전…….”
정신이 하나도 없다. 왜 그에게 이런 짓을 저질러 버렸을까. 서인은 경련이 이는 것처럼 입술을 떨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곧추세웠다. 정신이 나갔던 거야. 며칠 전 컴퓨터에서 보았던 앙케트가 머릿속에 갑작스레 떠올랐다. 연인들이 낭만적인 첫 키스 장소로 꼽는다는 해질녘의 강변. 다시 그를 가까이 보는 건 안 되는 일이어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저지르고 말았다. 있지도 않은 용기를 땅속까지 파내 쥐어짰다.
“제, 제가 기분 나쁠 수도 있다고 말했잖아요. 첫 키스는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고 싶어서……. 때, 때리셔도 돼요!”
“첫 키스? 하, 너…….”
현은 이를 악물고 두 눈을 꽉 감은 서인을 내려다보았다. 키 차이 때문에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움켜쥔 어깨에서 느껴지는 작은 떨림만으로도 알겠다. 그래도 그렇지, 자신을 여자나 때리는 한심한 놈으로 봤다는 말인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다 나오려 했다. 서인의 얼굴을 눈으로 훑어 내리던 현의 눈이 점차 탁하게 흐려졌다. 그가 상대해 왔던 여자들은 모두 일이면 일, 외모면 외모, 성격이면 성격, 당당하고 거침없는 이들뿐이었다. 서인처럼 소극적인데다가 둔하고 순한 여자는 처음이었다. 겁이 많고 눈물이 많은 이 여자는 의외로 끈기가 있었고 맹목적인 애정을 가졌으며 웃는 얼굴이 향기로웠다. 감동, 했달까. 현은 손을 들어 서인의 보드라운 볼을 쓸어내렸다.
“그걸 키스라고 하는 거야?”
서인이 눈을 뜨고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현의 매끈한 얼굴이 고작 반 뼘 거리에 그녀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