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조계지, 화려한 루프탑 바, 분명 중국에 왔지만 지금까지 그닥 중국스러운 모습은 없었다. ‘이럴 거였으면 아예 유럽에 스터디 어브로드를 갔지’ 하며 리얼(real) 중국을 찾아 떠난 하루.
TMI #2 기름이 없으면 차가 움직이질 않듯 나는 눈뜨자마자 아침을 먹어야 하루 시작이 가능한 인간이다. 예전에 [나 혼자 산다] #먹짱 권혁수 편을 보며 엄청 뜨끔했었는데. 나도 하루 중 아침에 가장 식욕이 폭발하는 편.
눈뜨자마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면, 내 의식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입안에 넣어버리겠다’는 몸뚱아리의 반란이 시작되고는 했다. 아침마다 나를 보며 경악하는 엄마의 모습을 되새기며, 지금은 눈뜨자마자 커피를 마시고 한 발짝 천천히 아침을 시작하고는 한다.
왜 갑자기 아침 얘기를 시작한 걸까? 이유는 상하이에서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던 도원권촌 때문. 도원권촌은 중국의 대중적인 아침 식사 메뉴를 세련되게 재해석한 프렌차이즈 레스토랑인데, 주메뉴는 중국인의 일반적인 아침 식사 음식인 또우지앙(콩물), 요우티아오(튀김빵), 빠오즈(만두), 그리고 판투안(주먹밥)이 있다. 귀여운 외모를 한 남자주인공들 때문에 몇 번 대만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주인공들이 아침밥을 먹는 장면에는 꼭 한 번씩 또우지앙과 요우티아오가 등장했다. 그럴 때면, 영화의 스토리 전개와는 상관없이 주인공에 빙의하여 저 음식의 맛을 상상하고는 했다는 건 안 비밀(한 친구가 말하기를 난 뼛속까지 돼지라고). --- p.22~23
그러던 참, 상하이에서 찾은 상하이 최초의 speakeasy 스타일 바. 그 유명한 뉴욕 맨하튼의 Angel’s Share의 헤드 바텐더인 고칸 싱고가 오픈했다고 한다. Speakeasy 바답게 이곳의 주소에 도착하면, 간판은커녕 술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셰이커, 핀셋, 칵테일 전문 서적 등이 있는 Ocho라는 바 전문용품점이 위치해 있는데,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여기가 아닌가 하고 헷갈릴 수 있다. 분명히 지도상 위치는 틀림없이 여기지만, 술을 팔고 바텐더가 있어야 할 이곳에는 바와 관련된 용품만 진열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제대로 된 speakeasy 바에 한 번이라도 방문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지금부터 게임시작이구나’ 마네킹의 손가락이 무얼 가리키는지 주의 깊게 보도록 하자!(드르륵)
비밀통로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드디어 바가 나오는데, 공간이 협소하여 주말이면 사람들로 가득 차 바 테이블이며 몇 안 되는 2인용 테이블이며 모두 가득 차 서서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3층 또한 Speak Low의 공간인데, 3층으로 올라가면 조금 더 차분하고 고급스런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메뉴 또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3층에 올라가기 위해서도 비밀을 풀어야 한다는 거.
마치 게임의 파이널 스테이지 같은 이곳에서 나는 고칸 싱고의 칵테일을 맛볼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칵테일은 이곳의 이름이자 시그니처인 Speak Low. 화려한 다른 칵테일에 비해, 투명 유리잔에 정사각형의 얼음 하나 그리고 함께 나오는 다크 초콜릿 두 조각이 다인 이 칵테일은 다소 투박해 보일 수 있지만, 고칸 싱고에게 바카디 컴패티션 챔피언 타이틀을 있게 한 바로 그 칵테일이다. 채에 여러 번 걸러 말차 특유의 떫은 맛은 사라지게 하고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셰리와 함께 감싸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역시나 이날의 마무리도 위스키. --- p.130~133
학교 기숙사 앞, 과일 가게에서도 내 안의 넉살오빠는 쉬지 않았다. 사실 이곳 주인아저씨의 첫 인상은 상당히 까칠했다. 물론 기숙사 근처에 널리고 널린 게 과일 가게였지만, 여러 곳에서 과일을 사 먹어본 결과, 이 과일 가게 과일들이 가장 신선하고 맛있었다. 비교불가 과일에서 오는 ‘이유 있는 까칠함인가’ 싶다가도, 6개월 동안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갈 것을 생각하니 또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꿈틀거렸다. 방문할 때마다 아저씨께 웃으며 인사도 건네고, 날씨가 궂은 날에는 비가 온다며 칭얼거려 보기도 하고, 무턱대고 가장 맛있는 과일을 골라 달라며 귀찮게 굴기도 했다. 내 마음이 통했는지, 얼굴에 심술이 가득했던 아저씨는 나를 보면 먼저 인사를 건네주시기도 하고, 가끔은 칭얼거리는 내 모습에 껄껄 웃으며 서비스로 과일 몇 개를 더 넣어 주시고는 했다.
수업시간에 한 중국인 남선생님이 아내와의 일화를 얘기하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상하이는 여자들의 기가 너무나 세서 남자들이 꿈쩍 못한다고. 물론 선생님이 유머스럽게 던진 농담이겠지만, 그들의 숨겨진 따뜻한 모습을 보며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이다.
상대방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내가 상대에게 얼마나 마음을 열었는지 표현하고 전달한다면, 그들 또한 움직일 것이다. 혹은 지겨운 일상에, 힘든 하루에 지쳐 가면 속에 감춰놓은 그들의 진실된 따뜻한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세상 무뚝뚝하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상하이 아저씨들처럼 말이다.
--- p.236~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