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산에 밀어닥친 재개발 사업으로 저와 가족들은 20년 동안 살았던 매봉산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옛집은 중앙외고 운동장의 모래밭으로 바뀌었습니다. 가끔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추억에 잠기고 싶을 때면 한밤중에 몰래 그곳을 찾아갑니다. 그러고는 제 방이었던 자리에 눕습니다. 그곳에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봅니다. 고작 한두 개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 별들은 제 마음속에서 잠시나마 반짝반짝 빛납니다. --- p.26
공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김혜연 선생(29세, 교사)은 “사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어릴 적부터 다른 아이들과 출발선이 다릅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할 때 실업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 실업계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학생들 개인의 행동에 향할 것이 아니라 사회 모순을 꼬집는 방식이 돼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녀는 이어 “꿈과 희망을 배워야 하는 학교에서 절망을 배우고 있습니다.” 라고 비통해했다. --- p.81
학생들이 믿는 신은 저마다 달랐다. 하지만 각각의 신들은 용공고 학생들 마음속에서만큼은 하나로 움직어야 했다. 학생들의 소원이 모두 같았기 때문이다. ‘학교와 동네까지 지켜 주시진 못하더라도 오래전부터 저 자리에 꿋꿋이 서 있던 벚꽃나무들은 꼭 지켜 주세요.’ 신들이 옥상 난간에서 자신들을 향해 기도하는 학생들의 염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였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좀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신들이었다. 옥수동 뉴타운 사업 계획 초안대로라면 저 벚꽃나무들 중 절반은 사라져야 했다. --- p.114
“싸움의 세계가 아니었다면 우린 캡틴파이브를 꺾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 사회에서 재산, 지위, 학벌이란 삼위일체를 내장한 그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이것 외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판타지가 펼쳐지는 세상이 다가올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용공고를 떠나던 2008년에는 더욱.”
매봉산과 옥수동을 배경으로 고등학생들의 성장기를 그린 이 소설은 ‘젊은 소설’을 대변할 수 있는 작품이다. 좋은 소설은 뻔한 소재를 새롭게 전달한다. 고등학교 일진 이야기는 사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다르다. 게임에서부터 삼국지라는 고전, 영화적 기법의 차용까지 다양한 장치가 섞여 있어 익숙한 이야기를 낯설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올 새로운 소설의 출현을 예견하고 있다. 마치 팝업 창이 튀어나오듯 소설 중간 중간에 삽입된 각종 인터뷰며 대화창 등은 재미뿐만 아니라 소설이 갖춰야 할 사회성이라는 덕목을 잘 보여 준다. 재미와 깊이를 다룰 줄 알고 문무를 두루 겸비한 메이저급 신인의 출현이다. 은희경(소설가) · 장은수(문학평론가) · 박성원(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