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는 오늘도 새벽에 빈 지게를 등에 붙이고 문안에 들어왔다. 광희문 밖 움집으로 온 후로 이것이 그의 매일 하는 일과이다. 그는 뱃가죽이 착 달라붙은 등에 지게를 얹고 정거장으로, 큼직한 객줏집으로, 종로로 짐을 얻을까 해서 싸대었다. 자기는 애달아서 다니건만 한 사람도 알은 척하지 않는다.
굶는 데는 단골이 박이다시피 된 철호였지마는 세 끼나 굶고 싸대일라니 땀만 부직부직 흐르고 등이 구부러서 걸음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도 신수가 궁할까! 호떡값이라두 얻어야 할 텐데!"
야글거리는 가을볕이 서쪽 산 위에 기울어지니 그의 마음은 더욱 초조하였다. 젖도 못 먹는 어린것과 그 어미가 칼칼히 마르는 형상이 눈앞에 선해서 애가 끊는 듯하다.
어느새 장안에 전등이 눈을 떴다. 종로에는 파란 불빛 아래 야시장꾼이 버글버글 끓는다. 철호는 하는 수 없이 아침에 나오던 그 꼴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버글버글끓는 야시를 힘없이 헤어 간다. 모든 것이 꿈속 같다. 인력거에 실려서 지나가는 기생이나 단장을 휘두르면서 배를 내밀고 있는 신사나 요란히 외치는 '싸구려' 소리나 좌우 전방에 늘어놓은 화려한 물품이나 모두 어째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 비치는 야시는 아무 의미의 빛 없이 보였다.
어디까지 왔는지 그는 힘없이 터벅터벅 내려오다가 보니 바른편 말간 불빛 아래 윤기가 번지르르한 밀국수가 그득 놓였다. 그는 갑자기 식욕이 치밀었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전부가 밀국수만 보였다. 그는 수난 듯이 팔을 벌리고 허둥허둥 달려들어서 그 국수를 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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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 수삼차 편지는 반갑게 받았다. 그러나 한번도 회답치 못하였다. 물론 군의 충정에는 나도 감사를 드리지만 그 충정을 나는 받을 수 없다.
―박군! 나는 군의 탈가(脫家)를 찬성할 수 없다. 음험한 이역에 늙은 어머니와 어린 처자를 버리고 나선 군의 행동을 나는 찬성할 수 없다. 박군! 돌아가라.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군의 보모와 처자가 이역 노두에서 방황하는 것을 나는 눈앞에 보는 듯싶다. 그네들의 의지할 곳은 오직 군의 품밖에 없다. 군은 그네들을 구하여야 할 것이다. 군은 군의 가정에서 동량(棟梁)이다. 동량이 없는 집이 어디 있으랴? 조그마한 고통으로 집을 버리고 나선다는 것이 의지가 굳다는 박군으로서는 너무도 박약한 소위이다. 군은 xx단에 몸을 던져 x선에 섰다는 말을 일전 황군에게서 듣기는 하였으나 그렇다 하여도 나는 그것을 시인할 수 없다. 가족을 못 살리는 힘으로 어찌 사회를 건지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