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 짜이 문화는 기차의 발달과 함께 인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기차 안에서 밤을 새운 사람들, 정시에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느라 지친 사람들에게 향긋하고 달콤한 짜이 한 잔은 피로를 풀기에 적당했다. 작은 차 한잔의 놀라운 힘은 늘어져있던 온몸의 세포를 깨워 현실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아침 잠이 안 깨고 정신집중도 제대로 안 되서 머릿속이 자고 일어난 침대보처럼 구겨져 있을 때, 커피 한 잔 마시면 마치 주름진 뇌를 다리미로 편 것처럼 머 머가 개운해질 때가있다. 인도에서는 커피대신 짜이가 그런 역할을 한다.
--- p.32
약속시간이 되어 쿠베라의 집을 찾은 가네샤는 정말 끝도 없이 먹어대기 시작했다. 먹을 것이 다 떨어지자 냄비며 수저, 가구까지 몽땅 먹어 치우더니 급기야는 쿠베라를 잡아먹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제야 시바의 경고가 떠오른 쿠베라는 겁에 잔뜩 질린 채 도움을 청하기 위해 시바에게 달려갔다. 시바는 “가네샤에게 한 줌의 쌀을 주라” 고 이야기했고, 쿠베라는 거만하게 굴었던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며 집으로 돌아가 가네샤에게 쌀을 주었다. 한줌의 쌀을 먹은 가네샤는 그제야 먹는 것을 멈추었다고 한다.
--- p.53
미누는 매번 밀가루 반죽을 새로 해서 짜파티를 만들어 주었다. 복잡한 과정도, 숙련된 기술도 필요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동글동글 예쁘고 맛있는 짜파티가 금방 완성되었다. 요리에 자신 없는 나는 밀가루 반죽이라는 말만 나와도 지레 겁을 먹었는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안 일을 습관 적으로 도운 탓인지 미누는 쉽게 만들어냈다. 서울에 오려고 짐을 쌀 때 다른 것은 다 그냥 두고 미누가 짜파티 만들 때 쓰던 밀대만 서울로 가져왔다. 내 생존의 증인 같은 밀대를 보면 그 시절 미누가 만들어 주던 짜파티가 생각 난다. 한번쯤 미누처럼 짜파티를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아직도 엄두를 내 지 못하고 있다.
--- p.60
“1947년 인도가 분리 ·독립되었을 때 페샤와르 (Peshawar)근처에서 태어난 쿤단 랄 구잘(Kundan Lal Gujral) 은 가족들과 함께 델리에 정착했다. 그 는 레드 포트 (Red Fort) 근처에 모티 마할 디럭스 (Moti Mahal Delux) 라는 이름의 작은 식당을 열고 주방 내부에 화덕을 설치했다. 채식위주의 요리가 주로 발달한 구자라트 (Gujarat) 지역에서 살았던 구잘은 델리 지역 특성에 맞게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법을 연구하다가 ‘탄두리 치킨을 메인 요리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오늘날 인도식당에서 가장 잘 팔리는 탄두리 치킨을 만들게 되었다. 탄두리 치킨의특징인 붉은색은 코리앤더(Coriander) 씨앗, 후추, 붉은 고추를 배합한 양념에서 비롯 되었다.
--- p.67
인도에는 ‘Dry Day’라는 날이 있다. 전 국민이 다 같이 옷을 세탁하는 날인가? 아니다. ‘술이 없는 날’이라는 뜻이다. ‘Dry Party’라고 하면 술 없이 하는 파티라는 뜻이다. 이 날은 술을 팔아서도 안 되고 마셔서도 안 된다. 가장대표적인 날은 8월15일 광복절인데, 인도에서 술을 금지한 날에 굳이 술을 마시려 하다가 봉변 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 p.70
어린 시절부터 먹으며 자란 익숙한 채소의 맛은 세월이 지나도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한다. 쑥은어릴때부터 제일 좋아하는 채소였고, 무뚝뚝한 충청도 사람인 엄마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쑥 잔뜩 캐다가 강낭콩 넣고 떡 쪄놨다. 시간 되면 가지러 오너라.” 용건만 툭 던져 놓고 엄마는 하염없이 나를 기다렸다. 보고 싶다는 다정한 말도, 사랑한다는 직접적인 말도아니지만 봄이 되면 자식이 좋아하는 쑥을 뜯으러 들로 산으로 향하던 엄마는 자식 입에 음식 들어 가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을 것이다. 나는 봄이오면 연분홍진 달래보다, 샛노란 개나리보다 투박한 쑥 향기를 먼저 떠올린다. 4년 동안의 인도생활에 지쳐 소박한 일상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던 것일까. 그러나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더 이상 쑥을 캐러 다닐 수 없었다. 엄마의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제는 시장에서 파는 쑥을 사고 떡집에서 파는 쑥버무리를 사야만 한다.
--- p.99
아담 리스 골너 (Adam Leith Gollner) 의 책 『과일 사냥꾼 (The Fruit Hunters)』 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고 과일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했다.
“과일을 먹으면 어린 시절의 기억뿐 아니라, 인류가 초기 진화하던 때가 떠올랐다. 과일을 즐기고있자면, 숲에서 살아 남기 위해 과일을 먹어야 했던 선조들과 피를 나눈 느낌이 들었다. 두리안과타랍 (Tarap), 바라밀을 바라보고 맛보고, 마주하면 피질하부에 있던 원시시대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맥박이 빨라진다. 이는 머나먼 옛날, 나무 사이를 오갈 때의 그 느낌일 것이다.”
그의 말처럼 어디에서든 망고를 보면 피질하부에 잠재해 있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망고 철을 기대하며 힘든 더위도 이겨내고, 대책 없이 쏟아 지는 장대비를 보면서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기분이 들었던 그 시절, 오로지 망고 먹는 재미로 버텼던 그 아득한 시간을 떠올린다.
--- p.115
혜초 스님이 인도에 도착한 해와 내가 인도에 도착한 해를 따져 보니 정확히 1,284년의 격차가 있었다. 또다시 1,284년이 지나고 나서 누군가 인도를 방문해 기록을 남길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때까지 인도라는 국가와 한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해야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내가 비행기로 9시간 걸려 도착한 그곳을 3000년대 사람들은 얼마 만에 도착하게 될지 추측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았던 순간이동이 가능해질까? 만일 그렇다면 미래의 사람들이 우리 선조들은 그렇게 힘들게 여행했다는 사실을 알고, 내가 혜초 스님의 고행에 측은한 마음을 가졌듯이 나를 가엽게 생각 할지도 모르겠다.
--- p.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