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나는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를 통해서 많은 걸 얻었다. 생태 작가라는 화려한 수식어도 달게 되었다. 실제로 그때부터 본격적인 생태 작가의 길로 접어든 셈이고, 그것이 편안했다. 잘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책 속 내용도 바뀌었다.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에 있던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라는 이야기는 따로 독립하여 새로운 책의 얼굴이 된다. 그 빈자리는 「조폭의 개」라는 이야기가 채운다. 「조폭의 개」는 최근에 쓴 작품으로, 인간이 키우는 개라는 생명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작년에 어머니가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를 완독하셨다. 초등학교 문턱도 밟아 보지 않은 당신께서 가장 두꺼운 책을, 그것도 내용을 다 줄줄 외울 정도로 여러 번 탐독하셨다. 병원에서 나와 우리 집에 머무는 동안 날마다 독서만 하신 어머니는, “내 아들이 이런 이야기를 쓰는 줄 몰랐다.”면서 책을 읽다가 울고 웃으셨다. “나는 옛날 춘향전 흥부전만 듣고 자랐는데, 니 책도 재밌구나. 동물들도 다 이래. 맞아, 다 이래…….” 그러면서 세상사를 비유하시던 어머니. 어머니가 내 책을 읽으실 때 무지무지 긴장했는데, 나쁜 평을 하지 않으니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작가의 말」
잠수 오리를 잡아먹은 구렁이는 더 이상 공격을 해 오지 않았따. 짐승들 대부분이 그랬다. 배가 부르면 절대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으면 괜히 다른 동물을 잡거나 죽이지 않았다. 사람하고는 달랐다. 사람들은 많이 모을수록 욕심을 부린다. 하지만 육식 동물들은 배가 부르면 다리를 절면서 비틀거리는 동물을 보아도 잡아먹지 않는다. 반드시 배가 고파야만 사냥을 한다. 그래서 대자연은 조화를 이룬다.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두 마리의 수달은 바위에 올라가서 함박조개를 탁탁 치더니 껍질을 깨트려서 속을 빼 먹었다. 그런 다음, 다시 물에 들어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자유자재로 수영을 하면서 앞발을 흔들고, 상체를 절반 이상 드러내 놓고 흔들기도 하였다. 30분 가량이나 정신없이 춤을 추었다. 나는 그만 넋이 빠져 버렸다. 네 발 달린 동물이 물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에 놀란 데다가, 수중발레 하는 그 멋진 모습이야말로 어떤 동물도 흉내 낼 수 없는 묘기였다. 나는 금세 수달에게 반했다. ---「나산강의 물귀신 소동」
“동물의 자유를 알아야 사람도 자유로워지는 법이다. 자기가 가지려고 하면 안 돼. 욕심을 버려야지. 꽃도 그렇단다. 욕심을 버리면 들이나 산에서 피는 게 더 보기 좋아. 하지만, 욕심을 가지면 말이다, 꼭 집안에서 피워야만 예쁘거든. 그게 사람의 마음이야. 이기심이지. 자, 시우야, 봐라. 저놈들은 사람의 간섭이 필요 없어. 사람이 멀리 있을수록 좋지.” ---「나산강의 물귀신 소동」
“할머니도 참. 다 옛말입니다. 다른 동네 사람들은 모두 족제비를 잡아서 가죽을 판답니다. 그래도 잘만 살아요. 제아무리 쥐가 번식을 많이 한다고 해도, 사람을 해치지는 못해요. 또 족제비 몇 마리 없어졌다고 해서 쥐가 늘어난다는 것도 우습고요.”
“이 사람아, 쥐 때문만은 아니야. 족제비는 여러 가지로 영악한 짐승이야. 자네도 알겠지만, 족제비는 절대로 가축을 잡아먹지 않아. 쥐나 두더지, 뱀이나 지네 같이 사람한테 해를 끼치는짐승만 잡아먹거든. 그러니 얼마나 영악한가?”
“할머니, 그래 봤자 동물입니다. 아직까지 제 덫이나 올가미를 피한 놈이 한 마리도 없어요. 그런 놈들이 뭐가 영악합니까?” ---「두 발로 걷는 족제비」
“원래 살가지는 닭이나 오리를 잡아먹고 사는 짐승이 아니란다. 산에서 쥐나 토끼, 다람쥐, 개구리 같은 동물을 잡아먹지. 때로는 새도 잡아먹어. 그놈들은 나무도 아주 잘 타거든. 살가지가 마을로 내려오는 것은 말이다, 아주 배가 고플 때란다. 산에 먹을 게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인가로 와서 닭이나 오리를 잡아가는 거야. 하지만 먹을 게 많으면 절대로 인가로 내려오지 않는다나, 암. 예전에는 말이지, 살가지가 지금처럼 극성을 부리지 않았단다. 그때는 산짐승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라. 사람들까지 산짐승을 깡그리 잡아가니까, 당연히 살가지가 잡아먹을 동물이 줄어든 거야. 그러니 어쩌겠어? 마을에 내려와서 닭이라도 잡아먹어야 살 게 아니냐?”
할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동물도 나름대로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엇다. 다만 그 생각이 사람처럼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는 걸. 무턱대고 살아가는 것 같지만, 동물도 나름대로 치밀하게 계획하고 살아가는 모양이다. 모든 동물은 사람을 두려워한다. 당연히 사람들이 키우는 가축을 도둑질하는 일을 좋아할 동물도 없다. 살가지도 어쩔 수 없이 도둑질을 할 뿐이다. 거기에는 사람들의 책임도 있다. 사람들이 살가지의 먹이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밤의 사냥꾼 살쾡이」
탈출구가 거의 다 만들어질 즈음 나는 밤송이로 그 구멍을 막아 버렸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주 하찮은 작은 쥐가 얼마나 영리하고 무서운지 알았기 때문이다. 특히 쥐의 적응력은 놀라웠다. 아무 먹이도 없는 상태에서 벌써 40일이 넘게 지냈지만 쥐는 죽지 않은 것이다. 나도 그런 쥐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편안하게 탈출하는 것을 눈감아 줄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쥐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밤송이를 밀고 탈출을 하든지 방 안에서 굶어 죽든지 알아서 하라고. ---「긴꼬리 들쥐에 대한 추억」
“난 솔직히 말해서 당신네들한테는 하나도 안 미안해요. 다만 저 개들한테는 미안해요. 내가 개들을 미워한 적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개가 무슨 잘못입니까? 당신들이 잘못한 것이지요. 개가 야생 동물이 아니잖아요? 인간이 키우는 동물이잖아요? 그럼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는 말아야지요. 개를 자유롭게 키우고 싶은 마음이야 알지만, 그 개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다 불편해하잖아요. 그렇게 만든 것이 당신들이잖아요.”
---「조폭의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