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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대처의 보수혁명

마거릿 대처의 보수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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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3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90g | 153*224*20mm
ISBN13 9788997496129
ISBN10 8997496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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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김종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KIST 선임연구원, 일본 동경대 객원연구원을 거쳤고 현 국민대학교 행정정책학부 교수이다.
저자 : 박대성
국민대학교 행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 정책연구위원을 거쳐 현 국민대학교 행정정책학부 겸임교수이다.
저자 : 서규석
연세대학교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 정책연구위원을 거쳐 현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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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처 영국 수상의 국정개혁에 관한 평가서이다. 1979년 5월 3일 선거에서 승리하여 사상 최초로 여성 수상이 된 후 1990년 11월 28일에 수상직을 사임하기까지 약 11년 7개월 동안 자신이 가진 신념(대처리즘)의 실천을 위해서 노력했던 뛰어난 여성 정치가 마거릿 대처가 개혁정책을 추진하면서 난관을 돌파해가는 정책의 결정과 집행 과정에 관한 글이다.
국내에 대처 수상에 관한 글은 비교적 많이 연구되어 있기 때문에 이 글은 대처 수상이 당내외의 반대, 이해집단과의 갈등을 극복하면서 개혁을 추진해 가는 정책집행 과정에 초점을 두고 기술하는데 연구를 한정시켰다. 특히 시장경제로의 경제 개혁과 노조와의 전쟁, 포클랜드 전쟁 등 국가 위기 시에 보여준 지도자로서의 역할분석에 더 치중하고 있다.
영국의 최초 여성수상이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11년 동안 일하면서 국가를 개조시킨 일은 우리 한국에서도 새로운 여성 대통령을 맞고 있는 때에 정책내용과 개혁추진방법에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대처가 등장하기 직전인 1979년 1월부터 3월까지 영국사회는 공공부문 노조원들의 극단적인 파업사태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달했다. 공공부문노조를 구성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병원, 의료서비스, 기타 노조원들은 주당 60파운드 최저 임금을 요구하며 연대파업에 돌입하였다. 1978년 9월부터 시작된 파업은 1979년 봄에 이르러 150만 명의 공공부문 근로자들이 총파업에 돌입하여 학교, 병원, 공항 등이 완전 마비상태에 들어갔으며 이로 인해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노인과 환자들이 치료는 고사하고 병원에 입원조차 하지 못하고 학교도 문을 닫는 등 노동문제가 근로자-사용자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정치적인 문제로 확대되었다.
노동자 파업이 시민사회를 볼모로 하는 이 사건은 공공부문 노조의 힘이 지나치게 막강하고 너무 비대해졌다는 인상을 주게 되었고, 노동당 정부는 노조에 예속되어 경제를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일반인에게 심어 주었다. 소위 ‘불만의 겨울’로 알려진 이 사태는 노동당 정부의 종말을 알리는 서곡이었으며, 국민들은 노조와의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합의의 정치’가 갖는 모순을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을 선택하게 되었다.
시장경제로의 경제 개혁, 노조와의 전쟁 등 국가 경영 과정에서 보여준 대처 수상의 강인한 태도는 역설적이지만 노동당이 만들어준 정치적 공간 속에서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정치 지도자로서 그녀가 바라 본 영국의 모습은 사회주의라는 독에 점차 마비되어간 사회, 장기적인 경기 침체를 보이는 병든 경제에 직면한 나라였다. 19세기 100여 년간 승자의 지위에 있던 영국이 무너진 이유로 그녀는 눈앞의 자기만족,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한 국가손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노동조합에 부여한 면책특권에 의하여 전후 영국이 사회주의의 톱니바퀴 시스템으로 변한데 있다고 진단했다.
그녀는 1979년 불만의 겨울을 겪으면서 영국사회가 무한정의 특권을 가진 노조, 뿌리 깊은 반 기업 정서, 국가 의존적인 문화, 낮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임금만 올리는 국영기업에 의해 마비되어 갔다고 진단하고, 이를 ‘영국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녀는 영국병을 일으킨 독성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보다 앞서간 수상들이 대증요법으로 치료하면서 내성을 키웠다고 판단하고, 환부를 도려내는 근본요법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질병을 앓고 있는 시기에 환자(영국 국민)들에게는 질병 그 자체보다 의사의 처방(대처의 정책)이 더 불쾌하게 다가가는 법이지만 환자가 불쾌하다고해서 투약을 중단하는 일이 없었다.
대처 수상은 영국병의 치료를 위해 국가를 쇠퇴의 길로 이끈 세 가지 적과 싸워 나갔다.
첫째는 내부의 적, 스카길이 이끄는 탄광노조와의 싸움이었다. 탄광노조의 파업과 정부의 대응은 9개월이나 계속되었지만 전후 30년간 영국사회를 마비시킨 노조의 일상적인 파업 관행을 뿌리를 뽑는데 9개월이란 시간으로 자동파업=임금인상이란 등식을 허무는 데 어찌 보면 그다지 긴 시간도 아니었다.
전후 영국의 사회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은 노조였고 노동당은 그 대변자에 불과할 정도로 철강노조, 탄광노조의 동의 없이는 국정을 이끌어가지 못했다. 여기에 보수당의 테드 히스정권(1970~ 74년)조차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시장경제 중시의 경제정책을 추진하다가 중도에 과거로 U턴하는 정책을 구사하였다.
노동당이 영국 경제의 무덤을 파왔다면, 보수당 또한 그런 노동당에 오염되었다고 인식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을 인수한 그녀는 반사회주의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두 번째는 포클랜드 전쟁이었다. 내부의 적이 스카길이었다면 외부의 적은 아르헨티나의 독재정권이었다. 1956년 수에즈 운하에서 철수한 이후 영국은 경제, 경제, 사회의 모든 면에서 침체를 거듭하며 제국의 명성을 잃고 ‘수에즈 증후군’에 시달려 왔다. 이를 알고 있는 그녀는 ‘잔인한 독재자가 성공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 영국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의지로 맞섰다.
이 당시 미국은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를 중재하려고 노력했고 양쪽이 철수한 가운데 국제기구에 포클랜드 문제를 맡기자고 제안했지만, 대처 수상은 미국의 어정쩡한 입장을 단호히 거부했다. ‘만일 알래스카가 침략을 당한다면 그 때 나도 이 문제를 국제기구의 손에 넘길 의사가 있다’며 레이건 대통령의 유화조치를 거부했다.
“아니, 아니죠. 제 생각으로 알래스카는 적절한 비유가 아니라고 말씀드리죠!”
“비유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개의 전쟁은 그녀에게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국가로서 영국의 영광 회복이라는 대전제 아래에서 경제의 재건이 일차적으로 중요했다. 군사력과 핵 억지력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 번째는 사회주의에 대한 혐오였다. 그녀가 그토록 사회주의를 싫어한 이유는 전쟁을 겪으면서 형성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회를 궁핍화시키고 인간을 타락시킨다는 것이 사회주의에 대한 기본인식이었다. 그녀는 소련과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를 방문하여 공산주의의 유산과 싸우는 자유주의 투사들에게 신념과 용기를 주고 사회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자본주의를 꽃피우지 못하는 요인들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자유시장경제의 도입이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순조롭게 할 것이라고 설득하였다.
그녀는 전직 수상 윌리엄 피트(1766~68년에 수상을 지낸 차텀 백작)의 유명한 말을 되뇌며, ‘나 자신이 이 국가를 구한다는 것. 그리고 나 이외에는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확신과 사명감으로 쇠퇴해가는 영국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이 신념의 정치가는 사회주의로 향해가는 물줄기를 자본주의로 사회로 되돌려놓는 것에 성공했다. 국가, 개인, 기업은 어떻게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출발점이라고 보았고, 여기에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의 철학을 접목시켜 이른바 대처리즘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철학을 바탕으로 어떤 남성도 따르지 못할 강한 신념과 의지로 쇠퇴해가는 영국경제를 살리고 국가의 이미지도 높여 놓았다.
대처 수상은 기존의 보수당 주류와는 성장 배경이 달랐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그랜섬이라는 잉글랜드 중부의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결코 풍요로운 가정이 아니었다. 그녀가 중산층 가정에서 깨달은 것은 일주일의 일을 끝내면 얼마간의 이익이 손에 쥐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한가로운 자에게는 한 줌의 파이도 없다’는 가치관이 형성되었고, 이런 태도는 그 이후에 비단 사회주의만이 아니라 보수당 내의 국가개입주의, 조합주의적 행태도 단호히 거부하는 데 작용하였다.
그녀의 정치사상적 신념에 영향을 준 교과서가 있다면, 그것은 하이에크일 것이다. 영국에서는 노동당과 보수당 정치인 모두에게 희생의 분담, 공정한 분배와 같은 사회주의에 일종의 고귀함이 깃들어있다는 경향이 영향을 준데 반해, 그녀에겐 사회주의를 풍자한 콤 브로건의 소설 ?우리의 새로운 주인?,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이 명쾌한 지침서였고, 이를 통해서 역사적 직관을 갖출 수 있었다.
대처의 정치 스타일은 정책에 관한 한 철저한 논의와 논쟁, 연설 그 자체를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연설을 위해서 원고를 밤새워 한 줄 한 줄 씩 정리하는 장면은 집착에 가깝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연설을 커다란 무기로 생각하였다. 어찌 보면 그것이 11년 이상을 장기 집권한 무기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정치의 역할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고 보았지만 공공지출을 억제하고 정부차입의 축소를 통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금리인하, 경제활동을 조성하는 등의 통화정책은 정치의 문제로 인식하였다. 그녀는 정부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조한 것이 개인의 책임성, 기업의 자유와 책임이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한 부분도 이와 같은 사안들이었다. 물론 모순점도 나타났다. 노동당 세력이 지배했던 지방자치단체를 폐지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중앙정부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일이 되었고, 토니 블레어 수상 시기에 지방자치가 부활되었다.
그녀는 현실과 통계에 밝았고 따라올 수 없는 논쟁가였다. 그녀의 이런 특질은 유럽공동체 내의 정상회담에서 잘 나타난다. 미테랑 대통령, 콜 수상, 안드레오티 수상 등이 자료와 수치를 들이대는 그녀에게 두 손을 들지 않을 수 없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오늘날 노동당 정권이 유럽분담금의 환급을 받게 되는 것도 대처 수상이 만들어놓은 업적이었다.
11년 반 동안 집권하면서 영국을 되살린 그녀의 정책 목표는 단순했다. 첫째, 모든 정책은 영국의 경제적 쇠퇴를 역전시킬 수 있는 목표에 부합할 것. 둘째, 정책 비용이 공공지출 억제 범위에 적합할 것. 셋째, 변화를 가져오려는 계속성을 확보할 것의 세 가지였다. 그녀는 이 세 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세웠다. 실패 뒤에 다음의 기회란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수상에서 물러난 계기는 뜻밖이었다. 15년간의 보수당 당수였고, 세 번의 총선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녀가 너무 오래 있다는 소리도 일기 시작하였다. 위엄을 지킨 채 물러나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 사이에 유럽은 통합유럽을 꿈꾸면서 경제 블록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움직임은 대처의 사고와는 다른 것이었고, 국내정치에서 수세에 몰리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유럽의 지역통합과 독일 통일 이후 유럽 연방주의의 대두에 그녀는 가급적 구 동독에 경제 민주화를 이룩하면서 독일 통일을 감속시키려 하였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경제 불황, 실업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유럽통합, 주민세 도입을 계기로 각료들과의 갈등이 현재화되었다. 부수상 제프리 하우나 짐 프리이어 모두 과거 정책으로의 ‘U턴’에 대한 유혹을 갖고 있었던 각료들이었고, 제프리 하우 외무상과 나이젤 로슨 재무상과의 유럽통합에 대한 견해 차이가 수상 사임을 가져오게 된 요인이 되었다. 물론 그 배후에는 날개를 감추고 당수에 도전하려는 마이클 헤즐타인의 배후 조종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비록 대처는 자신의 혁명이 모두 성공하기도 전에 다우닝가를 떠났지만 보수혁명의 기치는 그 이후에도 메이저 수상 그리고 토니 블레어 노동당 수상을 통해서 이어져 왔다. 대처 수상은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과는 달리 변화의 위험성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표현처럼 ‘대처 수상은 안락의자에 앉기보다 화약상자 위에 앉기를 더 좋아한다.’ 그것은 국가사회주의에 물든 황폐화된 경제를 재건하려는 혁명가의 자세였다.
---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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