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커다란 체험의 기억이 있다. 모두 매우 ‘잔혹한 시절’의 경험이었다. 하나는 아주 어릴 적 초등학교 때의 일이고, 다른 하나는 20대 대학교 때의 일이다. 돌이켜보면, 이 두 경험이 나를 이 연구로 이끈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1971년에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2학년을 마칠 무렵 집안 형편상 시골로 전학을 가야만 했다.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한 그곳은 오늘날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는 경상북도 청도군이었다. 그 무렵 청도는 이미 새마을운동이 한창 진행 중인 때였다. 게다가 때마침 ‘10월유신’이라는 초헌법적인 비상조치가 내려져, 일명 유신독재시절로 들어선 상황이었다. 나는 이 잔혹한 시절을 고스란히, 그것도 정신과 육체 모두 새마을운동에 가장 ‘훌륭하게’ 길들여질 수밖에 없는 여건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물론 그 시절엔 이런 것들을 알지 못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심지어 자랑스럽게 긍지와 자부심까지 느끼면서 지냈던 것 같다. 새마을운동도, 유신독재도, 장기집권에만 올인하던 박정희도 모두 최선이고 그런 조건 속에서 한국인으로 태어나 자라는 것마저 ‘행운’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당시 잔혹한 시절이 내게 걸었던 최면은 꽤 ‘성공적’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그것은 최면이자 동시에 세뇌였다. 최면술에서 깨어나면 금방 모든 것을 잊은 듯해도, 다른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뇌리에 박혀 내재화되어버리는 그 무엇이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놀라운 경험을 했다. 중학교 때 다시 서울로 올라와 바로 육영수의 암살, 몇 년 뒤 박정희의 암살이 일어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같은 반 친구들 가운데 몇 명은 천지가 무너진 것처럼 눈물까지 흘렸던 것으로 보아, 서울 학생들도 나의 청도시절과 똑같은 최면과 세뇌를 겪었던 모양이다. 고등학교시절 80년 광주항쟁과 서울의 봄이 있었지만 전혀 알지 못했다. 담임선생이 요즘으로 말하면 ‘전교조 선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지 ‘저 선생은 왜 저렇게 시니컬할까’라고만 생각했다. 놀라운 경험이란 바로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83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할 당시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패악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그 시절 대학을 다녔다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당시의 대학은 정상적인 대학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 발을 디뎠던 대학은 군사정권의 횡포가 컸던 만큼이나 그것을 부정하고 극복하려는 의지 또한 큰 공간이었다. 그러한 의지는 나를 비롯해 처음 대학에 들어선 거의 모든 학생들에게 그때까지의 최면과 세뇌, 심지어 자랑과 긍지이기까지 했던 그 무엇을 총체적으로 부정하고 거부하도록 했다. 놀라운 것은 이 역시 상당히 ‘성공적’이었다는 점이다. 비록 당시에는 많은 번뇌와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지난 10여 년간의 체험에 비하면 매우 순식간에 집단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고, 두 번째 잔혹한 시절의 시작이었다. 그동안 세상에는 우리가 몰랐던 많은 일들이 있었고 최면과 세뇌 속에서 지내던 시절에도 이를 거부하고 저항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의 발견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우리 모두가 새롭게 거기에 직면해야만 했다. 이 역시 오랜 기간의 최면과 세뇌에서 벗어나는 데서 출발하여 또 다른 정신적·육체적 훈육 과정을 거치는 고통스러운 체험이었다. 첫 번째 체험과 다른 점은, 적어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등 많은 것을 ‘생각하고 판단해볼 수 있게끔 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우리에게 또 다른 내용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유년기의 체험과 청년기의 체험, 그 가치관과 지향이 상반되는 시·공간을, 이렇게 집단적으로 동시에 경험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언제부턴가 이 상반되는 두 경험 속에서 공통점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 느낌은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져갔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인간의 생각이 어떻게 순식간에 바뀔 수 있고 그 동력은 어떤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막연하게, 1946년 초 거의 모든 국민이 순식간에 반탁운동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오랜 기간 비난하고 공격해왔던 반민족자들까지 겉으로는 ‘포용’하게 되는, 집단적 경험을 떠올리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 막연하게 알고 있던 ‘위안부 문제’가 김학순 할머니에 의해 공론화되면서, 이에 관한 1차 자료를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의 총독부문서 마이크로필름 속에서 찾아볼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제말 전시체제기와 관련된 1차 자료를 거의 볼 수 없던 시기여서, 거의 2년 가까이 매주 2~3일을 낡은 마이크로필름 기계와 씨름했던 경험은 큰 행운이었다. 비록 현존하는 한국의 공문서에는 직접적인 관련 기록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에 만족해야 했지만, 덕분에 이 시기 일제의 각종 정책에 관한 문서들을 두루 섭렵할 수 있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성과는 그동안 막연한 느낌으로만 가져왔던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인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친김에 빠듯한 사비를 털어 일본으로 가 보름 남짓 관련 자료들을 더 찾아보았다. 90년대 중반경의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렇게 1차 자료들을 찾던 과정은 그동안의 심증에 물증을 더해가는 과정이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새마을운동, 유신독재의 극악한 파시즘, 이런 것들은 내가 사료 속에서 본 일제말기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도 강한 최면과 세뇌가 작용했음을 알게 되었다. 상황과 조건이 달라지면 최면은 쉽게 깨어날 수 있지만 오랜 기간의 세뇌는 체화되고 내재화되어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체화된 경험은 성격과 지향이 전혀 다른 상반된 활동을 할 때에도 인간의 내면에서 무의식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극단적인 파시즘 체험이 남긴 내면화된 전체주의적 의식의 유재는 달라진 상황에서도 집단적인 정치·사회의식의 한 부분에서 작동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전혀 상반된 체험 속에도 공통점은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식민지 전시파시즘 아래서의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적인 체험과 이에 대한 그들의 인식부터 본격적으로 파고들고 싶어졌다. 그런데 비록 당시에는 전혀 몰랐을지라도, 극악한 유신독재시절에도 민중들의 저항과 민주화운동은 끊이지 않았듯이, 민족말살기라 칭할 정도로 극단적인 암흑의 시기에도 민중들은 더욱 강한 저항의식과 민족의식을 가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를 진행하면 할수록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놀라운 것은 강한 민족의식으로 항일운동을 모색하던 민중들조차 전체주의적 성격을 보인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짜임새 있게 잘 서술할 수는 없다 해도 이 모든 것을 사실대로 정리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이 책은 1998년에 제출했던 박사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10년이 훨씬 넘어서 이제야 책으로 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엄청난 내 게으름 탓이다. 말이 수정 보완이지 사실상 기본 논지나 내용은 박사논문과 거의 동일하다. 다만 전체적으로 좀더 체계성을 갖춰 정리하려 했으며, 민중저항의 양상 등 부분적으로 보완한 부분이 있다. 한창 논문을 쓰던 1997,8년경만 해도 요즘처럼 전시체제기 자료가 정리되어 나오거나 연구가 거의 진행되지 않던 때였다. 또 요즘처럼 수많은 역사 자료가 데이터베이스화되기 전이었다. 따라서 유언비어, 낙서 등 민중저항의 구체적인 양상 부분은 이 자료들의 도움을 받아 조금 보완했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소규모 비밀결사들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정리해볼 욕심이 있어서, 극히 일부지만 생략한 부분도 있다.
뒤늦게 책으로 내려다보니 이것저것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많고, 그 동안 고마움을 표시하지 못했던 많은 분들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30년 가까이 한결같이 역사와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일깨워주고 계신 스승 강만길 선생님께 가장 고맙고 부끄럽고 죄송스런 마음이 든다. 이미 오래 전에 이 잡다하고 긴 글을 읽고 평가하고 고쳐주신 여러 선생님들, 이 시기 연구에 직접적으로 큰 도움을 주신 조동걸 선생님, 언제나 예리한 시선으로 날카롭게 지적해주신 조광 선생님, 전시파시즘기라는 개념이나 논문의 제목까지 직접 만들어주신 서중석 선생님, 제일 꼼꼼하게 읽고 하나하나 체크해주신 지수걸 선생님께도 이제야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어 죄송스럽다. 또 오래 전 학위논문을 쓸 당시 이러저러한 도움을 주신 여러 선후배님께도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10년도 훨씬 지난 학위논문을 책으로 출판하려는 데도 흔쾌히 받아주신 도서출판 선인의 윤관백 사장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난잡하고 두꺼운 원고를 꼼꼼히 읽고 교열해주신 선인 식구들께도 감사드린다. 끝으로 혼자서 자식들 뒷바라지에 반평생을 넘게 보내신 어머니와 가족들에게도 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