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복단대학의 거자오광葛兆光 교수,
펑유란馮友蘭, 런지위任繼愈를 넘어
‘중국 철학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그 빛을 발하다
이 책은 중국의 ‘일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세계’를 연구하고 서술한 책이다.
이 말에는 약간 색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기존의 중국 철학사가 엘리트 중심의 지식과 사상을 응축한 ‘경전(經典)’을 중심으로 한 철학사, 사상사였다면 ‘일반 사람들’의 지식과 사상, 그리고 그들이 믿고 의지하던 신앙세계까지를 포함한 중국의 철학사, 사상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기존의 중국 철학사가 엘리트 중심의 ‘지식사(知識史)’에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면 이 책은 진정한 의미의 철학사, ‘사상사’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이 책이 중국에서 처음 출판되었을 때 반년이 안 돼서 초판 1만 권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책을 읽은 전문가들, 국내외 학술지, 신문과 언론들은 “이 책은 ‘어떻게 학술사’를 써야하는지에 대한 토론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론적인 측면에서는 사학史學적인 전통과 해석의 중요한 주제에 도전장을 내밀고 ‘중국 사상사의 연구’라는 새로운 장(場)을 열었다”는 등의 열띤 논평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대다수의 연구자들이 오랜 기간 동안,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고고학적 유물과 갑골문(甲骨文), 한적(漢籍)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려는 듯 이 한 권의 책을 집필하기 위해 천여 권 이상의 원전과 연구서를 독파하며, 그 동안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했던 고인(古人)과 철인(哲人) 들을 발견하고 대화하면서 자신의 사상과 지혜를 이 책에 담았다.
그 결과 10여 년의 노력이 세인들의 주목을 받으며 빛을 발한 것이다.
이 책의 구성
사상사(思想史)는 말 그대로 사상의 역사다. 이 책은 사상사의 서술 방법을 다루고 있는 도론(導論)과 고대부터 7세기 이전까지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세계’를 다룬 4개의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론은 ‘사상사의 서술 방법’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도론은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세계에 대한 개념, 지식사와 사상사, 사상사 연구에 있어 고고학적 유물과 사상의 토대를 이루었던 자료들, 그것에 대한 새로운 해석 등을 다루고 있다.
제1편은 ‘아득히 먼 고대’의 사상을 주제로 하고 있다. 즉 상고시대 사상 세계의 재구성, 복사에 나타난 은인(殷人)들의 관념 체계, 주나라 시대의 잔존 문헌과 청동기 명문에 보이는 사상의 발전, 사상사로서의 한자, 의식과 상징과 숫자화한 세계 질서 등을 다루고 있다.
제2편은 ‘축심의 시대’이다. 춘추 말년에서 전국시대, 즉 기원전 6세기에서 3세기까지 중국의 사상사는 나름의 독특한 사상 체계를 갖추게 되는데, 그 사상이 이후 2천여 년 간 중국을 지배하게 된다. 그래서 이 시기의 유가, 도가, 전국시대의 엘리트 사상과 일반 지식, 백가쟁명과 우주시공, 사회질서, 개인 존재, 언어와 세계 등을 다루고 있다.
제3편은 ‘백가쟁명의 미성(尾聲)과 중국 사상 세계의 형성’을 주제로 한다. 진한의 통일 제국 이후 중국 사상 세계는 방대하고 복잡해지면서 한편 낡은 것을 뒤집고 새로운 것을 내놓으면서도 동시에 서로 융화되고 통합되는 시기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진한 시대의 고고 유물을 바탕으로 진한 시대의 보편적 지식 배경과 일반 사상의 수준, 철리의 종합, 국가 이데올로기의 확립, 일반 지식과 정영사상의 상호 관련 및 그 결과 등을 다루고 있다.
제4편은 ‘이역(異域)의 바람(風)’이다. 중국의 사상 세계는 춘추전국의 분화를 거쳐 한나라 시대에 이르면서 점차 온갖 하천이 바다로 몰려들 듯이 외부로부터 흘러들어온 사상과 융합한다. 때문에 중국 고유의 자원에 대한 끊임없는 재발견을 통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아나간다. 특히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외래 자원은 바로 인도에서 생겨난 불교였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한(漢)나라와 진(晉)나라 사이의 고유 사상과 변화, 3세기 사상사의 전환, 도교 사상, 지식과 종교화 과정, 불교의 동방 전래와 그 사상사적 의의, 불교가 중국을 정복했는가?, 7세기 중국의 지식과 사상 세계의 윤곽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특징
1. ‘일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 세계’를 사상사에 집어넣다
이 책이 발간된 이후 몇 가지 문제에 관한 토론이 특히 격렬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세계’를 사상사에 집어넣을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사상의 자료를 어느 범위까지로 확장시킬 것인가라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사상사가 일반인과 사회의 제도화, 상식화, 및 풍속화 등 오늘날의 우리가 문화사의 내용으로 간주하는 것까지를 과연 사상사에 포함시킬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기존의 관념을 뛰어넘어 일반 지식과 사상에 관련된 주제들을 포함시킨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 신앙과 수술, 방기에 관한 전통적인 지식까지를 사상사에 편입시킴으로써 ‘중국사상사’를 새로 쓰고 있다고 하겠다.
2. 사람들의 기억 속에 희미해진 내용들을 되살리다
사상사에서는 ‘가법(加法)’과 ‘감법(減法)에 과한 논쟁이 있다. 이는 사상사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내용들을 다시 토론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이다. 삭제된 내용을 다시 역사 위로 끌어올리는 것은 당시의 진실한 문화 환경을 반영하는 일인가? 만약 이러한 내용을 발굴하지 않는다면, 과거를 오독하지 않겠는가?
사실 우리는 그 시대의 소수의 엘리트들만이 누리고 향유하던 사상과 그 시대의 민초들의 삶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소수의 엘리트들의 사상과 지식만을 사상사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시대를 살아가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까지를 포함시켜야 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일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세계’를 사상사에 집어넣은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 오늘날 우리가 과학사나 기술사, 학술사, 교육사라고 부르는 영역까지를 모두 사상사에 끌어들임으로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 희미해진 내용들을 되살리고 있다.
3. ‘인물’과 ‘경전 혹은 저서’를 중심으로 한 장절 구분을 넘어서다
그 동안의 사상사는 거의 모두가 ‘사람’과 ‘책’을 중심으로 장절(章節)을 구분하여 서술한 것이다. 즉 사상사에서 비중 있는 사람과 저서를 우선으로 하여 장절을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상사가 과연 역사의 맥락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이전의 축적된 사상의 흐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공자의 사상의 나타나고, 도가의 사상이 나타날 수 있겠는가? 또한 이 문제는 사상사의 시기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존의 틀을 무너뜨리고 글을 쓴다는 게 그리 쉽지 않다. 이는 기존의 교과서식 장절 형식으로 서술된 사상사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곤혹감을 줄 수도 있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러한 기존의 틀을 넘어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상의 맥락이 이어지도록 편과 절을 나누었다.
4. 중국 학계에 적지 않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다
이상 여러 가지 문제들은 중국에서 여전히 쟁론 중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문제와 논의가 결국 ‘철학’인가 ‘사상’인가라는 문제까지 야기했다는 점이다. 원래 철학은 서구의 개념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서양의 기존 철학 개념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신발에 발을 맞추는 격이 될 수 있다. 또한 중국의 사상과 지식을 오해하거나 곡해하지 않는 이상 상호 부합되지 않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부분이 적지 않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이란 용어는 원래 중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의 이른바 도술(道術), 이학(理學), 심학(心學), 현학(玄學) 등은 서구의 철학과 의미가 다르다. 이러한 논쟁은 서양 학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켜 유럽 학자들도 장편의 서문을 발표하며 논쟁에 참가하였다. 이 책으로 인해 이러한 토론이 서양 학계뿐만 아니라 중국 학계를 자극하여 보다 심층적인 문제들을 사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도 이 책의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