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샅은 아이들 숨기놀이 하기로도 안성맞춤이었다.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구태여 그럴 것도 없다. 사방 천지가 꼭꼭 숨기에 안성맞춤이니까. 담장 바닥에 쪼그리거나 웅크려도 되었다. 고샅을 낀 어느 집이건 뛰어들어 숨으면 그만이었다. 부엌도 좋고 뒷간도 적격이다. 심하면 마침 식구들 없는 틈을 타서 사랑채에 몸을 숨겨도 되었다.
“날 잡아내면 용치!”
“머리카락도 안 보이지? 용용 죽겠지!”
이쯤 되면 숨바꼭질이며 술래잡기의 재미가 솔솔 나게 된다. 그 재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친다. 술래는 벼름벼름, 고샅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자니 눈에 피멍이 들 지경이다. 하지만 워낙 술래 자신이 그 전에 하고 많이 숨어본지라, 그 경험을 살려서 그물 코 꿰듯이 뒤지고 살피고 다니게 마련이다. 그러자니 애가 타서 씩씩대고 약이 올라서 얼굴이 불그뎅뎅해진 채로 여기 들여다보고 저기 살펴보고 한다. 속옷 펼쳐서 이 잡듯이 뒤지고 다닌다.
하지만 숨는 아이들은 제 나름의 비밀 작전을 펼친다. 전략을 써도 아주 단단히 쓴다. 어느 집 뒤뜰이나 장독간 틈에 숨어도 되었다. 장독 뚜껑을 머리에 쓰고 옹그리면 경찰수사대나 군대의 수색대가 와도 들킬 염려가 없다. 그야말로 ‘난공불락(難攻不落)’, 적들의 백만 대군이 덮쳐 와도 거뜬히 숨은 자리를 지켜낼 것이다.
이래서 고샅은 숨바꼭질이며 술래잡기의 천하 명소가 되고 명당자리가 된다. ---『이젠 없는 것들 1』pp. 16~17
인간의 놀이 문화 연구에서 큰 공을 세운 호이징가는 놀이의 종류 가운데 하나로 ‘미메시스의 놀이’, 즉 ‘흉내 내기의 놀이’ 또는 ‘모방의 놀이’를 들어 보였는데, 아이들의 팔랑개비 돌리기는 비행기의 미메시스 놀이인 셈이다. 그러니 발은 땅을 밟고 뛰지만 팔랑개비 놀이를 하는 아이는 마음 또는 상상으로는 창공을 드높이 날고 있는 것이다. 바람개비 놀이는 날기 놀이다.
그렇게 한참을 뛰다가 그다지 높지 않은 언덕을 만나면 아이는 또 다른 비행을 하게 된다. 언덕 꼭대기에 올라선 아이는 바람개비를 하늘로 향하게 잡고는 풍덩 내리뛴다. 그건 뭘까? 그렇다! 바로 이때, 그 아이는 비행기이기를 그만두고는 헬리콥터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순간, 팔랑개비는 하늘로 치솟듯 깃을 세운다. ---『이젠 없는 것들 2』p. 149
불은 다른 명사와 어울린 복합명사도 하고많이 빚어내고 있다. ‘불길, 불기둥, 불기운, 불꽃, 불티, 불김, 불깃, 불똥, 불등걸, 불땀, 불목, 불볕, 불벼락, 불난리, 불빛, 불심지, 불바다, 불씨, 불내음, 불장난’ 등등은 모두 다 불과 관련된 명사로서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낱말이다.
불은 그 쓰임새도 다양하다. 불과 관련된 말이 위에서처럼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은, 불 그 자체가 인간의 생활이며 문화에서 맡아내고 있는 역할이며 기능이 다양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토록 쓰임새가 많고 보니, 불은 그 의미며 상징도 만만치 않다. 그나마 그 상징성이 서로 상극으로 맞서 있기도 하다. 인간의 행동으로는 ‘건설, 창조, 떨치고 일어섬’ 등을 상징하는 한편, 인간의 마음으로는 ‘열정, 분발(奮發)’ 따위를 의미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화력(火力)’이란 말이 있듯이, 불은 에너지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불 자체의 속성으로 ‘광명’이나 ‘밝음’ 등도 의미한다.
이것들은 모두 불의 좋은 의미다. […] 한국인들은 이처럼 불을 두고서 하고 많은 생각을 해왔다. 그것은 집 안의 불에 대해서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젠 없는 것들 2』pp.173-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