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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기분

사는 기분

: 늘 제철 인생으로 사는 일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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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1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328g | 130*200*15mm
ISBN13 9791186198612
ISBN10 1186198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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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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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도 어떤 자화상 앞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습니다. 친구에게는 예전에 유럽을 여행할 때 파리 로댕미술관의 어느 조각 앞에서, 또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어느 그림 앞에서는 몇 시간도 부족해 그 다음날 작품을 다시 보러 간 적 있다고 이야기했지요. 우연히 마주한 예술 작품 앞에서 얼어붙는 듯한 경험. 저는 이런 때가 인생에서 몇 안 되는 기분 좋은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먹고사는 일을 제쳐둘 수 없겠지만, 생계와 무관한 ‘취향’이나 ‘좋아하는 일’이 퍽 중요함을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자기만의 취향, 좋아하는 일이 하나쯤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인생을 더 잘 즐길 수 있을 것이고, 행복 지수도 더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 「마음속에 푸르른 가지를 간직한다면」 중에서

아내가 제게 한마디 했습니다. “당신, 운전감이 옛날보다 많이 떨어졌네. 앞으로 힘들면 나한테 넘겨도 돼요.” 보통 이런 경우에 “그렇지?”라고 짐짓 쿨하게 대답했는데, 이번엔 어쩐지 아내의 말이 제 마음을 긁는 것 같더라고요.
아내를 공항에 내려주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꼭 오래된 LP판에서 나는 것 같이 ‘지지직’ 긁히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LP판으로 트는 노래라서 그런가?’ 했는데, 연이어 나오는 다음 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내의 ‘긁는 말’에 마음이 긁혀서 이렇게 노래도 ‘긁는 소리’ 로 들리나 싶어 실소가 터졌습니다. 한참을 지나서야 긁는 소리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라디오에서 나는 소리도 아니었고, 저만의 착각에서 연유한 것도 아니었지요. 바로 뒷좌석에 둔 비닐봉투 안에서 꽃게가 움직이는 소리였습니다. 신기하게도 LP판 긁히는 소리와 똑같이 들렸던 것입니다. 민망해서 한바탕 크게 웃었지요. 바로 뒤에 둔 꽃게의 존재를 잊어버린 것이나, 아내의 말에 마음이 긁혀서 구시렁거린 것이나 인생의 가을에 어울리는 해프닝 같았습니다.
--- 「아주 구체적인 사랑의 모습」 중에서

올해에도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환갑을 맞는 몇몇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환갑 축하를 받는 어떤 친구가 이걸 또 살짝 비틀어 말하더군요.
“이런 된장!”
100세 시대에 환갑 축하 받는 게 쑥스러워서, 아니면 그동안 애쓰며 살았는데도 아직 현실이 녹록지 않아서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요? 그렇지만 그 친구에게 정말 해주고 싶은 말은 “친구야, 인생 잘 살았어!”였습니다.
--- 「‘혼자’보다는 ‘우리’라서 더 좋은 중

양복점 주인분이 품과 팔다리 길이 등을 재면서 “선생님은 팔다리가 짧으니 최대한 길어 보이게 해드릴게요”라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잠깐 언짢아집니다. 신체적 비율이 월등하게 좋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제 팔이나 다리가 짧은 편이라고 느껴 본 적도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전문가 의견이니 한번 믿어 보기로 합니다. 자기에 대해서 잘 모른다거나 자신 없다면 눈 딱 감고 다른 사람의 조언을 따르는 게 결과적으로 현명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 「매일 배우며 삽니다」 중에서

지금까지는 오르막길 인생이었습니다. 크든 작든 삶의 목표를 이루거나 간혹 실패의 경험을 얻으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열심히 올라왔지요. 누가 먼저 정상에 도착할지 옆 사람도 곁눈질하면서요.
그러나 이제는 내려갈 일만 남은 듯합니다. 인생 오르막길이 그랬듯 내리막길도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또 앞만 보고 오르다 갑자기 당도하게 된 내리막길이 낯설고 막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심조심 저녁 산길 내려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인생길 하산도 잘 해낼 수 있겠지요. 내딛는 걸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며 길가에 핀 ‘행복’이라는 이름의 들꽃 구경도 좀 하고요. 이제는 시간에 쫓겨 조급할 것이 없지요.
--- 「내 인생, 아직도 제철입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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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문청을 꿈꾸었다는 그의 글솜씨가 제법인 줄 알았지만, 이번 산문집을 보니 수준급임을 알게 되었다. 일상의 즐거움을 따듯한 시선으로 길어 올려 우리를 보다 행복하게 만드는 길로 인도하는 듯하다. 그가 가진 자유로움과 따듯함의 소산이라 생각한다. 장별 제목처럼 자신을 살피고, 책 내용처럼 중년을 살아낸다면 인생 후반전에서도 나름 성취를 거두리라 믿음을 갖게 된다. 바람직한 중년의 마음 사용서라 할까?
- 이어령 (문학박사, 前 이화여대 석좌교수)
그림이 그리움의 준말이라면 그의 글은 글자로 읽는 그림이다. 애틋함과 아름다움이 교차하는 삶의 그리운 조각들. 졸업 앨범의 정갈한 사진 속 인물들이 어른이 되어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에서 서성거리는 듯 포근하다. 문장마다 서려 있는 그의 혜안이 내게 묻는다.
“당신은 잘 살고 있나요?”
- 사석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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