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을 겨냥한 심리학서 대부분이 자녀들을 더 잘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자녀들을 제대로 양육하도록 도와주는 책은 거의 없다. 부모들의 성장은 논외로 한 채 그저 아이들의 성장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에게는 자녀들을 최고의 삶으로 안내해야 하는 책임이 있지만 동시에 본인들도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 그런데 자녀들의 발전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면 개인적인 발전과 성취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때는 최선을 다해 남을 배려할 수 없다.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비논리적이거나 혼란스러운 사고와 부정적인 감정이 관계에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한다. --- p.9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사람은 대개 자신이 경험한 것의 일부만을 의식적으로 처리한다. 그렇다고 의식에 의해 처리되지 않은 경험이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험들은 의식 저편 숨겨진 동굴에 쌓이게 된다. 그 경험들은 세상을 향한 우리의 인식과 태도와 감정을 형성하는 데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동굴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거의 통제되지 않는다. 그런데 철학은 이 숨겨진 것들이 밖으로 드러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경험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래서 철학은 잊고 있던 우리 자신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pp.13~14
하지만 언제 부모로서 힘과 권위를 사용해야 하는가? 이것을 판단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아들아이가 처음으로 술을 마시고 집에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잘못을 초장에 바로잡기 위해 혹독하게 다루어야 할까, 아니면 알코올에 의지하는 것은 일종의 도피라는 것을 이해시키려고 애써야 할까? 부모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이런 선택의 상황에 봉착한다. --- p.34
무조건 자녀의 편만 드는 것은 문제가 된다. 아이가 거친 성인의 세계에 잘 정착하려면 역경을 통과하면서 내면의 힘을 다져야 하는데 부모가 자녀와 정서적으로 밀착되어 있으면 자녀 스스로 역경을 헤쳐 나가는 걸 두 손 놓고 지켜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과보호는 상처가 약이 되는 기회를 박탈한다. --- p.42
실존적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은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양심의 목소리는 분주한 일상생활 때문에 놓치고 있던, 진실된 삶에 대한 열망을 일깨운다. 부모들은 실존적 죄책감에 더 민감하다. 자신은 물론 자녀들을 위한 삶의 방향과 방식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티브 섀논의 경우처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과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선택을 해야 하는 이런 순간들이 결국은 삶에 대한 진지함을 불러일으킨다. --- p.77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는 하지만 결점도 없고 흠도 없이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그들을 부양하면서도 가족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수고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을 받아야 하지만, 실수를 했다면 용서 또한 받아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좋은 의도로 말하고 행동하지만 자녀들은 우리가 생각하지도 않은 방향으로 받아들인다. 부모의 메시지에 대부분 상처를 받는다. 이런 상처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용서를 구하면 아이들도 우리가 그들과 그들의 기분을 존중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모가 자신들이 항상 옳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사실도 느낀다. 게다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만약 우리가 실수를 할 수 있다면, 그들 역시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실수를 인정한다면, 그들 역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 있다. 우리가 용서를 구하면, 그들도 용서를 구할 수 있다. 아이들은 대개 부모들에게 너그럽다. 그러나 이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부모와 자녀가 같이 성장할 기회를, 둘의 관계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