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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흔적

김성조 | 청어 | 2020년 01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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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145*205*20mm
ISBN13 9791158607289
ISBN10 1158607288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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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을 하나 가지고 싶다
앵두꽃 향을 사르는 햇살 속
참새 두어 마리 꽃잎 쪼다 가는
뻐꾸기 해울음 따라 걸어도 좋을

구름 산 헤쳐 올 벗 두지 않겠다
빈 식탁 촛불 밝혀 차 따르지 않겠다

기다릴 이 없으니
해 길지 않다
골골이 바람 일어
흔들리는 산

뻐꾸기 한낮을 울다 가면
온종일 혼자인 뜰
--- 「뜰을 하나 가지고 싶다」 중에서

죽어서도 숯불로 살으리
살 끝 에이는 바람언덕
낮은 지붕 저녁연기 태우며
가시넝쿨 돌산 오르는 저 나무나무들
봄이 와도 살 속 고드름 풀리지 않아
개나리울타리 젖은 옷 널어놓고
풀포기 뜯으며, 뜯으며 바람별 태우고 있는

아침은 늘 비구름 뒤에야 왔다
지친 눈 뜨기 전 잠시 비 뿌리다 가는 햇살
더불어 산다지만 저 햇살 속
등짐 허리 휘게 지고 가는 미역장수 대신
누가 짐져줄 것인가 이 봄날에
한나절 햇살로도 태울 수 없는 속살
불붙지 않는 속살 그 여린 줄기로
산길이든 들길이든 자갈길이든
제 나름의 길을 열어 강 건널 뿐

등 붙여 다리 쉬지 못한 구름처마 밑
일생을 모퉁이로만 돌고 돌아
무딘 손마디 목울대로
징검다리 살얼음 부수며 가는
골짜기 깊은 억새바람 삭이는
눈발 세찬 언덕 저 나무나무들
--- 「나무나무 2」 중에서

나는 한 올 풀잎
오늘도 바람 앞에 선다
바람 속에 나를 놓아
부대낄수록 뜨거워지는 피
바람 앞질러 바람이 되어 버린다

나보다 먼저 나를 알아
등짝 후려치는
날 사르고 또 피어나게 할
살 끝 가지가지 가시 풀바람

돌을 안고 개울 건너는 꿈자리 푸르다
어머니 청수 물 달 지고 뜨고
감기 끝 그리움 병 도지듯
실버들 푸른 핏줄 햇살 돋아나
돌아보지 않아도 부끄러운 4월
꽃으로 피어도 좋을
흙으로 누워 있어도 좋을
아, 이리 눈부신 첩첩 불꽃 길
--- 「불의 환幻 1-바람 속으로 걸어가다」 중에서

이번 시선집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발길을 잠시 묶어둔 채, 뒤로 돌아가 지난 발자취들을 돌아보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고 반성한다는 의미를 두고 있다. 이른바 초심으로 돌아가 겸허하게 시 앞에 서고, 또한 잊고 있었던 혹은 퇴색되어가는 낯설고 울퉁불퉁한 길들을, 쉽게 만족해가는 메마른 내 일상의 정수리에 옮겨놓고자 하는 것이다.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했지 지난 걸음에 대한 차분한 검토와 성찰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빈 마음으로 걸어온 발자취를 천천히 따라 가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 걸음들 위에서 생동하는 언어, 새로운 시 세계의 모색이라는 다소 비장한 열망을 품어본다. 그리하여 어설프고 부끄러운 내 ‘흔적’이 그 민낯을 드러내게 되었다.
--- 「후기 ‘섬’을 찾아가는 영혼의 소리 중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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