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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에 서쪽을 빛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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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에 서쪽을 빛내다

[ EPUB ]
장석남 | 창비 | 2013년 03월 2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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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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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9.04MB ?
ISBN13 97889364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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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속에 들어가 앉아 묵을 먹는다. 묵을 먹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나는 초간장의 맛이나 떠올리는데 무릇 사랑이란다, 그는. 초간장과 묵맛 사이, 묵맛과 사랑 사이의 간극에 본디 시로 살아가는 자와 그렇지 못하는 자를 구분짓는 어떤 가늠자가 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급한 대로 그의 붉은 뺨을 열고 들어가 몰래 훔쳐본다. 무얼 하시나.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가 싶었는데 말린 고사리의 무게를 재고 또 재며 봄을 나는 그다. 호스를 대고 착착 두드려가며 바위를 씻는 일로 여름을 나고, 막돌들을 업고 안아다가 판판히 놓은 계단의 층계를 리듬처럼 밟아가며 가을을 나는 것 또한 그다. 쏟고 만 쌀알 한 홉을 줍듯 겨울을 지나며 그는 그렇게 한 생을 살아낼 것만 같다. 그렇듯 몸으로 부르고 사랑으로 화답하는 그에게서 훔치고 싶은 게 어디 한둘이랴. ‘어느 해 낙산사 새벽종 치는 일을 권해받았으나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니 일단 종두만이라도 내가 먼저 탐해볼 참이다. 그 발정, 얍삽하더라도 부디 봐주시라. 또 누가 알겠는가. 그의 뒷걸음질이나 이리 좇는 내 그림자일지언정 착착 접었다 펴기를 반복하다보면 언젠가 내 시도 몸이 되고 사랑이 되고 죽음이 되고 꽃이 되는 우리네 값비싼 생의 ‘요’가 될는지도.
김민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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