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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빛이 같이

별과 빛이 같이

파란-0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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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1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04쪽 | 252g | 124*188*13mm
ISBN13 9791196373887
ISBN10 1196373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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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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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있잖아 현아.
“왜 비밀번호 안 바꿨어?”
나는 잘 모르겠어. 저걸 누를 때마다 나는. 지원은 말을 하다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수화기 너머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개수대 앞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노랗게, 붉게,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마당을 보았다. 수현이 집을 팔아야겠다고 연락을 했을 때 지원은 애써 호흡을 가다듬고 담담하게 그러자고 했다. 수현이 홀로 집에서 견딘 시간들을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오랜 시간 지원은 집을 팔자고 했고 수현은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지원 혼자 도망쳤다. 지원은 사물의 이름을 지우는 방식으로, 수현은 이름을 부르는 방식으로 시간을 견뎠다. 수화기 너머에서 끅끅, 울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수현이 말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바꿔?” 몇 번이고 말해도 부족하다는 듯 다시, 다시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걸 어떻게 바꿔.” 지원은 전화기를 잡지 않은 손으로 창문을 열었다. 잡초를 말끔하게 뽑아낸 자리에 다시 잡초가 돋아나 있었다.
--- 「연우」 중에서

장마가 끝났다. 기린을 기르면서 알게 되었다. 난 이제 그가 다시 조그만 밥상 앞에 앉아 있거나, 녹음기를 들고 대사를 외거나, 가나슈라고 나를 부르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서호가 남기고 간 카세트테이프를 한 손에 쥐었다. 지나치게 가볍고 작았다. 재생시간은 고작 3분 남짓. 그 3분이 평생 계속되었으면, 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마법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테이프 끄트머리를 잡고 죽 잡아당겼다.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때까지. 방 한구석 가득 테이프가 쌓였다. 한 사람이 내게 만들어 놓고 간 구멍을 메우는 일을, 난 이제 이렇게 끝냈다.
--- 「기린에게」 중에서

“이모는 어릴 때 고래가 되고 싶었어.” “왜” “그냥.” 정상적인 꿈이란 뭘까. 겨울은 스스로에게 자문해봤다. 직업이 꿈이 되는 순간? 정상적이란 말은 어쩌면 시시한이란 말과 같을지 모른다. 연우가 겨울에게 자기 옆에서 자라고 손짓을 했다. 겨울은 아이의 옆에 누웠다. 그러자 아이의 단풍잎 같은 손이 겨울의 배를 토닥토닥 두드리기 시작했다. 겨울은 연우의 다른 한 손을 쥐었다. 연우가 느릿느릿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파란 토끼를 보았니. 초록 토끼를 보았니. 파랑 초록은 다른 색인데 사람들은 같다고 하지요. 겨울이 멋대로 파란 나라를 개사한 노래였다. 연우는 음정도 박자도 엉망진창인 노래에 괴로워하면서도 곧잘 따라 불렀다. 겨울은 누군가가 제게 불러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겨울이 기억하기로는 처음이었다.
--- 「별과 빛이 같이」 중에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품 안에는 약간의 온기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제일 먼저 다락방을 살피고 그다음에 부엌, 거실을 살폈다. 베란다까지 둘러보고 나서야 나는 이안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빗방울이 얼굴을 적셨다. 이안의 레인코트가 흙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이안을 포터 옆에서 발견했다. 이안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빗방울이 이안의 살갗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안의 숱 많은 속눈썹에도 비가 떨어졌다. 그러자 이안은 꼭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안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이안을 안아 들었다. 삐, 하고 이안의 프로세서가 중지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안을 쳐다보다가 이안의 가슴 부근을 쳤다. 아이 러브 유! 이 목소리는 이안의 생명과 상관없이 유지되는 모양이었다. 몇 번 더 두드리자 계속해서 이안이 사랑한다고 소리쳤다. 할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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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자신이 속한 궤도에 있는 주변 사람들과 하루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별과 빛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인공지능이란 말이 수시로 등장하게 될 2020년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가장 인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 윤이안 작가의 《별과 빛이 같이》는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우리가 결코 불행하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불행한 것은 같은 궤도를 그리며 함께 나아갈 별과 빛이 없는 경우일 것이다. 적어도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 모두 조금씩 인간다워지길, 그리하여 서로에게 마음만은 어둠이 아닌 별과 빛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 김경희 (히든작가 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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