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박은 왕실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복식, 쓰개류, 장신구에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 왕실 여성의 원삼과 활옷 등 의례복에는 봉황을 찍어 지위와 권위를 나타내고, 어린 왕자의 용포에는 금박으로 용문을 찍어 직금을 대신하였다. 여인들의 저고리, 당의, 치마에는 각종 화문과 길상문양을 금박하여 치레를 하고, 출가하지 않은 소녀들은 곱게 땋은 머리에 금박댕기를 드리워 호사豪奢를 하였다. 특히 어린아이의 옷과 장신구에는 무병, 장수, 다복을 기원하는 길상문양을 금박하여 아이의 무탈함을 기원하였다.
『한눈에 보는 금박』은 금박의 정의, 역사, 쓰임새, 우리나라 전통 금박의 장인과 공예 기술, 그리고 현대화된 금박 예술 등 총 4장으로 구성하였다. 한국 금박의 예술적 가치와 중요성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헌과 사진 등 여러 자료를 활용하여 설명해 보았다.
--- 「저자 심연옥-머리말」중에서
금박은 문양을 새긴 나무판에 접착제를 바르고 직물에 찍은 후 그 위에 금을 올려 표현한다. 이때 사용하는 판을 문양판이라고 한다. 문양판은 금박뿐만 아니라 자수와 흉배의 문양 본으로도 사용되었다.
문양판은 주로 배나무, 박달나무, 대추나무 등 단단한 수종樹種의 나무를 사용한다. 『인조장렬왕후가례도감의궤仁祖莊烈王后嘉禮都監儀軌』에 기록된 ‘박달목각성부금朴達木刻成付金’에서 문양판 재료로 박달나무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박달나무는 건축, 조각, 세공의 재료로 사용되는 수종으로 목질이 단단하며, 전국에 고루 분포하여 자생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로 지정된 금박장 김기호 장인은 집안 대대로 돌배나무에 문양을 새겨 부금하고 있다.
문양판의 재료 준비와 문양 도안, 조각의 모든 과정은 금을 올리는 장인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금박을 하는 장인은 문양판이 사용되는 복식이나 기물에 대하여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왕실의 경우 지위에 따라 문양의 종류가 다르고, 같은 용문을 쓰더라도 왕·왕세자·왕세손에 따라 오조룡五爪龍, 사조룡四爪龍, 삼조룡三爪龍으로 구분하였다. 즉 지위, 복식, 위치에 따라 금박하는 문양을 명확하게 구분하였으며, 이러한 특징은 문양판에도 그대로 수용되었다.
문양판의 뒷면이나 옆면에는 만든 시기와 함께 원삼, 당의, 대란 등 복식의 종류를 기록하거나 각을 하였다. 또한 ‘ㅅㆍ매’, ‘ㅅㆍ매전’, ‘ㅅㆍ매후’라 하여 부금되는 세부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하였다. 실제 당의의 깃에 사용한 문양판 뒷면에는 ‘뎡유듕하 당의복 깃판 신조’라 하여 당의의 깃판에 부금할 문양판을 정유년 여름에 새로 만들었다고 부금 시기와 용도를 구체적으로 표기하기도 하였다. 용보龍補의 경우 부착되는 위치에 따라 용이 바라보는 방향이 정면, 좌·우측으로 달라진다. 이에 ‘좌견’ 등으로 기록하여 정확성을 가하였다. 복식뿐만 아니라 주머니에 사용되는 문양판을 ‘줌치판’이라 표시하여 대상에 따라 부금의 용도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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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인 금박을 부친이신 고故 김덕환 금박장으로부터 전수 받으셨는데 어떠한 방식으로 계승하셨는지요?
아버님은 금박 기술을 알려주는데 있어 그 틀을 정하지 않으셨어요. ‘이렇게 해라’ 또는 ‘이렇게 하지 말라’는 말씀도 없으셨어요. 단지 본인이 작업하는 모습을 통해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어깨너머로 아버님이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익히게 되었지요. 아버님은 시대별 로, 그리고 장인마다 그 솜씨가 다르기에 결과물도 조금씩 다를 수 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늘 성실하게 작업에 몰두하셨습니다.
5대를 이어 금박 작업을 하시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조선시대부터 사용한 도구들과 기술을 물려받은 만큼, 자랑스러움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도 느낍니다. 선대 어르신들이 지금 제가 하는 작업을 보고 계신다면 어떻게 평가하실지 궁금합니다. 제가 제 일 걱정하고 듣기 싫은 말이 ‘대가 바뀌면서 작품이 달라졌다’와 ‘작품 수준이 낮아졌다’입니다. 물론 그분들보다 부족하겠지만, 가문과 작업에 누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통 제작 방식을 고집하고 계시는데 금박의 작업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세밀하고 아름다운 문양을 금으로 재현하기 위하여 순금을 얇게 두드려 100nm(나노미터) 두께로 만든 얇디얇은 금박지를 사용합니다. 가장 먼저 문양의 도안을 선정하는데, 도안은 직접 그리거나 유물의 도안을 가져오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문양이 정해지면 나무에 옮겨 조각하여 문양판을 만들어요. 문양을 도장처럼 찍기 위함이지요. 그 다음 사용할 풀을 만들어 문양판에 칠한 뒤 직물에 찍습니다. 그리고 풀이 마르기 전에 손으로 금박지를 올려붙이고, 문양 밖의 금박지를 떼어낸 후 건조하여 완성합니다. 사용하는 풀의 종류는 다섯 가지 정도 되는데 조선시대에 사용하였던 아교풀과 민어 부레풀, 아버님이 만드신 옵셋 잉크, 그리고 제가 만든 식물성 기름풀과 옻칠 등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옻칠 작업을 주로 하려고 해요.
--- 「인터뷰 [의미와 가치를 높이는 아름다운 금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