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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보는 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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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202g | 153*224*9mm
ISBN13 9791165121099
ISBN10 116512109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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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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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코피가 옷섶을 적시고 우리는 눈 내리는 산을 오른다
쓰러지고 꺾어지고 산을 오르며 이 달겨드는 눈발로도 몸을 파묻지 못하거니
어느 불꽃인들 몸을 말릴 수 있는가?
둘러보아도 산마루마다 번쩍이는 눈보라는
살아 있는 것들의 핏줄을 한 가닥씩 비우고
하룻밤의 평화를 위하여
자작나무 껍질 한 짐과 참나무 등걸을 지고 돌아와
젖은 나무에 불을 지피는 우리는
한 마리씩의 쓸쓸한 딱정벌레,
불꽃은 젖어서 손바닥 껍질을 한 겹씩 벗기고
어딘가 이 겨울밤을 타오르는 넋들이 그리워
젖어서 우리는 불꽃 속으로 떠난다.
-
눈이 내린다, 불꽃 속으로 창자를 긁어내는 오늘 밤의 눈보라는
꿈꾸는 속눈썹에 방울방울 쉼 없이 솟아오른다
젖어라 나무들이여, 딱정벌레 몸뚱이여
천지사방(天地四方) 우리는 외로워서 온몸에 불꽃을 달고
그 불꽃 갈피 없이 눈보라 속으로 흩날리어,
어딘가, 그리운 넋들의 사랑은
젖은 어깨 가득히 적막(寂寞)의 불꽃은 갈기갈기 쓰러지고
아아 우리는 눈사람이 되어 숨죽이며
스물다섯 해 자란 등뼈를 깎는다
눈길을 간다, 천둥을 치면서
얼마나 많은 가뭄이 우리의 가슴을 적시는가
서로의 가슴에 벼락을 때리면서
눈 내리는 산에 불을 지른다
지치도록 눈보라는 온 산을 헤매고
한 삽의 그리움도 쳐내지 못한 채 우리는 퍼질러 앉아
다시 터져 흐르는 코피를 훔치면
목놓아 아른거리는 꽃잎의 불꽃,
-
보이나니, 눈보라 속에
저 퍼붓는 그리움 속에 서럽고 싱싱하게
산등성이마다 살아오르는 넋들의 불꽃이 보이나니,
더욱 기승을 부리는 눈보라의 살갗이여
말없어라, 말없어라
우리의 살갗은 아프지 않구나
우리의 두 눈, 우리의 두 귀, 우리의 어깨뼈,
말없는 스물다섯 살, 푸르디푸른 등뼈 조각조각이
이 밤 저리도 흐느끼는 눈발로 퍼붓나니,
산등성이마다 불을 켜는 넋들아
우리는 하나씩 도깨비불이 되어,
눈물 흘리는 도깨비가 되어,
꿈결에 지는 폭설(暴雪)의 화살, 목 메이는 불꽃으로 온 산을 헤매다가
이제는 통곡의 산등성이에 이르러
꽃잎같이 타올라 넋이 되는구나
--- 「꿈에 보는 폭설(暴雪)」 중에서

외로운 사람은 귀가 밝아져 가네
푸른 날 언덕에 가만히 엎드리면
세상은 크고 어둠은 깊어라
오늘도 당신은 아니 오시고
천지에는 휘날리는 그리움
아,
봄날은 하늘처럼 높아서 가슴마다 무너지네
나는 물을 따라 한없이 걸어가네
당신은 오늘도 아니 오시고
외로운 사람은 눈이 멀어져 가네
-
외로운 사람은 귀가 밝아져 가네
푸른 날 언덕에 말없이 엎드리면
어둠은 크고 세상은 깊어라
오늘도 당신은 아니 오시고
천지에는 울부짖는 그리움
아,
세월은 별처럼 떠올라 가슴마다 부서지네
나는 물을 따라 한없이 걸어가네
당신은 오늘도 아니 오시고
외로운 사람은 눈이 멀어져 가네
--- 「가는 봄날에」 중에서

너는 무덤 하나 남기지 않는데
이 신명나는 삶을 나는 감출 길 없어
가루만 남은 네 몸을 봄바다에 던진다
팔힘이 돋을수록 햇빛은 화안하고
별똥마저 파랗게 쏟아지누나
보아라 헤어지기에는 너무 어려운 날씨지만
사는 데 지나친 일이 어디 있겠느냐
헛되이 목청만 봄바다로 날아서 눈앞에 터져
흩날리는 것들이 죄다 꽃잎으로 흐드러짐은
아직 눈물이 무엇인지 모르는 우리들 나이 탓일까?
쪽빛 고운 봄바다에 웃음기 많은 네 마음이
어른거린다 어른거린다
잘가라 잘가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게
스물하나 봄안개
서럽고 풋풋한 나이야
하늘나라에서도 싱싱하지 않으랴……
이 땅 어디에서도 네 꿈은 버릴 수 없어
주인 없는 봄바다로 너를
파묻듯 내다버리는 손끝은 얼음같이 벅차올라
부지런히 살겠다, 부지런히 살겠다
돌아서 지껄이는 이 끝없이 뻔뻔스런 말들이
네가 가는 하늘나라의 말로 할 수 있을까
네 몸 하나 마련할 땅은 없으나,
돌아서는 가슴으로 힘껏 매달리는
갯바위, 푸른 하늘, 부신 햇빛 속에
네 목소리는 쩡쩡 울리고 있으니
작별마저 부질없으리
이제는 죽음도 삶의 한 조각인가 보다
--- 「그리운 4월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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