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중국의 5천 년 역사 속에는 수없이 많은 영웅들과 여걸들이 등장했었다. 또 수많은 문인들과 풍류를 즐기는 무리들이 생겨났으며 수차례의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중국 25사~ 속에는 그들의 업적과 중국의 지나간 세월들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그것은 별처럼 아득히 먼 곳에 있으나 우리들의 기억과 그리움 속에서 선명하게 반짝이며, 소란스럽고 번잡한 현실 속에서 우연히 책을 펼치고 과거의 시간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온몸을 감싸는 감흥과 꿈결 같은 깨달음이 다가온다. 이것이 바로 역사이다. ---「서문」
유방이 황망히 도망치던 모습을 기록한 역사서에서 우리는 유방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등공은 유방이 전차를 타고 도망칠 때 전차를 몰던 태복이었다. 그가 전차를 끌고 패현을 지날 때 유방은 가족들을 구하려고 하였지만, 혼란스러운 틈에 초나라 군대가 태공과 여치 등 그의 가족을 다 잡아가버렸다. 유방은 어쩔 수 없이 계속 도망쳤고, 그 길에서 우연히 아들과 딸을 만나 전차에 태웠다. 초나라 군대의 병거와 기마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쫓아왔다. 유방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전차의 속도가 떨어질까 두려워 자신의 아들과 딸을 3번이나 전차에서 밀어냈다. 등공이 그들을 다시 부축해 올릴 때마다 전차는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달리게 되었다. 유방은 탈출하지 못할까봐 여러 번 검을 뽑아 아들과 딸을 죽이려고 했다.
“장막에서 전쟁을 계획해 1천 리 밖의 승리를 얻게 하는 일에서 나는 장량에 미치지 못하오. 또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을 위로하며 군량과 급료를 주고, 군량미가 들어오는 길을 막히지 않게 하는 부분에서 난 소하만 못하고, 1백만 대군을 통솔하고 매 전쟁마다 승리를 거두는 면에서는 한신만 못하오. 이 세 사람은 모두 영웅 중의 영웅이나 나는 이들을 잘 쓸 줄 알았소. 항우는 범증이라는 훌륭한 인재를 가졌으나 잘 기용하지 못했소. 이것이 바로 내가 천하를 얻은 이치요.” ---「유방」
여치는 재빨리 수하를 보내 독이 든 떡을 먹여 조왕을 독살하도록 하였다. 효제가 궁에 돌아왔을 때 조왕은 이미 죽어 있었다. 여의를 대신하여 회남왕 유우가 조왕으로 개봉되었다. 뒤이어 여치는 반항할 힘도 없는 척희에게 극도로 참담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패악을 드러냈다. 그녀는 척희의 두 팔과 다리를 자르고 유방을 도려내었다. 그리고 두 눈까지 파고 코와 귀를 베고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인 다음 척희를 인분통에 집어넣었다. 여치는 척희에게 ‘인체(인간돼지)’라고 이름 붙였다. 사람들은 죄인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능지처참을 가장 처참한 형벌인‘극형’이라 불렀지만, 여치가 척희에게 가한 악랄한 짓에 비하면 그마저 우습게 보일 정도였다. ---「여치」
한 문제 유항은 검소한 생활을 하기로도 매우 유명했다. 그는 24년간 재위에 있으면서 궁실이나 정원, 개와 말, 옷, 그리고 어용 기구 등을 하나도 늘리지 않았다. 백성들에게 불편할 조치라면 즉시 취소하여 백성들의 이익을 증대시켰다. 그리고 늘 거친 견직물로 만든 옷을 입었다. 또 총애했던 신 부인이 땅에 끌리는 옷을 입지 못하게 했고, 침대나 방안에 치는 휘장에도 수를 놓지 못하게 했다. 검소한 생활 태도로 백성들의 모범이 되려는 것이었다. ---「한 문제」
『후한서』
중국의 5천 년 역사 속에는 수없이 많은 영웅들과 여걸들이 등장했었다. 또 수많은 문인들과 풍류를 즐기는 무리들이 생겨났으며 수차례의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중국 25사史 속에는 그들의 업적과 중국의 지나간 세월들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그것은 별처럼 아득히 먼 곳에 있으나 우리들의 기억과 그리움 속에서 선명하게 반짝이며, 소란스럽고 번잡한 현실 속에서 우연히 책을 펼치고 과거의 시간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온몸을 감싸는 감흥과 꿈결 같은 깨달음이 다가온다. 이것이 바로 역사이다.--- 「서문」
유수가 적진에서 홀로 말을 타고 도망쳐오다가 셋째 누이를 만나 구했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또 세 딸과 함께 도망치는 둘째 누나를 만나게 되었다. 유수는 그들을 불러 말에 타라고 했다. 그러나 한 필의 말에 어떻게 여섯 명이나 탈 수 있겠는가! 둘째 누나는 유수의 짐이 되기 싫어 동생에게 얼른 먼저 가라고 했다. 적병이 뒤쫓아오는 긴박한 상황에서는 피해가 더 적은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유수는 가슴 아프지만 먼저 도망쳤다. 결국 둘째 누나 모녀는 모두 해를 당했다. 이 일화는 유방의 이야기와 비교가 된다. 한 고조 유방의 경우, 도망가다가 자식들 때문에 마차가 빨리 달릴 수 없을 때마다 몇 번이나 그들을 마차에서 밀어버리려고 하였다.
지식인 출신이었던 광무제 유수는 문화적 소양이 풍부했다. ‘유학자는 나라의 보배’라는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태학을 순시하며 공묘에 제사를 올렸다. 유수가 유학자를 중시하고 격려했기 때문에 후한시대 군신들은 유학자다운 기상을 지니고 있었다. 백정, 도적, 무뢰배 출신으로 이뤄진 전한시대의 개국공신들과 비교하자면 천양지차였다. 문신을 장려하고 발탁하는 문치의 풍조 때문에 후한시대에는 강직하고 절개 있는 문인 대신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또 이 때문에 후한이 위기 상황이나 힘들고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무너지거나 멸망하지 않고 200여 년을 버틸 수 있었다.---「한나라 황실을 중흥한 자, 유수」
부부의 인연으로 18년을 함께 한 명제는 존경하고 사랑스러운 마 황후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7세의 장제가 즉위하면서 마 황후는 태후 자리에 올랐다. 명제의 비와 귀인들은 모두 거처를 남궁으로 옮겼고, 사별에 슬퍼하는 마 태후에게는 여러 차례 하사품이 내려졌다. 이런 일은 지금 보기에는 인지상정 같지만, 총애를 받기 위해 독약과 사술, 모함이 난무하던 후일의 후한 후궁들과 비교한다면 상당한 의미가 있다. 마 태후는 후일 『명제기거주』를 저술하였는데, 저서에서 자신의 오라비인 마방 등이 중병에 걸린 명제를 치료하는 과정에 참여한 사실은 빼버렸다. 남들은 공이 없어도 봉록을 바라는데 마 태후는 공을 세우고도 봉록을 사양한 셈이었다. 장제는 그렇게 하는 것에 반대했다.
“외숙부들께서 아침저녁으로 1년이 넘도록 곁을 지켰는데 표창은커녕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니 너무 합니다.”
마 태후는 다른 의중을 내비쳤다.
“저는 후세 사람들이 선대 황제께서 외척과 가까이 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을 기록할 수 없습니다.”
건초 원년(76년), 장제는 외숙부들께 작위를 봉하고자 하였지만 태후가 따르지 않았다.---「모범이 되는 황, 마 황후」
양기는 다시 질제를 세웠다. 즉위 당시, 질제는 8세에 불과했지만 남달리 매우 영리했다. 한 번은 양기가 항상 교만하게 전횡을 부린다는 사실을 알고 조정 회의에서 양기를 가리키며 이렇게 외쳤다.
“저 자가 바로 발호(跋扈: 권력을 휘두르며 횡포하게 굴다)장군이구나!” 어린 황제는 정곡을 찌르는 한 마디로 양기의 본질을 꼭 집어냈다. 양기는 황제의 말을 듣고 놀라며 매우 두려워했다. 아직 어린아이인데도 그 정도이니 자라면서 더 영민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는 질제를 그대로 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수하를 시켜 독이 든 구운 떡을 황제에게 먹였다. 질제는 떡을 먹고 세상을 떠났다.--- 「발호장군, 양기」
기근이 발생한 어느 해, 진식의 집에 좀도둑이 들었다. 좀도둑은 천장 대들보에 숨어서 도망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진식은 그 사실을 눈치채고 침착하게 아들과 손자를 불러 정색을 하며 훈계를 했다.
“사람은 말이다, 스스로 힘쓰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일부 불량한 무리라고 본성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니라. 저기 대들보 위에 숨어 있는 양상군자처럼 말이다.”
좀도둑은 그 말을 듣고 놀라서 내려와 진식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 강도를 ‘호한好漢’이라 부르듯, 그 후 좀도둑을 고상하게 대들보 위의 사람이란 뜻의 ‘양상梁上군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식이 기회만 있으면 자녀들을 가르치기 좋아하는 재미있는 어른에 불과하다고 여길 것이다. 진식은 좀도둑이 죄를 뉘우치자 너그럽게 위로했다.
“보아하니 자네가 나쁜 사람 같지는 않네. 앞으로 반성하여 착하게 살도록 하게나. 도둑질을 하게 된 것은 다 가난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
진식은 그에게 2필의 명주를 내주었다.---「좋은 사람, 진식」
진번은 어릴 적부터 아주 게을러서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했다. 자신이 혼자 쓰는 방조차도 잘 치우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15세 되던 해, 아버지 친구인 설근이 그의 집에 왔다가 어질러진 방을 보고 어른으로서 진번을 데리고 훈계를 했다.
“얘야, 어찌해서 방을 치우지도 않고 어지러운 상태에서 손님을 맞을 수 있느냐”
진번은 예상 밖으로 놀랄 만한 말을 내뱉었다.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천하를 휩쓸어야지, 어찌 방 하나를 신경 쓰겠습니까”
이 말에 대한 평가는 중국 교육 역사상 난제로 남았다. 혹자는 아이가 천하에 눈을 돌리고 큰 뜻을 품었다고 보았고, 혹자는 남을 속이기 위한 흰소리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설근은 즉시 그의 말에 반문했다.
“방 하나도 쓸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를 휩쓸겠느냐”
어떤 평가가 정확한지는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다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2천 년이 지나도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천하를 휩쓸 뜻을 품은 자, 진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