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난만하고 해맑은 아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살아 있는 한 인간 존재 자체가 가장 큰 하느님의 축복이로구나, 그 어떤 처지이건 생명 그 자체는 주님 자비의 한 표현이로구나, 살아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받기에 충분한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그 어떤 형제든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형제가 내게 준 그 어떤 상처도 그러려니, 하고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형제의 모난 부분 앞 도 조금은 관대해질 여유가 생깁니다.
우리 눈에 비록 한심해 보이고, 때로 비참해 보일지라도 그들 역시 하느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축복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모릅니다. 하느님께서 그토록 그를 사랑하시는데, 내가 어찌 그를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책머리에’
“자매님, 오늘 제 강의 어떤 부분에 그렇게 필이 꽂혔나요?”
그랬더니 그 자매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사실은 그게 아니고요. 제가 벌써 한 달 넘게 아주 심한 불면증에 시달려 왔거든요.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아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습니다. 정말 백약이 무효였어요. 이러다 정말 불면증으로 죽겠구나,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정말이지 기적적으로 신부님이 강의하시는 2시간 동안 세상 모르게 잘 잤네요. 지금은 머리가 개운한 게 날아갈 것만 같아요.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이건 작지만 감사 예물입니다. 너무너무 감사해서요.”
저는 또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느님도 참 묘하셔라. 내 강의를 이런 방식으로 활용하시다니!’---p.23
자티 수사님의 병원 운영 방침은 다른 병원과 정반대였습니다. 가난할수록, 더럽고 냄새날수록 더 우선적으로 대우를 받았습니다. 특히 다른 병원 는 가망이 없다, 시간 낭비다,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중병의 환우들도 자티 수사님의 병원 는 VIP 고객으로 관리되었습니다. 자티 수사님에게는 이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손님이었습니다.
자티 수사님은 돈도 없으면서 까다롭고 ‘진상’인 환우가 찾아오면 기쁜 얼굴로 병원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우리 병원을 축복해 주러 오신 착한 예수님께 내어 드릴 방이 있나요?”
자티 수사님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모두 다 받아들이면 병원이 얼마 가지 않아 망할 것이라고 하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받아 달라고 청하는 환자들이 예수님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그들을 우리에게 보내셨다면 어찌 그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있겠습니까? 환자들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가장 큰 축복의 선물입니다.”---p.38~39
성인 반열에 오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들은 사실 우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래도 아니고 우리보다 3분 정도 더 인내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이도 아니고 우리보다 한 3번 정도 더 용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존경하는 고故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님께서 생전에 저희에게 자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수도생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심입니다. 참고 또 참으십시오. 그리고 또 참고 또 참으십시오.”
오늘 우리의 삶이 때로 견딜 수 없이 남루하고 때로 비참하다 할지라도 방법이 없습니다. 꾹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요. 언젠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주실 깜짝 선물을 기대하면서, 언젠가 우리에게 ‘잘 참고 걸어왔다.’며 건네주실 표창장 수여식을 기대하면서 열심히 걸어가는 것이 매일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p.50~51
그러고 수도원으로 돌아오는데,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착잡했습니다. 나갈 때는 분명히 차를 몰고 나갔었는데 돌아올 때는 터덜터덜 빈 몸으로 걸어 돌아오니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었습니다. 무엇보다 원장 신부님 얼굴을 어떻게 보나, 그것이 걱정이었습니다. 솔직히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애들 표현대로 빠짝 ‘쫄아서’ 현관문을 살며시 열었는데, 맙소사! 그 앞 원장 신부님이 왔다 갔다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저를 발견하고 하신 첫마디가 뭔지 아십니까?
‘니가 도대체 인간이냐? 그 차 뽑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야? 내일부터 수녀원 미사 어떻게 다니라고? 말 좀 해 봐!’
그럴 줄 알았는데, 그런 말씀 한마디도 안 하시고, 제 어깨를 두드리며 그러셨습니다.
“스테파노, 어디 다친 데는 없냐? 아무 걱정하지 마. 차,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냐! 네가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냐?” ---p.106
그렇게 시간이 30분가량 흘렀고, 저는 거의 순교자적 인내로 그 많은 죄를 다 들었습니다. 마침내 보속까지 드리고 나서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인사까지 했는데도 할머님은 빨리 안 나가십니다. 답답한 마음에 “할머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무슨 문제! 고맙소이 신부님. 워매~, 쏙 씨언한 거! 오랜만에 다 털어논께 쏙이 다 씨언하네!”
그리고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칸막이 사이로 난 구멍 밑으로 뭔가를 제게 건네십니다. 받아서 봤더니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었습니다.
“이게 뭐예요, 할머님?”
“너무 고마워서, 팁이유~!”
---p.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