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의 전주곡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평상시에는 절대로 하지 않는 일이라도,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어떠한 짓이든 하고 만다. 마찬가지로 나라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 사태가 타개되기를 원하는 국민들은 평상시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독재자(혹은 선동 정치인)를 지지하게 된다. 독재자는 국민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그들을 부추겨 전쟁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그 앞에는 파멸만이 기다릴 뿐이다.
19세기에 유럽을 석권한 나폴레옹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나폴레옹은 혼란에 빠진 프랑스에 혜성처럼 나타나 난국을 수습했다. 하지만 그 인기를 이용하여‘제1통령’이라는 지위의 임기를 없애 버렸다. 일단 ‘종신’이 되자, 그가 ‘황제’가 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 없었다. 그다음 나폴레옹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끊임없이 계속해 나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국민을 동반한 파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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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지닌 개성과 민족이 지닌 민족성
한 나라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일이 다른 나라에서는 몰상식한 일이라고 여겨지는 일은 흔하다. 사람이 제각기 ‘개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민족도 제각기 ‘민족성’이라는 것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개성이 ‘타고난 유전자’를 씨실로, ‘인생의 성장 과정’을 날실로 삼아 구축되는 것처럼, 민족성도‘자연 환경?지형?기후?지하자원 같은 지리적 조건’이 씨실, ‘정치?경제?사회 등의 역사적 배경’이 날실이 되어 긴 세월에 걸쳐 구축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개성’이라는 것은 한 번 확립되면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이처럼 민족성도 한 번 확립되면 수천 년의 시간이 흘러도, 어떤 전란이나 사건을 경험해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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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성의 보편성
앞서 언급했듯이, ‘민족성’은 한 번 굳어지면 아무리 시간이 흐르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변하지 않는 ‘불변, 불후, 부동’의 존재가 된다. 하지만 근대 이후 세계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유럽은 낡은 정치 체제를 타도하는 각종 혁명을 경험했고, 산업혁명으로 경제와 사회의 모습이 변화되었다. 중국은 20세기 초, 진시황 이후 2,000년 이상 지속된 전통적 ‘제국’ 통치체제를 완전히 버리고 ‘공화국’으로 탈바꿈했을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사회주의로 전환했다. 격동의 세월을 거치고도 그들의 ‘민족성’은 변하지 않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중국인들의 본질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다. 앞서 말한 대로 민족성은 통치자나 제도, 체제가 바뀌어도 심지어 이데올로기가 바뀌어도 꿈쩍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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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대 왕조의 건국 패턴
중국의 역사는 ‘숙청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중국인에게 ‘숙청’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라서 숙청에 대한 죄책감이 없다. 그 예로 한평생 나라를 돌며‘인덕(仁德)’을 펼쳤던 공자(孔子)의 경우를 살펴보자. 공자는 중국에서 ‘성인군자의 대표’로 꼽히는 인물이지만, 그런 그가 노(魯)나라 대사구(大司寇)가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은 ‘숙청’이었다. 부임한 지 7일 만에 곧바로 당대 대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소정묘(少正卯)를 별다른 이유 없이 죽이고, 그 칼로 중신들마저 죽였다. 또, 제후회의(제나라와 노나라 연맹)에서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고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배우와 광대까지 죽이라고 명했다.
--- p.27
세계 최초로 피부색으로 인종을 차별한 백인
지금도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피부색으로 인종을 차별’하는 만행을 인류 역사상 처음 시작한 것은 백인종인 아리아계 민족이다. 그들은 지금부터 4,000년 전까지 오랫동안 아시아 대륙의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초원 지대에 살던 유목민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2,000년경 지구가 한랭건조해지자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기후 변화로 인해 그들의 ‘생명선’인 초원이 급속히 사라졌기 때문에 기아가 덮쳐 살던 땅을 단념하고 터전을 찾아 민족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 ‘아리아계 민족 대이동’중 동쪽으로 이동한 민족이 현재의 인도계이고, 남쪽으로 이동한 민족이 이란계이다. 그리고 서쪽으로 이동한 민족은 현재 유럽계 민족을 형성했다.
이때 그들은 이주지에서 자신들과는 피부색이 다른 민족을 대면하고 그들을 차별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인종차별의 시작’이다. 이를테면 인도에 정착한 아리아계(이 시기에는 아직 백인종)는 원주민(갈색 인종)과 접촉하면서 곧‘바르나’라는 차별 제도를 시행했다. ‘바르나’는 ‘색(피부)’이라는 뜻으로, 그들이 이 무렵부터 이미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했음을 보여준다. 현재 인도인은 북쪽으로 갈수록 피부색과 생김새 모두 코카시안(백인종)에 가깝고, 남쪽으로 갈수록 피부색이 검고 생김새도 몽골로이드(몽골계)에 가깝다. 이것은 앞서 기술한 슬픈 역사 때문이다.
--- p.102~103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한 마오쩌둥
사실 처참한 숙청을 주저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인물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 부모(또는 부모 역할을 한 사람)에게 전혀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반대로 부모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인물이 냉철한 대숙청을 하는 독재자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사실 마오쩌둥도 부모로부터 전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최고 지도자가 된 마오쩌둥은 어느 날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지금 여기에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아쉽다.”
중국은 유교 정신이 강하니까 자신이 출세한 모습을 부모에게 보여주지 못해 아쉽고, 효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말일까 싶지만, 계속되는 그의 말이 무척이나 오싹하다.
“그자가 아직 살아 있다면, 고문해 버렸을 텐데!”
--- p.174
유럽인의 성립
가혹한 자연 환경 속에서 자란 민주적 전투 민족은 기원전 20세기 유라시아 대륙에 한랭화가 덮쳐 급속히 초원이 소실되고 기아가 덮치자 이윽고 오래 살아 정든 폰투스?카스피해 초원을 단념하는 부족도 나타나게 되었다. 그 가운데 서쪽으로 이동하여 현재 유럽 반도에 정착한 사람들이 현재의 유럽인이다.
그들이 새롭게 정착한 유럽 지역은 지금까지 살았던 초원 지대와는 달리 습한 기후로 계속 이어지는 울창한 숲이었다. 숲이 있으면 사냥도 할 수 있다. 비가 내리면 농사도 지을 수 있다. 함께 데려온 가축을 방목해도 풀은 계속해서 자라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생활을 할 필요도 없다.
--- p.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