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노이대학교에서 거의 40년(1967-2006), 연세대학교에서 5년(2007-2012)간 음성학을 가르치면서 언젠가 음성학 개론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늘 고질적인 게으름(부모님으로 받은 유전인자!?)과 바쁨(직장의 횡포?)이 공모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패자의 변이다.
2012년 교수직에서 퇴임한 후 시간이 있었지만, 2010년 가을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연구와 저술의 의욕을 잃고 집필에 착수하지 못했다. 몇 해 후 생기를 되찾고선 우선 졸저 ??언어??의 제3판 작업에 전심하여 2017년 여름에 책이 출판되고 나서야 그때부터 본서의 집필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작년(2018년)에는 관련 도서와 논문을 탐독하고, 2018-19년 겨울 3개월간은 서울에서 월동하며 초고를 쓰고, 이를 3월 중순에 한국문화사에 전달한 뒤 출국하였다. 초고인 만큼 미완품이었는데도 출판사가 기꺼이 받아주어서 고맙기 그지없다.
시중에는 음성학 개론서가 꽤 있다. 이 저서들보다 더 나은 것을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저자가 일생 배우고 가르친 것을 후세에 남겨놓고 싶은 강력한 의욕에 따라서 썼을 뿐이다. 저자에겐 화려한(?) 계보가 있다. 저자의 스승이 Peter Ladefoged 교수이고, Ladefoged의 스승은 David Abercrombie이고 (vi쪽에 셋의 사진이 있다), Abercrombie의 스승은 Daniel Jones이고, Jones의 스승은 Henry Sweet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이 계보를 이어간 세손이라곤 말할 수 없다(이 영예는 아마도 Vicki Fromkin이나 John Ohala에게 갈 것이고, 영국에서는 John Wells나 Michael Ashby에게 갈 것이다.) 그래도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저자가 UCLA에서 배운 것을 읊어보고 싶었다.
저자의 모든 음성학 지식은 스승인 Ladefoged 교수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래서 이 졸저를 Ladefoged(1925-2006) 교수님께 바친다. 많은 자료와 예가 저자의 노트와 7판을 거듭한 선생님의 명저 A Course in Phonetics에서 따왔음을 밝혀둔다. 졸저를 쓰는 데 가천대의 박충연 교수가 자료수집과 연습문제 작성, 책에 삽입할 그림, 표, 예 등의 수집을 많이 도와주었다.
또 저자의 여러 제자들(지금은 다 교수들)인 강석근, 강용순, 김경란, 김영기(Kim-Renaud), 김형엽, 모윤숙, 서미선, 손형숙, 안상철, 윤태진, 이상억, 이석재 등이 크고 작은 조언을 해주었다. 이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들을 볼 때마다 저자의 마음이 얼마나 흐뭇해지는가를, 또 저자가 겨울마다 서울을 찾는 이유가 서울이 이곳보다 따뜻해서가 아님을 이들은 알 것이다. 내년 봄에 있을 출판기념 파티에서 이들과의 건배를 고대하며.
2019년 4월 5일
일리노이 주 어바나 시 서재에서
김진우
--- 「머리말」중에서
I부 들어가며
1장 음성학이란?
음성학(phonetics)이란 문자 그대로 음성(소리)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가 음성학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천둥이나 바닷물결이나 바람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나, 동물의 울음소리는 음성학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이 내는 소리라 하더라도, 기침소리, 신음소리, 웃음소리 등은 음성학의 연구대상에서 제외된다. 포함되는 것은 언어에 쓰이는 소리이다.
언어의 주요 매개체는 소리이다. 그러나 인간의 통신수단이 반드시 언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통신량과 효율성에서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모든 오각(시각, 촉각, 후각, 청각, 미각)으로의 통신이 가능하다. 시각적 통신으로는 그림, 깃발, 로고(logo) 등이 있고, 악수, 포옹, 입맞춤, 토닥임 등은 촉각적 통신이며, 향수나 냄새로 어떤 신호를 보내고 받는 것은 후각적 통신이다. (동물 세계에서는 후각적 통신이 꽤 활발한 듯하다.) 인간의 통신수단에서 가장 비활용적인 감각은 미각인 듯하며, 제일 활용적인 통신 매개체는 청각이고, 그 다음은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시각적 통신은 지금도 우리가 늘 쓰고 있다. 눈웃음, 윙크, 상찌푸림, 손짓, 삐죽거림, 어깨 들썩임 등으로 우리는 여러 신호를 주고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북미 토착민이 썼다는 연기 신호, 미국 독립전쟁 시 영국군의 진격로를 Paul Revere 정탐이 호롱 등불로 아군에게 알린 것이나(“육로이면 등 하나, 해로이면 등 둘”), 선박 간 깃발이나 깜박이로 주고받는 신호는 시각적 통신이다. 그뿐만 아니라, 문자의 발달과 더불어, 문자, 직증 간증적인 교통신호, 표지판, 회사와 상품을 표시하는 로고, 및 수화(手話 sign language) 등은 시각적 통신이 얼마나 활발한가를 보여준다.
사실 시각적 신호는 소리보다 더 큰 장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소리는 닿지 않는 먼 거리에서도 신호는 보인다든가, 소리는 금방 사라지는 반면, 그림은 지속적이라든가 하는 장점이다. 그러나 시각의 단점도 있다. 주위가 어둡거나 종이 한 장으로만 가려도 시각적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
수화의 가장 큰 단점은 일정한 단위시간 안에 송신할 수 있는 통신량이 소리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손짓이 빠르다 하더라도, 1분에 200음절의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다. 소리의 이러한 장점 때문에 소리가 언어의 주 매개체로 진화되었을 것이다. (또 두 손을 수화에 묶어놓으면 통신 중 손을 전혀 다른 데에 쓸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예를 들면 악수를 한다든가, 뜨개질을 한다든가 등.)
1.1. 음성학과 음운론
음성학(phonetics, phonetic science)도 음운론(phonology)도 말소리(語音 speech sounds)에 관한 학문이다. 이것은 두 어휘에 음(音)자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phone의 어원은 ‘소리’라는 뜻의 그리스어. phonograph, telephone, microphone 등의 단어에 들어있는 phone이다).
그러면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음성학이 어느 언어에서든지 쓰일 수 있는 말소리의 발성방법과 조음위치, 그리고 이의 분류방법 등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에 비해서, 음운론은 이러한 말소리들이 어떤 특정한 언어에서 갖는 기능과 체계를 연구하며, 더 나아가서 어떤 음운현상과 규칙들이 인간의 언어에 자연스러운 보편성을 띠고 있는가를 연구한다. 전자는 개별언어의 음운론(예: 국어음운론, 영어음운론)이며, 후자는 개별언어를 초월한 보편적인 음운이론(phonological theory)이다.
이렇게 말하면 둘의 사이가 독립적이고 상호 무관계한 듯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보편적인 음운이론이 개별언어의 음운현상의 자료를 토대로 삼고 성립되는 만큼 둘의 사이에는 불가분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언어음을 벽돌에 비유한다면, 벽돌의 제조과정이나 벽돌의 구성자질과 규모 등의 언급이 음성학에 해당하고, 벽돌의 기능과 용도에 관한 언급은 음운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영어에서 설측음(lateral) [l]과 탄설음(flap) [r]이 의미의 구별을 초래하는데, 국어에서의 [l]과 [r] 소리에는 그런 변별적 기능이 없음을 초급 영어를 배운 독자라면 누구든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1.1) 영어: law ‘법’ raw ‘날(생)것의’
play ‘놀다’ pray ‘기도하다’
국어: 말 [mal] ‘馬; 言’ 솔 [sol] ‘松’
말이 [mari] ‘馬; 言’(主格) 솔이 [sori] ‘松(主格);’
한편 국어에선 파열음에서의 기식의 유무가 어사의 의미를 구별하는 데 비해서 이와 동일한 음성적 차이가 영어에선 그런 기능을 담당하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