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언어 그 위대한 이름 ‘논리’
문제는 논리의 본질적 개념이 19세기 말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퇴보하기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사실상 골동품의 위치로 전락했다는 데 있다. 보편적으로 조망되고 입증되어야 하는 논리의 ‘객관성’과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으로 취급하는 인간 본성의 ‘주관성’은 언뜻 보더라도 서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완전한 논리가 성립되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논리의 태생적 취약성과 퇴보는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논리의 퇴보 현상은 20세기 인본중심적인 다원주의(luralism)가 확산되면서 한층 더 가속화되었다. 결국 다원주의란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승리를 거두는 순간부터 본래의 모습을 잃기 시작하면서 시대적 패러다임의 흐름과 함께 묘하게 뒤틀리고 변질된 결과로 태어나게 된 ‘사회적 변종(social mutation)’이다. 이는 성공하기 전에는 겸손했던 사람이 막상 성공한 후에 겸손이라는 초심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보편주의와 평등주의가 민주주의의 1차 파생물이라면 다원주의는 2차 파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 사상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사회 조류 안에서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하여 결국 “너는 네 생각이 있듯이 나도 내 생각이 있다” 혹은 “너는 네 식대로 살아라. 나는 내 식대로 살겠다”라는 식의 저급한 보편주의 사상을 낳았다. 그 결과 본래 다양성을 의미하고, 또 추구해야 하는 다원주의가 본연의 취지에서 벗어나면서 진리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주관을 무차별적으로 허용하게 된 것이다. 「게임이론」의 선구자이기도 한 양자물리학자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이 강조했듯이 케인스의 현대 경제학에서 논리를 주관하는 수학공식은 어느새 모습을 감추게 되었고,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논리는 빠른 속도로 퇴조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대부분 논리학은 초, 중, 고등학교 교육의 필수과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pp. 48-49
세계화의 의미와 ‘유동성’의 위력
오늘의 경제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질이 유동성과 정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분석의 시작점을 제공한다. 인과론의 시각에서 볼 때 ‘유동성’, ‘자유무역’, ‘에너지’ 등의 단어가 21세기 경제의 ‘키워드’가 되기까지에는 분명 과거 어느 시점에 구체적인 원인 요소가 있었을 것이다. ‘적(경제)’을 아는 과정의 기초 단계는 바로 세계 경제를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세계 경제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 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성공적인 투자는 미래 예측의 정확도에 달려 있고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흘러간 역사가 경험적으로 보여주는 여러 증거에 따라 경제의 원리와 법칙을 먼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제를 역사적으로 뒤돌아봄으로써 발견하려고 하는 것은 게임의 ‘결과’가 아니라 게임의 ‘법칙’이다. 단순히 역사를 참조하는 현상적 관찰을 뛰어넘어 과거의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면, 그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는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우리의 목적은 과거에 심어진 것이 콩인지 팥인지를 알아내는 데 있다. 심어진 것이 콩이라면 굳이 팥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건이 시작하게 된 기원은 그 사건의 현재 모습인 ‘현상’ 밑에 숨겨져 있는 본연의 ‘본질’을 설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적을 볼 수 있어야 싸울 수 있듯이, 본질을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외적 현상에만 집중하는 것은 마치 적의 그림자에 주먹질을 해대는 것과 같다. ---pp. 153-154
‘혁신’과 ‘창조적 파괴’ - 슘페터리언 경제이론
슘페터는 경제를 분석함에 있어 단순히 자본적 시간에서만 경제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윤리, 가치, 문화, 정치 등 인류문명과 사회를 이루는 비경제적 요소에 더 많은 중점을 두었다. “경제학자가 비경제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경제를 분석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라는 그의 가르침은 “경제성장의 핵인 기업가 정신은 이익을 올리기 위한 경제적 요소에만 근거하지 않는다”라는 그의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슘페터의 이론에 따르면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유경쟁시장, 자유경쟁기업 그리고 시장의 진화를 허용하는 환경(제도)이라는 세 가지의 불가결한 요소가 필요하다(시장의 진화를 허용하는 가장 중요한 환경으로는 신용(credit)을 통한 자본주의 금융 시스템을 들었다). 이 세 가지의 요소만 있다면 자유경쟁 자본주의는 비경제적 요소인 ‘기업가 정신’의 동력에 의해 번영하게 된다.
사회경제는 튼비자들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합리적 생산활동에 따라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가 정신에 근거한 획기적 변화, 즉 ‘혁신’에 따라 재구성되고 진화하게 된다. ‘획기적’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듯이 경제성장은 점진적인 모습보다는 간헐적으로 큰 변동을 동반하는 ‘대(大)진화’의 모습을 띠게 된다. 기업가 정신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경쟁은 비단 경제성에 입각한 합리적 사업 결정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통찰력과 상상력을 구현하려는 자아실현의 욕구,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승리 욕구, 자신의 가치를 표출하려는 명예 욕구, 혹은 단순한 ‘패기’ 등의 비경제적 요소에 의해 발생한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한계이윤을 더 높이는 데 목적을 두는 합리적 가격경쟁이라기보다는 인간 본능에 근거한, 보다 생태적인 성격의 사회적 경쟁으로서 경제 체제의 기초와 근간을 바꿀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이다. 경쟁의 외형적 결과는 혁신에 의한 ‘창조적 파괴’인데, 혁신은 새로운 기술뿐 아니라 새로운 구매 과정, 공정 과정, 생산 과정, 유통 과정 그리고 인사 과정을 포함하는 모든 분야에 걸쳐 일어나고 추진된다. ---pp. 168-169
4대 혁신의 의미
첫 번째 혁신- 뉴딜 정책과 브레튼우즈 체제의 도입: 신용금융과 국제교역이 활성화되면서 세계 경제의 세계화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 혁신- 브레튼우즈 체제의 해체와 완전자유 환율변동제의 도입: 미 달러본위에 근거한 불환지폐 체제가 시작되었고, 세계 경제의 세계화가 미국과 유럽을 넘어 제3세계에까지 확산되었다.
세 번째 혁신- 서방 공산주의 붕괴와 그에 따른 중국의 경제 개방: 중국의 경제 개방에 의한 세계 경제 공급 체인(global suly chain)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오늘날 다국적 기업으로 불리는 기업들의 본격적인 다국화(multi-nationalization) 과정이 시작되었다.
네 번째 혁신- 「그램-리치-블라일리법」과 「파생상품거래자율화법」의 도입: 정부가 아닌 사유 금융기관에 의해 다각적으로 유동성이 창출되는 민간 유동성 창출 시대가 시작되었다.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의 팽창, 달러 표시 잠재유동성의 증가, 자유무역협정 추진 등 세계화 요소의 상호 결합에 따라 세계 경제의 진정한 세계화 과정이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pp. 208-209
주인공은 누구인가?
소수 협력 체제가 모습을 드러낸 배경에는 세계화를 포함한 많은 현상의 선한 특질을 자신의 개인적 이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있다. ‘소수 협력’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듯이 이 주체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소수에 불과하지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소수 협력 주체들은 뻔한 결과가 예상되는 특정 정책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책 당국에 로비하고 추진하고 포장하여 사회 전체로 확신시킨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신분을 절대 노출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없다. 소수 엘리트 주체는 특정 기업이나 정치인이 아니다. 내가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최근에 와서 특정 인종, 기업, 정당, 기관 혹은 종교에 대한 ‘음모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도배하는 각양각색의 음모론은 그럴듯한 내용으로 ‘사회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을 감정적 사고오류의 함정에 빠지게 한다. 이 현상은 금권만능주의와 함께 현대 사회가 윤리적으로 퇴보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증거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음모론은 내용이 주관적이고, 출처가 불분명하며 논리적 정당성도 지니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무죄의 추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마녀사냥에 불과하다. 대체로 음모론에서는 특정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인용 출처조차 확실하지 않다.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음모론은 본질적으로 특정 집단에 대한 극심한 악감정이라는 ‘감정’에 근거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이성적이지 못하고, 이성적이지 못한 것은 대부분 진리와 거리가 멀다. 음모론은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 하고 우리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는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소수 협력자에게는 또 하나의 훌륭한 사회적 도구가 된다. 결론적으로 소수 협력주의의 배후에 있는 엘리트 집단이 누구인지를 알려고 하는 모든 노력은 헛수고로 끝날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집착하는 사람은 집착하는 그 순간 이성을 추구해야 하는 본연의 목적에서 이탈하게 된다. ---pp. 273-374
한국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라인 체결이 미국의 ‘은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양국의 신용도 차이를 거론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논리적이지 못한 주장이다. 통화 스와프는 금리 스와프가 내장된 통화 교환 계약이라는 점에서 환을 직접 맞바꾸는 것과 다르다. 즉 환율과 기준금리 변동뿐 아니라 신용도 차이가 반영된 변동금리를 기준으로 거래 주체의 현금흐름 전체를 맞바꾸는 것이다(금융업계에서는 모든 현금흐름의 합을 ‘leg’라고 부른다). 신용도 차이를 결정하는 것도, 금리를 결정하는 것도, 칼자루를 쥐고 있는 주체는 미국이다. 만에 하나, 추후에 한국 측이 단기 유동성 문제로 채무상환을 못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보자. 아마 “이제 그만하자”라고 말하는 대신 미국의 정책 당국은 오히려 더 큰 규모와 더 긴 기간을 조건으로 스와프라인을 확대할 것이다. 어차피 그들의 목적은 신용 확대에 있기 때문이다. ---p. 352
한미 통화 스와프라인 체결이 한국 경제와 자본시장에 호재인 것은 확실하다. 이번 일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최악의 시나리오, 즉 시장 붕괴에 대한 두려움은 버려도 될 것이다. 주식과 환율도 당분간 릴리프 랠리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멀리까지 바라보고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시각을 유지한 상태에서 전략적으로 릴리프 랠리를 즐기는 것과 이제 불행은 끝났다며 무작정 낙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모든 거래는 거래에 참여하고자 하는 당사자들의 목적과 의도가 다를 때 수월해지는 법이다 한국의 목적은 ‘단기적인 유동성 확보’이지만, 소수 협력 주체의 목적은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시장의 동질성과 복잡성’을 추진하는 데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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