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철거, 투쟁 등 말만 들어도 뒷목이 뻣뻣해지는 단어들을 주물러, 물처럼 유연하고 풀처럼 생생하고 꽃처럼 아름다운 소설을 만들어낸 공선옥의 공력이 놀랍다. 분명 투쟁의 이야기는 패배로 끝났지만, 절망이나 허무함이 남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따사로움이 스멀스멀 퍼진다. 이승과 저승, 젊은 아낙과 할매들을 넘나들고, 낯모르는 이들이 피보다 진한 연대를 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시가 되고 꽃이 된다. 핍진한 밑바닥 삶을 늘 애처롭고 막막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작가의 글이, 더욱 자유로워진 화법과 한결 풍부해진 해학을 선보여 봄날 한판 흐드러진 화전놀이에 참가한 느낌이다. 남들 보기엔 실패한 투쟁이지만, 그들에게는 그 투쟁이 바로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꽃놀이’다. 공선옥이 피워낸 ‘사람꽃’을 보러 가자.
임순례(영화감독)
독자로 하여금 작가와 작중인물을 혼동하는 가장 초보적인 실수를 범하게 만드는 소설이 있다면, 아마도 이 땅에선 그녀의 작품이 첫번째로 꼽힐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이 만든 인물의 삶을 직접 살아버리고 마는 탓이리라. 이번에도 그녀는 한번도 꽃 같은 시절을 누려본 적 없는 사람들 틈바구니로 곧장 걸어들어가, 그들의 간고한 생애를 그냥 살아버렸다. 그녀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뽐내지도 않은 채, 야물디야문 손으로 기록해버리기만 했다. 이것은 결코 책으로 가공된 꽃 이야기가 아니다. 온몸으로 돌가루를 뒤집어쓰며 꽃을 피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가 공선옥은 그들의 진실을 다시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바꿔놓았다. 이즈음 많고 많은 작가와 소설들이 곁에 있지만, 나에게 가장 ‘본래적인’ 소설과 가장 ‘근본적인’ 작가를 꼽으라면, 바로 이 소설, 바로 이 작가일 것이다.
이기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