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소설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간결해진 서사와, 기억의 응축된 상징들이다. 심미적 체험을 함축적인 문장으로 아름답게 포착하는 산문적인 특성은 이전의 조경란 소설에서도 드러나는 것이지만, 최근 소설들에서는 일상적 소재를 통한 공백과 응축의 미학이 유독 두드러져 보인다. 줄거리로 쉽게 흡수되지 않는 돌발적이고도 우연한 시적 이미지들을 자주 드러냈던 조경란의 소설을 돌이켜보면, 최근 소설들이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가지런한 서사의 배열과 공간의 섬세한 조형은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고립된 개인의 내면에 대한 섬세한 응시와 존재의 실존적 탐구라는 주제를 천착해온 조경란의 소설은 집과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여 관계와 소통의 질문을 새롭게 열어왔다. 운명적인 혈연 공동체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가족을 고독한 개별자의 세계로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은 응축과 여백의 이야기들 속에서 또다른 서사의 모험을 시작하고자 한다. 달에 가서 바다코끼리를 보는 환상의 여행은 현실에 묵직한 추를 드리운 간결하고 아름다운 서사를 통하여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하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몇번이고 되새기고 싶은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그동안 허공을 날고 있었던 게 아니라 이 세계에서 자꾸만 미끄러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무려나 지금은 집으로 갑니다.” 백지연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