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강원도 속초에서 출생했다. 1979년 『현대문학』에 「장자(莊子)」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대청봉 수박밭』 『해청』 『사진리 대설』 『성에꽃 눈부처』 『김포 운호가든집에서』 『밤 미시령』 장시 『리틀 보이』 동시집 『빵 들고 자는 언니』 등을 간행했으며 최근에 장시 「붕(鵬)새」를 발표했다. 지훈문학상 백석문학상 일연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 시집에서 우리는 찬란한 득도의 경지에 오른 한 시인의 ‘소란 속에 정교해진’ 시편들을 만난다. 고형렬이 ‘가장 낮은 밑바닥’에서 정면으로 마주친 세상은 ‘원래 나의 동물이 인간의 나를 기억’하기 힘들고, ‘너무 높고 많은 수직’인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곳이라곤 발코니뿐인 여자들이 ‘땅바닥에 철커덕’ 떨어지는 곳, 마천루의 ‘절대 열리지 않는 창가’에 러브체인이 살고 옥수수수염귀뚜라미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80층 승강기가 위용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그는 고통을 ‘핏속에 담아 감금’하듯 ‘꼭 하나의 외상’을 남기는 시쓰기를 계속한다. ‘소란이 없는 곳은 죽은 곳’이기에 ‘소란을 불러 소란을 쓰고’, 스스로를 ‘계속 변형’하며 ‘바늘구멍 속의 낙타’가 될 것을 자처한다. ‘여기서 이름없는 꽃이 피어날’ 것을 믿고, ‘결국 새벽에 도착할’ 것을 믿기 때문에. 하여 시인은 일상적이고 하잘것없는 존재들 속에서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다. ‘돼지 궁둥이’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폭설로 무너진 축사에서 거기 살던 쥐들의 운명을 떠올리고, 러브체인이 ‘자신을 확장하지 않음’과 달개비가 다년생이 아닌 일년초임을 축하한다. 거미의 시각에서 거미 일가족의 몰살을 생각하고, ‘짜릿한 살이 떨리는 변기 앞’에서 ‘무변(無邊)’을 맛보고, 식물의 광합성을 놓고 ‘빛을 모아들이는 것,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속삭여준다. 이 살 떨리도록 멋진 시인 덕분에 우리는 ‘오래전 서로 잃어버린 것을 조용히 만질’ 수 있는 ‘통화권이탈지역’으로 들어간다. 얼마나 큰 축복인가! 전승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