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우리나라 자료의 약점을 노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울릉도 서쪽에 울릉도와 비슷한 크기로 우산도가 그려져 있는 지도들이다. [중략] 하지만 그것은 근대 이후 거리와 방향의 정확한 측량 성과에 기초해 제작한 측량 지도만 지도로 인정하겠다는 몰역사적인 주장일 뿐이다.
--- p.6 「글머리에: 명백한 사실의 증명」 중에서
세 기록 어디에도 이사부가 병합한 우산국에 독도인 우산도가 포함되었다는 것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문구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독도가 울릉도에서 보이는 부속 섬이기 때문에 신라 때 울릉도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우산국에도 독도가 당연히 포함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상식적인 추론이기는 해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 자료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아닌 제3국의 사람이라면, 상식적인 추론에 근거한 이런 주장과 입증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일본의 주장 중 어느 쪽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할까.
--- p.25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참고 자료로만 다뤄야」 중에서
우산(도)과 무릉(도)에 대해 『고려사』 지리지와 『세종실록』 지리지에 서로 다르게 서술되어, 비슷한 시기 두 문헌의 편찬자들 사이에 혼동이 있지 않았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고려사』 지리지와 『세종실록』 지리지의 편찬자들이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고 투철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중략] 즉, 두 문헌은 편찬 당시의 ‘우산(도)과 무릉(도)은 본래 두 개의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보인다’는 인식을 서로 다른 시대의 관점에서 써주었을 뿐이다.
--- p.55 「『고려사』 지리지의 우산(도) 기록」 중에서
해답의 단서는 『신찬팔도지리지』에 기록된 우산(도)·무릉(도) 두 섬의 순서에 있다. 정척과 양성지는 우산(도)의 상대적인 위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된 순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본토를 중심으로 우산도 다음에 울릉도(즉, 무릉도)를 그렸고, 그 결과 지도에서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 p.66 「우산도는 왜 울릉도 서쪽에 그려졌을까」 중에서
세종 때의 요도와 성종 때의 삼봉도 사건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보았거나 갔다 왔다고 주장해도, 중앙정부에서 파견한 관리에게 직접 확인되지 않으면 그 존재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너무나 풍부하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확인 기준은, 중앙정부가 이미 존재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던 동해의 두 섬, 독도인 우산도와 울릉도가 아닌 다른 섬인지의 여부였다.
--- p.110 「우산도, 실재하는 섬 독도」 중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자들은 [중략] 사실이라고 판단한 내용과 다른 자료나 주장이 있으면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일설(一說) 또는 이설(異說) 등으로 기록해 주는 투철한 역사 서술의 원칙을 지켰는데, [중략]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할 수 있도록 얼마나 신중한 선택을 통해 편찬되었는지를 알려준다.
--- p.111 「“일설에 우산·울릉은 본래 한 섬이라 한다.” 편찬자들의 투철한 역사 서술」 중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지지의 서술에는 우산도-울릉도의 순서로 기록되었고, 크기와 방향에 대한 정보는 없다. 지도에서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에 그려진 것은 정척과 양성지의 지도 계통에서처럼 본토를 기준으로, 기록된 순서에 따라 그린 결과다.
--- p.117 「지도에 그려진 우산도」 중에서
안용복은 그가 가져간 조선의 「팔도지도」 중 강원도 지도에 울릉도와 자산도가 그려져 있는 것을 근거로 ‘자산도=송도’란 주장을 펼친 것이다. 안용복이 가져간 지도가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지도에 기록돼 있었다는 자산도에서 자(子)는 우산도(于山島)의 우(于)를 잘못 읽어 표기한 것이고, 그림 22와 같은 지도가 현재도 전해진다.
--- p.150 「안용복의 ‘송도=자산도’ 주장은 타당한가」 중에서
「대동총도」 속의 울릉도와 우산도 그리고 기타 부속 섬의 모습에는 전국 그림식 지도책(1720)의 울릉도 지도에서 울릉도 본섬 남쪽에 다섯 개의 부속 섬이 왜 그려졌는지를 풀 수 있는 열쇠가 숨어 있다.
--- p.166 「울릉도 남쪽에 다섯 개의 부속 섬이 그려진 이유」 중에서
‘소위우산도=댓섬’이라고 말하면 ‘우산도=독도’라고 여겨왔던 우리에게 상당히 불리해지는 것 아닐까? [중략] ‘우산도=독도’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며, 대신 ‘소위우산도=독도’가 아니라 ‘소위우산도=댓섬’이라는 사실만을 알려줄 뿐이다.
--- p.180~181 「소위우산도와 우산도」 중에서
울릉도수토관 한창국의 보고 내용에는 울릉도 본섬의 해안가 지명과 부속 섬에 대한 정보가 상당히 자세한데, 우산도는 기록되지 않았다. 여기서 가지섬(可支島)에 가지어(강치)가 있었고 총으로 쏴서 잡았다고까지 기록돼 있어, 어떤 이들은 가지섬을 독도로 보고 싶어 한다. 그 가능성까지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역사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중략] 확실한 근거 없이 독도라고 주장한다면 오히려 일본에 역공의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 p.185 「1794년 울릉도수토관 한창국의 보고 내용」 중에서
안용복은 [중략] 일본인들이 배를 타고 일본을 향하자 곧바로 뒤쫓다가 표류해 일본의 옥기도에 이르렀고 백기주로 갔다. 이 이동 경로를 순서대로 정리하면 ‘우리나라 본토→울릉도→자산도→일본의 옥기도→일본의 본토 백기주’가 되어 자산도를 울릉도 동쪽에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정상기가 이 자료를 가지고 지도를 제작했다면 자산도를 울릉도의 서쪽이 아니라 동쪽에 그릴 수 있게 된다.[그림 27 참고]
--- p.209 「우산도가 울릉도 동쪽에 있다고 기록한 자료」 중에서
정상기는 이익의 「울릉도」를 통해 우산도가 울릉도 동쪽에 있음을 알았지만 울릉도로부터 얼마큼 떨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경우 인용한 원칙에 따르면 “수로가 매우 멀어 그 거리 같은 것을 알 수 없어서” 우산도를 울릉도 동쪽 가까이 그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따라서 정상기의 지도 속 우산도가 울릉도 동쪽 가까이 그려졌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우산도를 독도가 아니라 댓섬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상기가 어떤 자료를 기초로 어떤 원칙에 따라 그렸는지를 알지 못하는, 잘못된 것이다.
--- p.217 「정상기의 지도 속 우산도는 독도다」 중에서
신경준은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대표되는, 우산도와 울릉도가 실재하는 섬이라는 조선 전기의 인식을 그대로 계승해 서술했다. 이어 다른 분주에 “울릉·우산은 모두 우산국의 땅”이라고 『여지지(輿地志)』의 내용을 인용한 후, 이 중에서 우산(도)이 일본에서 말하는 송도(松島)라고 단언했다. 그 송도가 지금의 독도를 가리키므로 신경준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조선 전기의 문헌에 나오는 우산(도)을 독도로 인식했던 것이다.
--- p.241~242 「국가의 견해를 대표하는 『동국문헌비고』 「여지고」 속 우산도」 중에서
신경준의 지도에서 우산도가 울릉도 본섬으로부터 약 40리 정도 떨어진 것은, 그가 울릉도 본섬과 우산도 사이의 정확한 거리 정보를 확보해 그린 것이 아니라, 안용복 사건의 기록으로 보아 울릉도 본섬에서 아주 가깝지는 않다고 판단해 그린 결과다.
--- p.250 「국가의 견해를 대표하는 신경준의 지도 속 우산도는 독도다」 중에서
울릉도 지도에 그려진 우산도에만 높은 정확성의 잣대를 대는 것은 맞지 않으며, 큰 흐름만 이해해야 한다. 울릉도 본섬으로부터 우산도까지의 방향과 거리, 우산도의 크기와 모양 하나하나를, 정확한 정보에 따라 그려진 것으로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된다.
--- p.252 「국가의 견해를 대표하는 신경준의 지도 속 우산도는 독도다」 중에서
신경준의 고을 지도책에서는 울릉도 지도를 두 면에 그리면서 20리 간격의 가로줄을 6개, 세로줄을 9개 그어 남북으로 100리, 동서로 160리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런데 『해동여지도』에서는 울릉도 지도를 한 면에 다 채워 그리면서 20리 간격의 가로줄을 7개, 세로줄을 7개 그어 남북으로 120리, 동서로 120리의 공간을 만들었다. 신경준의 고을 지도책 속 울릉도 지도보다 동서로 40리의 공간이 줄어든 셈인데, 이렇게 되면 『해동여지도』처럼 우산(도)의 위치를 울릉도 본섬에 가까이 붙여 그릴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해동여지도』 속 우산(도)은 당연히 독도다.
--- p.256 「『해동여지도』 속 우산(도)도 독도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