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아이들은 교육과정이 만들어놓은 수업을 그대로 구현하는 존재가 아니라, 수업을 새롭게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어떤 시간에는 국어로 다른 이의 삶을 읽어내며 살고 어떤 시간에는 수학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1학년은 다른 학년과 다르게 철마다 다른 이름의 통합교과로 어우러진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과운영이 아니라 ‘수업살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1학년 수업을 ‘언어교육’과 ‘수학교육’, ‘통합교과교육’으로 나누어 교사와 아이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지난 2년 동안 쓴 일기를 바탕으로 해석하며 이해를 돕는 글을 써보았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이 책이 1학년을 처음 맡거나 아직도 힘든 선생님들께 1학년 수업의 흐름을 이해하고 밑그림을 그리는 데 자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들어가며」중에서
옛이야기 끝내고 바로 수업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삶과 관련이 있다고 하면 이어서 아이들에게 질문하거나 의견을 듣는 게 좋다. 이 활동 자체가 자연스럽게 국어수업이 되기도 한다. 감상을 나누고 자기 생각을 내놓는 활동이 일상이어야 국어수업의 질이 높아진다. 옛이야기 들려주기는 수업의 질을 높이는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활동이다.
단, 꾸준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특정한 수업에 딱 맞는 이야기를 찾으려 애쓰려고도 하는데, 그렇게 하면야 더욱 좋겠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옛이야기가 그냥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전해지게 하는 것이 좋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배치하는가보다는 일단 옛이야기 들려주기가 교사의 몸에 배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옛이야기는 삶으로 먼저 다가가야 한다.
---「TIP·옛이야기는 삶을 나누는 도구」중에서
다시 1학년 담임을 맡는다면, 다음 세 가지 부분을 염두에 두고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첫째, 감정에는 지문이 없다는 것. 우리는 흔히 일정한 감정에는 일정한 표정, 표준화되고 정형화된 신호가 있다는 오래된 관념을 상식처럼 안고 있다. 배럿은 이를 ‘감정 지문’이라고 칭했는데 이러한 감정 지문은 하나의 신화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카드에도 ‘기쁘다’, ‘슬프다’라는 낱말 뒤에 사람의 기쁜 표정과 슬픈 표정의 대표적인 얼굴을 그려놓았다. 이것은 자칫 사람의 감정이 하나로 표준화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아이들에게 심어줄 수도 있는 것이니 주의해서 지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럿은 책에서 감정은 다양성을 기준으로 논의되어야 한다는 역설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다시 1학년 담임이 된다면」중에서
문장부호는 1학년 아이들이 글공부할 때 가장 많이 실수하고 잊어버려서 다시 찾게 되는 부분인데, 교과서는 기능적이고 기계적인 쓰임과 위치에 대한 가르침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장공부는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한 것이다.
일상적으로 읽고 쓰게 하며 자주 가르칠수록 아이들의 실수가 줄어든다. 거기다 그림책 ?문장부호?를 바탕으로 감성적으로 다가가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또 하나의 벽이었다.
---「문장부호, 띄어쓰기와 맞춤법, 일기 쓰기」중에서
지난 해에는 글을 잘 쓰던 아이도 습관적으로 마침표를 빠뜨리는 모습을 자주 봤더랬다. 그때 가르친 아이가 올해 스승의 날에 바른 글씨로 열심히 편지를 써서 내게 주었는데, 세상에, 또 마침표가 빠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올해처럼 했더라면 조금은 달랐을까?
---「문장부호, 띄어쓰기와 맞춤법, 일기 쓰기」중에서
오늘은 태현이도 일기를 잘 썼다고 칭찬해주었다. 아마도 처음 별 다섯 개를 받았을 것이다. 태현이가 솔직한 자기 마음을 글에 담을 줄 알게 되다니 너무도 신기했다. 1학기 때만 해도 낱말 하나 읽기 힘들어했는데 녀석과 실랑이 벌여가며 노력한 끝에 2학기부터는 스스로 낱말과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읽는 속도도 부쩍 빨라졌다. 그래서일까? 마니또가 몰래 건네준 쪽지를 읽고서는 나를 부른다.
“선생님, 이거 보세요.”
“왜?”
“이거 총소가 아니라 청소잖아요?”
“그래 청소지. 야, 태현이가 이제 틀린 글자도 찾아낼 줄 알게 됐네.”
녀석은 씩 웃으며 자랑스럽게 어깨를 쫙 폈다.
---「2016.11.28. 일기」중에서
아이들에게 우리 반의 프레드릭은 진우라고 했다. 아직 유치원생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녀석도 지금 무언가를 모으고 있는 중이라고. 그게 햇살인지, 색깔인지, 이야기인지는 선생님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그 햇살과 색깔,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라고.
그래서 그림책을 보여주는 도중에 아이들에게 프레드릭을 부르는 네 마리의 들쥐 역을, 진우에게 프레드릭 역을 맡겼다. 아이들이 신나하며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어본다. 녀석을 부끄러운지 그만하라고 했다. 마지막에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를 바꿔 “진우야, 너는 사랑스러워”라고 했더니 부끄럽다고 난리다.
“진우야, 너도 대답해야지.”
“뭐라고요.”
“‘나도 알아’ 하고. 자, 다시 한 번 진우에게 ‘넌 사랑스러워’ 해주세요.”
“넌 사랑스러워.”
“나도 알아요.”
딱히 이 녀석만 그렇겠나. 모든 아이가 자기만의 햇살, 자기만의 색깔, 자기만의 이야기를 모아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다만 그 햇살과 색깔, 이야기들을 어른들이 모른 체하거나 모르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오히려 나를 돌아보았다.
---「2017.4.13. 일기」중에서
이로써 ‘비교하기’ 단원을 제외한 모든 단원을 마쳤다. 내일과 모레는 덧셈과 뺄셈 단원의 수학교과서를 훑어보고 정리하며 마무리를 지을 예정이다. 전체적으로 무난해 보였지만 몇몇 아이들에게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해 보였다. 놀이수학시간을 마치고 중간 놀이시간을 시작하려는데 시현이가 한마디 한다.
“지금 쉰다고요?
“그래, 중간 놀이시간이잖아.”
“지금까지 우리 놀았잖아요.”
“하하하. 하긴 놀긴 놀았지. 그럼, 쉬지 말까?”
“아니요?”
---「2017.6.14. 일기」중에서
“선생님, 이제 출장 안 갔으면 좋겠다.”
“오늘은 안 가는데?
“그래도요.”
“가도 너희들 밥 다 먹이고 가잖아?”
“그래도요. 선생님이 중간에 가버리면 그냥 울 것 같아요.”
정 많고 눈물도 많은 광현이 녀석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철없는 아이들 말이라도, 지나가는 소리라 해도 내게는 정말 위로가 된다. 나도 이런 맘인데, 아이들은 어떨까 싶었다. 그냥 형식적으로 내뱉는 소리가 아닌,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한마디를 나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해주었을까?
---「2016.5.23. 일기」중에서
1학년 담임을 2년 동안 맡으며 경험이 쌓이고 확신이 들면서 앞으로도 꾸준히 해나가야 할 것들이 생겼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아이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 변함없이 실천하고자 한다. 전문성은 성찰과 꾸준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난 2년 동안 1학년 담임을 하면서 새삼 절실히 깨달았다.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다른 이의 비판에 응답하지 않는 교사에게 전문성이란 없다. 그것은 독선이고 아집일 뿐이다. 그런 전문성은 혼자만의 경험으로 남을 뿐이고 결코 공유되지 못한다. 다시 1학년 담임이 되어도 다음의 실천이 변하지 않는다면, 나는 진정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교사일 것이다. 다시 1학년 관련 책을 펴내어도 이 내용은 꼭 빠지지 않을 것이다.
· 날마다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림책과 동화책을 읽어줄 것이다.
· 아이들의 말글살이를 돕기 위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 놀이수학을 좀더 탐구하고 다른 실천과 이론들을 익혀 수학수업의 질을 높일 것이다.
· 내가 맡은 아이들 모두를 세심하게 일일이 지도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것이다.
· 매주 아이들과 산책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 날마다 정해진 아이들과 밥을 먹고 수다 떠는 일을 빼먹지 않을 것이다.
· 1학년 아이들과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발전시켜 풍성한 수업을 기획할 것이다.
· 못하고 느려도 끝까지 믿고 격려해줄 것이다.
· 다른 이의 실천에 주목하되, 결국에는 내 빛깔을 만들어낼 것이다.
· 꾸준히 기록하여 성찰하는 글쓰기를 교사를 하는 한 쭉 이어갈 것이다.
---「다시 1학년 담임이 된다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