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는 울먹이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가 가진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배신감과 서운함 때문에 가슴에 멍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야비한 진우가 왜 야비해졌는지, 왜 나약한 여자 교사들에게 더 밉상 짓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울화를 쌓아 간 진우를 한꺼번에 이해했다.
겉모습만 봤을 때 진우는 몹시 얄미운 가해자였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니 안팎으로 상처를 입고 몹시 사나워진 맹수 같은 아이였다. 어머니의 불안을 해소시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더 불안해지고, 믿었던 선생님에게 당한 쓰라린 배신 때문에 신뢰를 잃어버린 아이에게 도대체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상처가 깊은 맹수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것밖에 없다. 그 상처는 보지 않고 으르렁거리는 태도만 탓한다면 진우 같은 아이는 더 사납게 날뛰다가 제풀에 쓰러지고 말 터였다.
“왕따를 당했어요…….” 정연이는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입을 열었다. ‘왕따’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모든 의문이 한꺼번에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동안 정연이가 보인 모습이 한 줄에 꿴 구슬처럼 맥락을 갖추기 시작했다. 늘 자신감 없던 모습, 비록 심부름이라도 말 걸어주고 관심 가져주면 기뻐하던 모습, 슬퍼도 힘들어도 제대로 표현 못하던 모습, 언제나 괜찮다고 하던 모습…….
정연이에게 학교는 수업을 듣고 학업을 성취하는 배움의 전당이 아니라 어떻게든 하루하루 무사히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의 공간이다. 이를테면 정연이는 땅이 바짝 마르는 건기에 물웅덩이를 찾아가는 초식동물과 같은 심장을 지닌 아이다. 어쩔 수 없이 물가를 찾지만 언제 어디서 나타나 목숨을 위협할지 모르는 사자나 표범, 악어를 경계하느라 늘 두근거리는 심장 말이다.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이 두리번거리는 일 말고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분주히 눈치를 보는 사람의 귓가에 대고 온종일 구구단을 가르친들 2단이라도 외울 수 있을까?
성희를 보고, 성희를 통해서 나를 보고, 그리고 교실을 둘러보니 아이들은 저마다 허약한 무기 하나씩을 붙잡고 나날을 견디고 있었다. 누군가는 학교에 오기만 하면 잠을 자고, 누군가는 멍을 때리고, 누군가는 악악 소리를 지르고…….
그런 아이들의 실상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내 괴로움도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괴로움은 무력감이었다. 내 힘이나 의지로 어찌 해볼 수 없다는 무력감. 그 무력감은 이내 쉬 아물지 않는 상처로 변해갔다. 첫 발령을 받은 학교에는 성희처럼 한편으로는 강하고 한편으로는 한없이 약한 아이들이 많았다. 말 한 마디만 따뜻하게 해주어도 온 마음을 기대오는 아이들이었다.
그해 6월 어느 날, 경애는 다시 가출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갔다.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날마다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보더니 학생주임이 혀를 차며 말했다.
“장 선생, 가출한 지 일주일이 넘으면 안 돌아올 확률이 높아요. 그건 애가 의식주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는 뜻이거든.”
갑자기 머리가 아득해지며 온갖 장면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힘없고 순진한 여자아이가 당할 수 있는 온갖 나쁜 상황이 그려졌다.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치면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학생주임이 나를 달래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교실로 달려가서 엉엉 울며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경애 안 돌아오면 안 돼. 꼭 찾아야 돼. 연락되는 사람 있으면 제발 좀 알려줘!”
울며불며 소리치는 나를 보자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절박한 내 마음에 공감하는 눈치였다. 경애와 연락이 닿는다는 아이를 불러서 취조하듯이 따져 물었다.
“넌 알지? 경애 지금 어디 있는지 알지?”
“실은…… 경애가 채팅하다가 어떤 남자애 하나를 만났대요. 공주 사는 앤데 그 남자애 아빠가 직장을 구해준다고 해서 공주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아까 전화해서 지금 공주로 가는 중이라고……. 근데 선생님, 그 남자애 아빠가 공주에서 알아주는 깡패래요.”
그다음에 내가 어떻게 교감선생님을 찾아갔는지는 기억에 없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두서없는 설명을 울부짖다시피 토해내고 있었고 교감선생님을 비롯한 동료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선배 교사가 나를 붙잡고 소리쳤다.
“장 선생 진정해요. 괜찮아, 괜찮을 거라고. 그래도 애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냈잖아. 나는 말이야, 애가 섬으로 팔려가기 직전에 대합실에서 찾아온 적도 있었어요.”
진정하라고 건넨 말에 나는 더 크게 울고 말았다. 급박한 상황 앞에서 그 보다 더 센 경험담을 듣자니 맞아서 아픈 자리를 다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이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중략)
그 뒤로도 오랫동안 경애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웠다. 오랫동안 무력감과 자책의 감정을 오가느라 괴로웠다. 내가 그 아이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현실이 고스란히 내 무능력 때문인 것 같았다. 담임이라면 맡은 아이의 인생에 도움을 주고 길잡이가 되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자책을 거듭하다가 자존심이 상할 지경이었다.
그때 나는 현실적으로 그 아이의 삶을 눈에 띄게 바꿀 만한 힘이 내게 없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게 그런 힘이 없는 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지 못했다. 담임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눈에 띄게 바꿔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 생각이 얼마나 무모한 욕심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내 탓이 아닌 일을 내 탓으로 만들고, 애초에 내 능력 밖에 있는 일을 내 ‘무능’으로 치부하고 괴로워하느라 정작 경애에게는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
차츰 내 눈에 진짜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아이들에 대한 내 시각이 있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잘못 보고 있었고, 아이들을 제대로 몰랐다는 걸 확인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태어난 몫만큼 알아서 잘살고 있고, 알아서 길을 찾아가는 존재들이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사는 제 뜻대로 안 되면 포기하고, 화내는 게 아니라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교사가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는 힘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하고 지켜보는 과정에서 길러지는 거였다.
내가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자 아이들은 헤매다가도 돌아왔다. 돌아와서 스스럼없이 자기 얘기를 털어놓았다. 괜찮다, 잘 하고 있다, 는 격려와 지지만으로 아이들은 행복해했다. 상황은 바뀌지 않아도 마음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내 마음을 관찰하고, 나 자신과 화해한 뒤에 얻은 것들을 아이들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다른 누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사랑해서 스스로 행복을 얻는 길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 길은 아이들 저마다 갖고 있는 저마다의 ‘마음’에 있었다. 그 마음만 제대로 알면 아이들은 어떤 교사가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을 거였다. 슬기로운 교사를 만나도, 사랑스런 교사를 만나도, 무섭거나 미운 교사를 만나도 말이다. 그처럼 아이들 마음의 근육을 탄탄하게 가꿔줄 수단을 고민한 끝에 나는 ‘마음일기장’을 만들었다.
나를 비롯한 동료들은 공들여 만든 마음 일기장을 들고 각자의 학급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처음부터 눈에 띄게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다. 열심히 쓰는 아이도 있고, 시큰둥한 아이도 있고, 성의 없이 쓰는 아이도 있었다. 다만 아침에 다 같이 마음 일기를 쓰고 하루를 시작하면 교실 전체가 평온하게 안정되는 효과는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차츰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충실하게 정리한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갔다. 즉흥적으로 하는 행동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원인도 모르는 채 울고 싶기도 하고 갈피를 못 잡는 것처럼 보이던 마음들이 차분하게 진정되었다. 마음 일기를 쓰고부터 편안해졌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한편, 나 또한 아이들과 소통하는 좋은 길을 발견했다는 확신이 강해졌다.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개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길이었다. 아이들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길은 참으로 다양했다. 그 길의 모양새에 따라 나는 때로 말투를 바꿔야 했다. 상대에 따라 거칠게, 혹은 따뜻하게.
마음 일기는 교사의 길을 가는 내가 꼭 필요한 지점, 꼭 필요한 시기에 선물처럼 손에 쥐게 된 나침반 같은 도구였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