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몸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
우리가 시작한 일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대전지역 몇몇 여행지의 편의시설 실태를 조사하여 장애인들이 장애 없이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비장애인 위주로 편제되어 있는 대전지역의 건물, 도로, 편의시설 등을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개선하는 방안을 제시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2000년을 전후하여 ‘손상이 곧 장애’라는 전통적인 장애개념 대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배제가 곧 장애’라는 장애에 대한 정의가 바뀐 것도 우리 작업의 정당성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몸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는 외침과 동일한 신념을 표출한 것입니다.
--- p.5
편의시설의 총괄적개관 (대전시립미술관)
장애인주차장 : 장애인주차장은 일반주차장의 공간에 함께 설치되어 있다. 주차 대수는 1대이고, 1층 출입구와 가까운 곳에 있다. 예술의전당 옆 장애인주차장을 함께 이용하는 것도 가능한데, 미술관까지 차 없이 이동하기에는 거리가 멀다는 단점이 있다.
출입구 : 2층의 1전시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건물 앞의 긴 경사로를 통해 2충 출입문에 도착하는 방법과, 건물 1층 외부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방법 2가지가 있다. 2층 출입구에는 자동문이 설치되어 있고 출입문 앞에 음성지원이 되는 점자촉지안내판과 점자유도블록이 자리 잡고 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 관람객이 출입하기 편리하다. 건물 1층 외부 오른편 엘리베이터 옆에 위치한 출입문도 자동문으로 되어 있다. 휠체어 장애인이 5전시실로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없다.
장애인 화장실 : 장애인화장실은 1, 2층에 있으나 모두 남·녀 공용이다. 화장실 안에서의 휠체어 회전은 가능하다. 2018년 7월 10일에 1차 실태조사를 했을 때는 화장실 문이 아주 특이한 형태의 접이식(특이 접이문)으로써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혼자 화장실문을 여닫기에 매우 불편한 구조였다. 실태조사 후 미술관에 개선요청지를 제출하였다. 2019년 5월 현재 화장실 문이 특이식 접이문에서 자동문으로 교체되어 사용하기에 편리해졌다. 그러나 장애인화장실이 여전히 남·녀공용인 것은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 p.127
실태조사 예정일인 9월 4일, 하루 전날 대전에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에 일정을 미뤄야 할지 고민했다. 다행히 조사 당일에는 날이 맑아졌고, 동춘당 지형의 물 빠짐 상태가 워낙 좋아 무리없이 실태조사를 시행할 수 있었다. 요원들이 전동휠체어로 흙길을 이동하는 데에도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3명을 포함한 총 5명의 실태조사원들이 모여 동춘당과 종택, 소대헌·호연재 고택을 돌아보고, 주변의 편의시설 조사를 실시했다.
동춘당공원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문화재인 동춘당은 앞문에 자리 잡고 있는 높은 층계로 말미암아 휠체어 장애인들에게는 접근 불가능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만큼 우리의 동춘당 실태조사는 휠체어 장애인들도 대전 문화의 정수를 느껴볼 수 있도록 동춘당의 출입 여건을 개선해 보려는 시도의 하나로 계획되었다. 서울의 경복궁처럼 관광객이 가닿을 수 있는 곳마다 나무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다면, 그야말로 무장애 아니겠는가. 서울 장애인이 경복궁을 바꾼 것처럼, 대전 장애인이 동춘당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의 개선노력이 어떤 성과를 볼 수 있을까 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조사를 시작하였다.
--- p.182
지루하고 힘들었던 여름이 지나간 가을 초입, 아침 일찍 집을 벗어나 어딘가로 내달리고 싶은, 딱 그런 날에 대청호 로하스길 편의조사를 나섰다. ‘님도 보고, 뽕도 따는 날’이 바로 이 날이지 않았을까. 얇고 하늘거리는 스카프를 목에 둘러도 좋을 법한 가을 아침 날씨가 살짝 옷깃을 여미게도 하였지만, 한낮이 되자 가을하늘과 바람이 트래킹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정취와 심상을 만들어내었다.
잠시는 아무 생각 없이 휠체어를 타고 달려보는 그 자체만을 만끽하였다. 마치 독일 아우토반에서 람보르기니를 타고 질주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고 해두자. 수 년 전에 누군가의 차를 타고 드라이브 했던 것이 고작이었던 대청댐을 전동휠체어로 트래킹을 한다는 것이 낯설고 설렜지만, 기분은 좋았다. 나무데크로 된 로하스길 옆에 자전거길도 나있어 트래킹족끼리 오다가다 눈인사도 나눌 수 있는 즐거움도 잊을 수 없다. 모두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다가 휠체어 접근과 출입이 가능한 장애인화장실을 만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조사요원들은 이모저모 살펴보고 점검하였다, --- p.212
보람으로는 몇몇 여행지의 편의시설이 실태조사 진행 중에 개선된 것
우리는 대전시립박물관에서 첫 실태조사를 시작한 이후, 무더위와 추위를 이겨내며 충남대학교 벚꽃길까지 열네 곳의 여행지를 탐방하였다. 실태조사를 진행하면서 여행지의 시설에 결정적인 문제점들이 발견되면 공문을 보내 개선할 것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보람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몇몇 여행지의 편의시설이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중에 개선되어 그 성과를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경우이다.
우리가 시설의 개선요청 공문을 올리자 신속하게 장애인화장실을 수리하고, 이에 더하여 강당 입구에 휠체어 리프트까지 설치하여 준 대전시립미술관의 조처는 가장 뿌듯하고 보람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우리의 개선요청에 따라 공원 출입구 가까이 장애인주차장을 설치해 준 뿌리공원이나, 장애인주차장 표시가 없어 불편했던 주차장에 별도로 장애인주차장 표시를 해주어 장애인의 편의를 배려해준 대청호 물문화관의 조처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전지역의 귀중한 문화재 동춘당은 출입구의 높은 돌계단으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에게는 대전의 대표적 관광명소라는 호칭이 무색했었다. 수차례에 걸친 개선건의를 통해 일년여 후 후문에 경사로를 설치해 주어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제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함께 대전의 대표적인 문화재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 p.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