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는 개를 키울 수 있는 임대주택이 의외로 많지 았았다. 특히 독신자용 원룸 중에서는 열 곳 중 한두 곳 있을까 말까 했다. 키울 수 있는 곳이라도 보증금이 두 배에 달하거나, 이사를 나갈 때 개 냄새를 없애는 특수 소독을 의무로 해야 하는 등 조건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 새로운 집을 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나는 일본에서 외국인(그중에서도 한국인)이라는 핸디캡(?)도 갖고 있었기에, 부동산 중개인은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 때 입주 희망자가 외국인이라는 것과 개를 키우려 한다는 것을 사전에 조심스레 양해를 구했고, 그래도 괜찮다는 집만 소개해주었다. 당연히 선택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반려견을 키울 수 있다면 그런 것쯤은 개의치 않기로 마음먹고 포기하지 않았다. --- p.22~23
녀석의 이름은 ‘코타로(小太?)’라고 정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처음에는 영화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토토라고 할까 생각했다. 부르기 쉬우면서 세련(?)됐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왠지 순박한 시바견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인 듯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시바견의 이름 중에는 코타로가 많다고 했다. 코타로는 우리나라로 치면 ‘바둑이’ 같은 친숙하고 소박한 이름이다. 나와 코타로가 발붙이며 살고 있는 일본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이름으로 짓고 싶었다. --- p.35
시간은 점점 흘러 자정이 됐고, 코타로는 이미 15시간 이상 혼자 있는 상태였다. 나는 코타로가 지금쯤 어떻게 하고 있을지 걱정이 되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산책을 할 수 없으니 배변도 볼 수 없고, 밥을 먹을 수도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살인적인 업무량이었다. 단 10분이라도 산책을 시키고 싶었지만, 집까지 오고 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최소 30분은 자리를 비워야 하는데, 업무의 특성상 그 30분의 틈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나는 이튿날 아침 6시가 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코타로는 거의 꼬박 하루를 혼자 지낸 셈이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코타로가 입구까지 마중을 나왔다. 하지만 왠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밥을 못 먹어서 위액이 넘어왔는지 토를 한 흔적도 있었다. (…) 이날, 나는 처음으로 코타로를 데려온 것을 후회했다. --- p.76~77
나는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코타로에게 꽤 많은 말을 하는 편이다. 역시 커맨드처럼 일본어로 말을 걸곤 한다. 만약 집에 웹카메라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어서 누군가가 그 광경을 보고 있다면 조금 부끄러울 것 같다. 아침에 코타로를 혼자 두고 회사에 갈 때 반드시 하는 말이 있다. “착한 아이로 있으렴(이이코니 시테테네いいにしててね)!” 이 말을 들으면 코타로는 빤히 나를 쳐다본다. 벌써 3년 넘게 같은 말을 반복하니 이제는 코타로도 이 말의 의미를 알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집에 돌아오면 반갑게 맞아주는 코타로에게 “착한 아이로 있었니?” 하며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부비며 과격한 스킨십을 하는 것도 일상이다. --- p.105~106
밤에 퇴근하니 녀석은 평소와 다름없이 현관문 앞으로 마중을 나왔다. 그런데 평소처럼 꼬리치고 기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아직도 나한테 삐친 것 같았다. 조심스레 다가가 꼭 안아주었는데, 내 품을 쏙 빠져나가 버렸다. ‘쓰다듬어주지 않아도 되니까 빨리 산책이나 가요!’ 나를 쳐다보는 코타로의 표정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조금 머쓱했지만 지은 죄가 있으니 산책 준비를 하고 바로 집을 나섰다. 이사를 마치고 쉴 틈도 없이 바로 다음 날 회사에서 일하고 오니 피곤하기도 했지만, 그날은 평소보다 더 시간을 내어 산책을 했다. 코타로가 만족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 p.117
오다이바는 쇼핑센터, 공원, 방송국, 사무실, 놀이공원, 전시장 등 각종 오락·편의 시설이 모인 인공 섬이다. 모노레일을 타고 갈 수도 있고, 도요스 역 근처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이곳은 경치가 뛰어나고 해변을 산책할 수 있다는 점도 좋지만, 반려견과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쇼핑 시설이나 레스토랑이 많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물론 반려견 용품을 판매하는 곳이나 강아지 교실 같은 시설도 충실하다. 말 그대로 ‘강아지들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 p.126
한번은 구사쓰(草津)라고 하는, 도쿄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 정도 걸리는 온천 마을에 2박 3일로 여행을 가게 됐다. 같이 동행한 분의 자동차에 코타로를 태우고 아침 일찍 출발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코타로는 지하철 타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자동차에 타는 것은 아직 익숙지 않다. 내가 안고 타면 자세가 안정적이지 않아서 그런지 더 불안해하기에 여행용 케이지에 넣어서 갔는데, 차가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케이지 안에서 뱅글뱅글 돌면서 안절부절못하는 것이다. 아침밥을 먹인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10분 정도 가니까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말았다. ‘이제 여행 시작일 뿐인데, 과연 2박 3일 동안 무사히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야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된 사실인데, 강아지는 차멀미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차에 태울 일이 있는 날에는 아침밥을 주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한다.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 p.157~158
일본은 견주와 반려견이 함께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일용품이나 DIY 용구, 잡화 등을 판매하는 대형 마켓인 홈센터 같은 곳에는 반려견과 함께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반려견 탑승용 카트가 마련되어 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도 홈센터가 있어서 거의 매주 코타로를 데리고 쇼핑을 하고 있다. 다만 위생상의 문제가 있으므로 홈센터 내에서도 식품을 판매하는 곳에는 들어갈 수 없다. 오다이바 지역의 경우, 대형 쇼핑몰에도 반려견과 함께 입장할 수 있는 곳이 많다. 한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아쿠아시티나 팔레트타운은 반려견을 유모차에만 태우면 잡화점이나 서점, 카페, 레스토랑, 심지어는 야키니쿠(일본식 불고기) 전문점에도 같이 들어갈 수 있다. 일본은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 p.188
사람도 그렇지만, 특히 강아지는 자기의 운명을 선택할 수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에서 손자 손녀까지 3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의 한 식구가 될 수도 있고, 코타로처럼 일인 가정에서 생활할 수도 있다. 가족이라곤 나밖에 없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책은 하루 두 번씩 나가고, 평일 오후에는 낮잠을 자며 홀로 시간을 보낸다. 주말에는 나와 긴 시간을 함께하고 때때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캠핑을 가거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으로 충분할까? 코타로는 만족하고 있을까? 코타로를 키우면서 이런 생각이 항상 떠나지 않는다. 코타로의 육아일기는 현재진행형인 만큼 시행착오는 계속되겠지만,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보다 앞으로 같이 지낼 시간을 보다 의미 있고 뜻깊은 하루하루로 채워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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