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 부근의 모하비 사막 66번 도로변. 여기에 이름도 생경한 바그다드 카페가 있다. 이 카페에는 여주인 브렌다와 그녀의 남편과 아들 살라모, 딸 필리스 그리고 살라모가 사고(?)를 쳐서 낳은 손자가 살고 있다. 카페에는 군식구도 있다. 카페 일을 돌보고 있는 인디언 청년 카후엔가, 모텔을 근거지로 매춘을 하고 있는 데비, 할리우드 출신의 삼류 화가 콕스이다.
카페 여주인 브렌다는 생활력이 아주 강한 억척스러운 여자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카페 일에 통 관심이 없고, 브렌다는 이런 남편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카페 일에 관심이 없기는 그녀의 아들 살라모도 마찬가지다. 살라모의 최대 관심사는 피아노. 그는 한창 어른의 손길이 필요한 자기 아기는 팽개쳐 둔 채 온종일 피아노 연습에만 열중한다. 한편 사춘기 딸 필리스는 항상 밖으로 나돌며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린다. 이런 가족과 함께 사는 브렌다의 삶은 짜증으로 얼룩져 있다.
어느 날 이 카페에 뚱뚱한 여자가 찾아온다. 그녀는 야스민이라는 이름의 독일인 관광객인데, 여행 도중 남편과 부부 싸움을 하고 홧김에 차에서 내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딱히 갈 곳이 없는 야스민은 카페에 딸린 모텔 방에서 당분간 묵기로 한다. 하지만 브렌다는 처음부터 야스민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러다가 자기가 외출한 사이 야스민이 카페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자기 책상을 정리해 놓은 것을 보고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다며 불같이 화를 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야스민은 브렌다를 비롯한 카페 식구들과 친해진다. 그중에서 야스민의 출현을 가장 반기는 사람은 살라모이다. 상당한 피아노 실력을 갖추었음에도 야스민이 오기 전까지 그의 피아노 연주는 카페에서 찬밥 신세였다. 아무도 그의 음악을 알아주지 않았다. 브렌다는 아들이 피아노를 칠 때마다 조용히 하라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야스민이 들어와 조용히 눈을 감고 그의 연주를 경청하는 것이 아닌가. 살라모는 그 모습을 보고 감동한다. 그리고 “이 집에 내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은 야스민밖에 없어.”라며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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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카페〉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조합되어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영화이다. 바그다드와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카페 이름도 그렇고, 뚱뚱한 독일 여자가 뜬금없이 마술을 하는 것, 콕스가 그린 그림이 보테로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것, 매춘부가 읽는 책이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라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영화에서 가장 생경한 것은 바로 음악이다. 여기서 살라모가 연주하는 음악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이다.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허름한 카페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 쉽사리 줄긋기가 안 되는 조합이다. 살라모는 시도 때도 없이 피아노를 친다. 그렇게 바흐의 음악이 뜬금없이 카페의 지루한 일상으로 끼어든다.
야스민이 자기가 독일인이라고 말했을 때, 살라모는 그녀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도 독일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흐와 같은 나라 사람인 야스민이 자기 음악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날 그가 야스민을 감동시킨 곡은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Das wohltemperierte Klavier》 제1권 1번 〈전주곡Prelude No.1 in C major BMV 846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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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민이 눈을 감고 듣던 곡은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의 1번 〈전주곡〉이다. 전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 곡에는 멜로디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 그냥 8개 음으로 구성된 분산화음이 연속적으로 펼쳐질 뿐이다. 같은 패턴의 음형이 음높이와 화음을 달리하면서, 중간에 어떤 변형도 없이 고집스럽게 반복된다. 그 펼쳐지는 모양이 마치 물결 같다. 생성하는 듯하다 소멸하고, 소멸하는 듯하다 생성한다.
바흐의 음악을 들으며 늘 놀라는 것은 이렇게 반복적이고 단순한 구조에 어떻게 그토록 풍성한 음악적 가능성이 담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안에 무수한 멜로디, 무수한 리듬, 무수한 화음을 담을 수 있다. 프랑스 작곡가 구노는 이 곡에 ‘아베 마리아’라는 멜로디를 선사했다.
살라모는 자기 기분에 따라 이 곡을 다양하게 변주했다. 그는 주로 리듬과 템포의 변형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아주 빨리 쳤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보통 빠르기의 부드러운 레가토Legato로 시작한다. 카페 식구들의 행복이 절정에 달했을 때, 살라모의 바흐는 경쾌한 부점음표로 바뀐다. 그러다가 야스민이 떠났을 때, 살라모는 아주 느리고 비통하게 이 곡을 연주한다.
---「사막의 오아시스, 바그다드 카페 - 퍼시 애들론〈바그다드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