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식, 이거 영 개수작 아냐? 라고 항의하신다면, 그는 기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와 단절되어 있음을 좋거나 싫거나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니까요. 어쨌든 그로서 보면 성공을 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격렬한 항의가 이어진다면 약간은 아쉽네요. 왜냐하면 단절을 보이고 싶은 그의 마음이 또 다시 여러분과 단절되었으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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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짐을 내려놓듯 나를 내려놓고는 빠른 속도로 가버렸다. 내가 차 문을 닫고 인사를 하려고 돌아섰지만 고급 중형차는 이미 병원 출구로 향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눈에 띄는 간호사와 직원에게 어디로 가면 닥터 H를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비명을 질렀다.
"어서 응급실로 가세요. 지금 당신의 머리에선 피가 나고 있어요. 당장 소독하고 꿰매야 한다니까요."
나는 어지럽고 숨이 막혔다. 그리고 답답했다. 큰 소리로 말하고 싶었지만 온몸에 힘이 없었다.
"압니다. 다......잘 압니다. 그러니 닥터 H를......"
"......예약하신 거예요?"
예약. 그렇다. 나는 이미 일주일 전에 예약을 했었다. 그것은 이상한 광고였다. 실험에 참가할 건강한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였는데, 실험실에서 그들이 제공하는 조건으로 최소한 열흘을 지내야 하는 실험이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나 더 견딜 수 있는 날까지 견디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만만치 않은 돈을 준다고 하였다. 나는 일주일 전에 그 광고를 보고 문의 전화를 했었다. 담당의라는 닥터 H는 신체를 상하게 하거나 또는 신체에 주사나 약물을 투여하는 실험은 아니라고 했다.
첫 소설집 『이상(異常) 이상(李箱) 이상(理想)』이 가짜와 진짜의 구분이 분명치 않은 이른바 포스트모던적 상황에서 어떻게 진짜를 인식하고 실현할 수 있는가 고뇌하고 있었다면, 두번째 소설집 『나를 훔쳐라』는 가짜의 진실이라는 전면적 현실이 주어져 있는 상황 속에서 그 가짜의 진실을 파괴하고 정체성의 혼돈(혹은 혼돈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소설이야말로 가짜의 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이 만들어내는 가짜의 진실은 다른 가짜의 진실의 '사기'를 간파해내고 그것이 '사기'임을 밝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박성원의 소설은 일종의 복화술의 소설이다. --- 성민엽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