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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나의 시네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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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2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127*188*30mm
ISBN13 9791160870589
ISBN10 116087058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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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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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상의 변화를 촉발하는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 중이다. 전업주부 엄마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한 여성의 일상을 다룬 소설 『82년생 김지영』(조남주)이 각색영화(김도영, 2019)로 확장되면서 흥행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저출산 (초)고령화라는 인구절벽에 직면한 한국에서 아이 엄마는 고마운 존재일 수 있다. 그런데 남편이 벌어다 주는 생활비에 기대 살아가는 아이 엄마를 ‘맘충’이라 깎아내리면서도 유지되는 ‘현모양처론’은 과거 유산이다. 남편만큼 공부도 하고 사회생활도 했던 김지영이 바로 그런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인식 차이는 결혼식과 장례식을 비롯한 의식에서 성별에 따른 옷차림새로 드러나기도 한다. 여성은 주로 한복을 입지만, 남성은 양복을 입는 의상 코드는 동시대의 비동시대성을 목격하게 만든다. 한복 여성과 양복 남성이 가족이나 동료로 공존하는 것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그런데 외계인이 이런 풍경을 본다면, “아! 이 지역은 여성이란 존재가 과거 전통을 지켜나가는 곳이구나!”라고 인식할 여지가 있다.
급격한 근대화와 경제발전을 이루는 가운데 남녀 동등 학력을 갖춘 1980년대 이후 세대에게 성차이가 성차별로 작동하는 일상은 숙명론으로 수용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김지영이 아픈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울증 여파로 윗세대 여성들에게 빙의된 그녀의 분열증을 보노라니 나혜석이 떠오른다.
한 세기 전, 개화기 조선 여성으로 예외적인 고등교육을 받으며 전방위 예술가로 활동하던 나혜석은 서울 용산시립 병원에서 5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개인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여성이기에 고통스런 인생길에 들어선 나혜석은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 이전에, “여자도 사람이외다”라고 선언했다. 바로 그 외침이 김지영의 아픔과 절규로 반복되는 중이다. --- p.15

인간의 내면적 삶, 특히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성별, 세대별 차이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안목에서 일가를 이룬 샘 멘데스 감독의 〈레볼루셔너리 로드(Revolutionary Road)〉(2008)는 참조할 만한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과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첫눈에 반해 결혼한다. 이들은 뉴욕 맨해튼 중산층 거주지역인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아름다운 집을 장만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일로 바쁜 프랭크, 두 아이 양육과 집안 살림에 묻혀 연극배우 경력을 단절당한 경단녀 에이프릴의 결혼생활은 갈등에 빠진다.
에이프릴은 행복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삶의 변화, 즉 배우로서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당대 세계 예술의 도시였던 파리 이민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고 하지만 프랭크는 승진 권유를 받으며 이민을 포기한다. 그 와중에 벌어지는 격렬한 부부싸움 장면은 〈타이타닉〉에서 로맨스 판타지를 재현했던 두 배우가 반전하듯 갈등을 폭발시키는 열연으로 보여 준다. 정신병자지만 현자 같은 명대사를 던지는 기빙스는 “수많은 사람이 공허함 속에 살죠. 하지만 절망을 보려면 진짜 용기가 필요해요.”라며 에이프릴을 자극하기도 한다. --- p.22

마치 우연의 법칙이 작용하듯 ‘화씨’를 내건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게 되었다. 하나는 미국의 부조리한 현실 고발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 붐을 일으킨 마이클 무어의 [화씨11/9: 트럼프의 시대](2018)이다. 다른 하나는 SF 고전영화로 꼽히는 [화씨 451](프랑소와 트뤼포, 1966)을 케이블 TV 영화로 리메이크한 [화씨 451](라민 바흐러니, 2018)이다. 무어 감독이 테러에 직면했던 부시 정부의 무능함을 신랄하게 고발한 [화씨 9/11](2004)에서 보듯이 제목에 굳이 ‘화씨’를 붙인 것은 사상의 자유 통제를 고발한 트뤼포 영화와 그 원작 소설인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날씨나 체온 등 일상적으로 섭씨를 쓰는 우리에게 화씨는 환산이 필요한 표지이다. 우리가 섭씨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듯이 화씨를 사용하는 미국에서 ‘화씨 451도’는 책이 불타는 온도로 (섭씨로 환산하면 233.77…°), 사상의 자유를 금하는 분서갱유 재난상태의 징표로 작동한다. 그런 점에서 SF 소설과 영화, 다큐멘터리 형태로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화씨 시리즈’는 정보화시대 통제 권력의 문제를 다룬 테마 장르로 보인다. 마치 재치문답처럼 [화씨 11/9]는 숫자 뒤집기 놀이로 열린다. 정치와 자본권력의 야합을 고발한 전작 [화씨 9/11]의 숫자 순서가 뒤집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뉴욕이 충격적 테러를 당한 ‘9월 11일’은 2016년 ‘11월 9일’, 즉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날로 연결된다. 무어의 재치라고만 보기에는 기묘한 우연의 일치이기도 하다. --- p.25

지구촌을 돌며 선선한 가을바람을 타고 날아온 [나의 마지막 수트(The Last Suit)](파블로 솔라즈, 2017)도 고령화 현실에 접속하는 시니어 로드무비이다. 불편한 오른쪽 다리를 ‘오랜 친구 추레스’라 부르며 곧 90세를 맞이하는 아브라함의 여행길이 드라마의 핵심으로, 그가 기차를 타고 홀로코스트 기억에 직면하는 과정이 절묘하게 풀려나간다. 바이올린과 아코디언 연주에 맞춰 여럿이 어깨동무하며 춤추고 환호하는 흥겨운 이미지로 열린 영화는 아브라함을 위한 가족사진 촬영으로 이어진다. 내일이면 요양원에 들어가야 하는 그는 온 가족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기념으로 증손들을 거느린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그런데 증손녀 미카엘라가 보이지 않는다. 단체 사진을 꺼리는 고집불통 미카엘라를 빼놓고 사진을 찍자고 해도, 그 또한 고집불통이기에 반항적인 아이를 설득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딸들에겐 냉정해도 유독 미카엘라를 애지중지하는 그는 아이가 요청한 지문확인 가능한 아이폰6를 구입할 돈(800달러)을 주기로 합의해 드디어 6인의 증손들이 모두 함께하는 가족사진을 찍는다.
폴란드에서 아르헨티나로 탈출해 온 그는 재단사로 일하며 딸들을 키웠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딸들은 출가했고, 이제 그는 집을 처분한 유산을 딸들에게 나눠주고 짐을 정리하는 중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자신의 나이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이 대다수지만, 그 자신은 남은 인생을 기쁘게 살겠다고 작정한 독립적인 존재인 척한다. 그러나 장애 다리를 잘라내라는 권유나 요양원에서의 삶이 달갑지 않기에 그는 겉으로는 당당해도 속으로는 지쳐 있다. 그런 와중에 그가 남성용 정장 수트 한 벌을 발견하는 순간, 그의 남은 인생 여정은 로드무비로 급진전된다. 그 수트는 오래 전, 그러니까 70년 전 홀로코스트 재앙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친구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던 물증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모험적인 혼행을 결단한다. 너무 아프기에 지워버려 없어진 것 같던 망각도 언젠가 출몰하는 또 다른 형태의 기억이다. 새로운 인생 이모작을 결단하면서 강렬하게 떠오른 70년 전 약속은 유일한 버킷 리스트 항목이 되어 그의 온 마음을 사로잡는다. --- p.31

“어쩌면 좋아요, 현실이 영화보다 더 재미있으니….” 요즘 내가 자주 듣는 안부인사 중 반복되는 후렴구이다. 뉴스에도 영화와 현실을 비교하는 문구가 단골로 등장한다. 국정농단 사태를 다루는 기사에 ‘영화를 초월한 현실’, ‘영화보다 더한 막장’ 같은 표현이 난무한다. 영화적 상상력 이상으로 펼쳐지는 충격적 현실에 ‘막장 드라마’ 꼬리표를 붙인 셈이다. ‘막장’은 탄광의 갱도 끝 작업장이라는데, 말은 같아도 ‘막장 드라마’란 상식 이상 요소들을 ‘막’ 산포하는 억지스러운 드라마를 칭하는 표현처럼 보인다.
뉴스와 아날로그 광장을 오가며 펼쳐지는 일상과 역사의 만남은 문화예술과 그 통로인 미디어 업계 풍경을 바꿔 놓았다. 2016년 말, 영화 관객 수가 급감하는 가운데 열린 영화포럼에서 “영화보다 뉴스, 극장보다 광장 가니 (극장 매출) 성적이 안 좋다”라는 영화업 종사자의 진단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후기 정보사회 뉴미디어로 지속적 성장을 해왔던 IPTV의 주문형비디오(VOD) 매출도 지난 2~3개월 사이 감소했다. 시청자들이 영화보다 뉴스 보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차례 속보가 터져 나오는 충격적이고 아픈 현실 에너지가 주말 광장예술로 만발하고 있다. 2015년 말 [내부자들]은 영화 세상과 현실 세상의 교집합을 보여 줘 커다란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그런데 [내부자들]은 오히려 (부패한) ‘현실 미화’ 영화라는 네티즌들의 재평가도 퍼져나가고 있다. 이 영화의 명대사로 꼽히는 언론사 주필의 “민중은 개·돼지입니다”란 말이 현실 세상에서 교육부 관료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사건도 발생했다. 영화와 현실이 뫼비우스 띠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돌아가는 현실영화판이다. --- p.51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스티븐 스필버그, 2002)는 2054년 워싱턴을 무대로 펼쳐진다. 벌어질 상황을 예측해 범죄자를 미리 처단하는 첨단 시스템으로 사회 안전을 우선시하는 미래 세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시민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통제의 정당화라는 한계란 점이 밝혀진다.
정보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스릴러 영화 장르는 네트워크 권력을 드라마의 쟁점과 스펙터클로 다루고 있다. 첩보원 제이슨 본이 국가 권력에 봉사하다가 버려진 후, 도피하며 저항하는 ‘본 시리즈’는 지구촌 어느 곳에서나 실시간으로 포착하는 CCTV 스펙터클 액션을 보여 준다.
범죄 스릴러 [감시자들](조의석·김병서, 2013)도 정보 감시와 통제의 힘에 방점을 찍는다. 안전을 위해 곳곳에 위치한 CCTV들, 거의 누구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늘 무언가 전송한다. 파놉티콘을 빌려 미셸 푸코가 경고한 규율사회는 정보화 흐름을 타고 통제사회로 진전되었다. 정보의 제국 속에서도 양심과 용기를 갖춘 탈주는 연대의 희망을 보여 준다.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여 목숨을 건 단식을 감행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받아 보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도 정보사회의 또 다른 힘이기 때문이다. --- p.68

다큐멘터리 [로큰롤 인생](스티븐 월커, 2007)을 보노라면 80대 노인들의 호모 루덴스로 제2의 인생길 가기가 마음을 울린다. 온몸이 종합병원인 80대 노인들이 록밴드로 변신하면서 노래하는 일상을 통해 그 즐거움을 사회와 나눈다. 교도소 위문공연도 가고 무대에도 서는 이들은 심지어 병원에서도 노래를 불러 의사를 웃기는 즐거운 존재로 변신한다. 예술의 힘이다. 비루한 삶에 시달리는 60대 여성의 ‘시 쓰기’가 핵심인 [시](이창동, 2010)도 호모 루덴스로 사는 제2의 인생을 보여 준다. 실직한 중년 남성들이 밴드를 결성하는 [즐거운 인생](이준익, 2007)이나 정년퇴임을 록 콘서트로 장식하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박영훈, 2007)와 같은 영화들에서 도 왕년에 탐닉했던 음악놀이를 되찾은 즐거운 제2의 인생이 드러난다. 곧 개봉할 다큐영화 [기적의 오케스트라--- p.엘 시스테마](파울 슈마츠니·마리아 슈토트마이어, 2008)에선 베네수엘라의 가난한 비행 청소년이 음악을 통해 거듭나는 인생 구원담을 보여 준다.
세상의 도덕, 세속적 가치는 삶을 변화시키는 데 역부족이다. 그보다는 자기 속으로 파고 들어가 놀이하는 즐거운 인간으로 살기를 시도해 보는 게 필요하다. 즐거운 삶은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놀이를 일상과 접속시키는 데서 시작한다. 예술은 가수, 화가, 작가만 하는 것이 아니며, 돈벌이용만도 아니다. 그저 삶 자체이며, 삶의 방식으로 채택해야 하는 호모 루덴스 되기의 필수 덕목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명대사처럼 인간은 열정에 가득 차 있다. 돈벌이 출세용 인간으론 그 누구도 자기 인생을 구하기 힘들다. --- p.112

[기생충]으로 봉준호 감독이 2019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류의 세계화를 환호하는 온갖 미디어의 찬사가 밀물처럼 밀려드는 중이다.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Indie Wire)라는 대목처럼 그의 전작들이 하나의 회로를 타고 오버랩 된다. 소수 지배층과 다수 피지배층 간의 위계질서가 저지르는 만행을 블랙 유머로 그려낸 그의 세상 관찰담은 ‘봉준호표 장르’로 본격적인 파장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세계 항해에 들어선 봉준호 선박은 한국 사회의 부당한 현실을 풍자하며 공명을 일으킨 힘으로 큰 바다로의 탈주 여정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일관된 부조리한 세상 탐구 여정의 출항은 〈지리멸렬〉부터 되새겨 보면 더욱 흥미롭다. 마침 필자가 진행 중인 ‘시나리오 실습’ 수업에서 이 작품을 교재 삼아 영화와 현실 관계를 학생들과 함께 분석하며 나눈 공감대 경험이 생생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예전에 본 영화를 다시 보노라면 이전과 달리 특별한 요소들을 보다 새롭게 발견할 때가 있다. 그간 흘러온 세월 속에서 목격한 부조리한 사건들, 그에 따른 고뇌들이 영화 이미지에 더 강렬하게 투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다시 보면 더 잘 보이는 고전 걸작의 힘이자 매혹이기도 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으로 봉준호가 연출한 〈지리멸렬〉(1994)은 3개의 에피소드와 에필로그로 구성된 단편영화이다. 이후 그가 연출한 〈플란더스의 개〉 이후 〈살인의 추억〉과 〈괴물〉, 〈마더〉, 그리고 세계 항해에 들어선 〈설국열차〉와 개봉 예정작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봉준호식 세상 탐구 여정은 〈지리멸렬〉에서 이미 명시된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 나오는 기관, 인물 등 모두 주제적, 시사적 의미가 없다”는 자막 설명으로 열린 영화의 검은 화면에선 건강체조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온다. “…옆구리 돌리고… 하나, 둘, 셋, 넷….” 하는 그 음악은 낯익지만 반복하고 싶지 않은 국민 동원성 구호이기도 하다. --- p.117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리들리 스콧, 1991)의 몇몇 이미지들이 번쩍 떠오른다. 오랜만에 같이 여행을 떠나는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루이스(수잔 서랜든), 이 두 여성이 오픈카를 타고 머플러 날리며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은 쾌활함 자체로 빛난다. 반복적 일상으로부터의 탈주, 자유롭게 살아보기, 거기서 느끼는 해방감…, 그래서 사람들이 휴가 여행길을 꿈꾼다. ‘로드 무비’란 장르가 인기 있는 이유도 그 점을 활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로 남성 짝패나 ‘두 남성과 한 여성’이라는 삼인조 관습을 깨고 등장한 [델마와 루이스]는 희귀한 여성 로드 무비의 상징적 작품이기도 하다. 남편 허락을 받기 힘들어 여행을 떠나고파도 못 떠난다는 델마에게 루이스는 “네가 어린애냐?”라며 일갈을 날린다. 거기에 자극받은 델마는 남편 허락 없이 여행길을 떠난다. 당당하고 능동적인 루이스와 늘 강자에게 기대고 살아온 델마의 동행에 성추행 사건이 끼어들면서 계획된 여정은 급변한다. 여독을 풀러 잠시 들른 술집 주차장에서 한 남자가 델마에게 벌인 성폭행 사건이 총격사건으로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탈주행으로 뒤바뀐 이 여정에서 델마는 이렇게 고백한다. “난 너와 이렇게 같이 할 때 기분이 최고야. 이제 내 길을 가는 거야”라고. 이 대목은 길 위의 변화에 주목하는 로드 무비의 클라이맥스를 보여 준다. 로드 무비의 매혹은 길 위에서 벌어지는 인물의 변화과정인데, 그것은 ‘영웅 되기’ 과정인 신화적 여정으로부터 내려온 고고학적 의식이기도 하다. --- p.135

세월이 흐르면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론이 막장 드라마 같은 현실에 좌초되는 온갖 사례를 접하게 된다. 그런 와 중에 본 [그녀(her)](스파이크 존즈, 2014)라는 영화는 지구촌 도처에서 인생 여정의 고뇌에 사로잡힌 존재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시사회 분위기는 일반 극장보다 냉랭한 편이다. 그러나 [그녀]의 시사회 분위기는 기이했다. 컴퓨터 프로그램 소리로만 등장하는 스칼렛 요한슨의 관음적 음성이 남성의 성애 판타지를 자극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자의적인 추측이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 컴퓨터 AI와의 관계를 파고드는 관계 욕망 탐구이다. “당신은 소녀 같아”, “내 사랑, 세상 끝까지~” 등등. 온갖 다정하고 달콤한 말들이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손글씨 편지 대필회사 풍경에서 영화가 열린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단골이 많은 대필 작가로, 어떤 이들에겐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기념일마다 친근한 편지를 써주는 일상을 영위한다. 그러나 그런 그 자신은 퇴근 후 외롭고 삭막한 사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던 어느 날 OS1(인공지능 운영체계)을 사면서 모든 게 변한다. 대화로 운영하는 오렌지색 프로그램 화면의 첫 질문은 앞으로 대화하게 될 목소리의 성별 선택을 요청한다. 남성인 그는 여성을 택한다. 이제 OS1은 ‘사만다’란 여성 소리로 등장한다. 산만한 이메일을 모두 정리해 주고, 손편지 모음책 계약도 체결해 줄 정도로 뛰어난 비서역을 하는 사만다는 곧 그의 연인의 자리에 오른다. 그런 테오도르의 변화된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비서 겸 아내를 거느리며 뛰어난 업적을 거둔 수많은 위대한 남성의 초상화를 보는 것만 같다. --- p.157

만화에서 보았던 차별화 된 열차칸 풍경과 풍자적인 열차 풍경화들이 통합적인 재난풍경화가 되어 생생하게 다가온다. [설국열차]는 절대 권력에 억압당한 지리멸렬한 열차 풍경을 SF 판타지로 풀어나간다. 지구 온난화 해결책으로 79개국 정상들이 결의하여 살포한 CW--- p.7은 빙하기를 가져 온다. 얼어붙은 지구를 일 년에 한 바퀴 도는 설국열차만이 마지막 인류의 생존공간이다. 17년간 열차에 갇혀 사는 생존자들은 꼬리칸 빈자들과 앞칸 부자들로 나누어진다.
벌레를 재료로 만든 단백질 양갱으로 연명하는 꼬리칸 사람들은 앞 칸의 필요에 따라 차출되어 불려 나간다. 열차의 지배자 윌포드(에드 해리스)는 성스러운 엔진을 개발하고 돌리는 막강한 권력이다. 그러나 생존 자체가 고역인 꼬리칸 승객들은 그에 대한 반란을 꾀하게 된다. 단백질 양갱 속에 묻혀 커티스(크리스 에반스)에게 전달되는 붉은 쪽지는 반란으로 인도하는 미지의 안내자이다. 커티스 일행은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를 감옥칸에서 구출해내 열차 문을 열어젖히며 진군해 나가면서 윌포드 제거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엄청난 살상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켜라, 질서를 지켜라, 균형이 중요하다.”라며 호통을 치던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튼)를 잡아 인질로 삼는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커티스는 엔진실에서 윌포드를 만난다. 반란은 성공적인 혁명이 될까? 윌포드를 제거하면 살만한 평등 열차 세상이 이루어질까? 특수효과로 무장한 SF 판타지 재미가 인류 공존에 걸린 본질적 질문을 하게 만든다. 그런 궁금증은 빙하기의 마약이자 인화물질인 크로놀처럼 폭발력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SF 판타지의 종말론적 상상력이 현실적 고통을 먹고 산다는 점을 절감하게 된다. --- p.169

거리에 나서면 여러 얼굴들을 만난다. 벽보와 현수막이 넘쳐나는 선거철에는 더욱 그렇다. 누군가의 얼굴 이미지로 지역 살림꾼을 선택해야 하는 이 시기에 얼굴을 화두로 내건 독특한 다큐를 스크린으로 만날 기회가 생겼다. 얼굴과 거기에 스며든 기억, 그것을 사진 이미지로 거리에 전시하며 시골마을을 떠도는 로드 다큐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Faces Places)](2017)이 바로 그 작품이다.
현대 영화의 물꼬를 튼 누벨바그 출신의 노장 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거리 예술의 혁명가 JR가 함께 만든 이 작품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참여하는 흑백 사진작업 과정을 생중계하듯 보여 준다. 이들은 트럭을 타고 도시에서 떨어진 시골마을을 다니며 그곳 사람들의 기억, 특히 빛바랜 사진을 보며 흘러나오는 과거의 흔적들을 거리 풍경으로 만들어내는 예술 작업의 일상화를 실천한다.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inside out project)’라고 쓰인 카메라가 그려진 트럭은 즉석촬영과 대형출력이 단번에 이루어지는 움직이는 ‘포토 아틀리에’다. 갈수록 시스템 변화가 격렬한 21세기 초, 세대 차이 파장이 큰 대도시 중심에서 소외된 세상 한구석, 주로 노인들이 살아가는 마을은 기억을 담아내는 노스탤지어 전시장이기도 하다. 그 마을에서 오랜 세월 생업에 종사해 온 사람들의 회고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진작업으로 소화해내는 그들에게 “세상은 캔버스이고, 거리는 곧 갤러리이다.” 이들은 방방곡곡 누비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얼굴 사진으로 마을 풍경을 즉각적으로 바꾸는 예술놀이 공동작업으로 일상에 즐거움을 선사한다.
철거를 앞둔 북부 탄광 마을에서는 사라진 직업이 돼버린 광부들의 과거사 기억이 사진 기록의 핵심이다. 하루에 갱목 150개를 세워야 하는 고달픈 노동, 그래도 가족 대대로 해온 광부로서의 일상적 기억은 여전히 자부심 속에 피어난다. 그 결실로 황폐해진 건물들은 복원된 광부시절 사진들로 포장된다. 특히 자닌 할머니는 광부의 딸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며 (남들은 이해 못해도) 최후의 저항자로 그 마을, 자신의 집에 남고 싶다는 속내를 토로한다. 오랜 삶의 희로애락이 주름진 연륜으로 드러나는 그녀의 흑백 얼굴사진, 그것으로 단장된 낡은 집은 멋진 박물관처럼 보인다. 집채만 한 자신의 얼굴 이미지로 두른 집 풍경을 보며 자닌은 감동에 젖어 할 말을 찾지 못한다. 그런 그녀와 정겨운 포옹을 나누며 예술놀이로 친구가 되는 멋진 우연의 힘을 보여 준다. --- p.196

거리, 지하철, 엘리베이터…. 어디서나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SNS에 접속하는 모습은 일상적 풍경이다. 이렇게 공기처럼 퍼진 소셜미디어 소용돌이에 휘말려 든 중년 남성이 고뇌에 사로잡혀 갈등하는 영화가 등장했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마이크 화이트, 2017)에서 브래드(벤 스틸러)는 ‘카페인 증후군’(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앞 글자를 딴 신조어)에 시달린다.
20여 년 전, 보스턴에 있는 명문대학을 졸업한 브레드는 현재 비영리단체에서 공익적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그가 SNS로 찾아본 동창들은 물질적 자본에서 그를 압도한다. 이를테면, 백악관에서 일한 경력에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하버드대 겸임 교수도 하는 동창, 헤지펀드로 거부가 된 동창, 일찍이 큰돈을 벌고 은퇴해서 젊은 여성과 하와이에서 사는 동창도 있다. 이렇게 한때 같이 공부했던 동창들은 대부분 성공해서 잘 사는데, 그는 명분 있는 일을 하지만 돈을 많이 벌지 못해, 닥쳐올 아들 대학 학비를 걱정하며 열등 콤플렉스에 빠져든다. 빠르게 변하는 삶의 속도를 따라잡으며 SNS 과잉 정보에 휘말려든 브래드는 정보화 혁명시대 만인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영화의 원제목 ‘Brad’s Status’(브래드의 사회적 지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신자유주의 경쟁에서 뒤처진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패배감까지 느낀다. 그 와중에 음악 재능이 있는 아들이 하버드대학에 입학하면 보상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보스턴 거리의 악사를 보며 음악 재능만으론 돈 벌기 힘든 아들의 앞날도 걱정된다. 이렇게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그는 자본 소유 규모에서 성공한 동창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한다. 그러나 그는 SNS에 뜬 동창들의 화려한 삶의 이면을 조금씩 발견하면서 그들과의 경쟁을 넘어 자신을 외롭게 성찰하는 탈주를 시도한다. 남들이 자신을 패배자로 여길까 전전긍긍하는 그를 부끄럽게 여기던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다들 자기 자신만 생각하니까. 아빠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건 나뿐이야.” 굳이 부자관계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나 홀로의 인생길이 와 닿는 순간이다. --- p.206

스크린 법정을 펼쳐 낸 [부러진 화살](정지영, 2011)이 설 연휴에 개봉돼 열기를 뿜고 있다. 2007년 터진 석궁사건에서 ‘활’의 의도적 발사여부가 법적 논쟁의 ‘최종병기’였을 것이다. 그 앙금은 르포 소설을 낳았고, 그에 기초한 르포성 법정영화 [부러진 화살]을 생산해냈다. 그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이 작품을 보노라면 법정영화의 가치를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정지영 감독이 13년 만에 연출한 [부러진 화살]은 법정영화의 덕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더불어 그의 작품목록에서 대표작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법정영화는 영화사 초기부터 존재해 온 강력한 장르이다. 실화에 토대를 둔 [잔 다르크의 수난](칼 드레이어, 1928)은 실제 자료에 토대를 둔 중세 마녀사냥 재판정을 긴장감 넘치게 그려낸 이미지 미학의 빛나는 걸작으로 통한다. 한국 영화사에도 [검사와 여선 생](윤대룡, 1958)이나 [법창을 울린 옥이](임권택, 1966) 등이 존재한다.
정의로운 법과 공정함의 관계를 성찰하게 만드는 스크린 법정은 관객--- p.배심원과 함께 허구로써 진실의 법정을 짜나간다. 대중오락물로 세계시장을 석권한 할리우드나 다른 나라에서도 영화의 사회적 기능을 살려내는 법정영화를 꾸준히 생산해내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의 흑막을 고발하는 [JFK](1991), 법정을 통해 진실과 거짓을 심층적으로 드러낸 이란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등도 그런 예에 속한다. 이렇듯 법정영화는 법집행의 사연을 중심에 놓고 드라마화하는 본질적 구조를 갖고 있다. 법정영화로서 [도가니](2011) 역시 권력과 밀착한 복마전의 긴장감을 치열하게 보여 줘 아픈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 아픔은 정의로운 법집행을 바라는 에너지로 전환되어 영화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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