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그야말로 300여 년 동안 세계를 규정했던 근대문명이 한계를 드러내고 후근대(post-modern)문명으로 넘어가고 있다. 기존의 인식론, 즉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NGO의 활동, 시민운동이야말로 인간이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세계의 각종 이슈를 문화양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자율적 결사체가 활동하는 시민사회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후근대문명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현대인의 실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NGO박물관은 단순한 유물전시장이 아니다. 민주주의·공동체문화·자연보호·봉사활동·예술활동·국제협력·세계시민정신·대안사회·영성실현 등 무수한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곳이다. 예를 들어, 부안 새만금 갯벌을 보존하기 위해 서울까지 320km를 삼보일배를 하면서 걸어간 시민운동도 NGO박물관의 아주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p.18쪽 「1장」
식물원을 기획하고 가꾸어가면서 태봉 씨와 그의 동료들은 ‘구체성’에 초점을 두었다. …… 껍데기만 남은 삶에서 각 개인은 삶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방관자가 되어 버렸다. 각자가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상실한 것을 되돌려주는 것이 바로 구체성이다. 삶의 구체성이 살아나면 각각의 사람들은 그것에 감정을 투입하고 자기 고유의 스토리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삶이 과정으로서의 본연의 의미를 되찾는 것이다. 삶의 구체성은 현대인이 원하는 체험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pp.57-58 「3장」
체험의 이러한 가치 때문에 문화유적답사에서 직접 도자기를 만들고, 탑을 쌓고, 방아를 찧고, 붓글씨를 쓰고, 말을 타는 프로그램 등이 점점 강조되고 있다. 준구 씨는 문화유적답사를 안내하면서 체험 프로그램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독배를 마신 선비의 초가집에 가서 직접 독배를 마시고 죽음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독약 대신에 시커먼 콜라라도 한잔 마시고 실제로 관에 들어갔다 나오면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진다. 컴컴한 관 속에서 단 5분이라도 있어보면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된다. 이렇게 인간의 삶에서 체험의 가치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인간은 사고나 태도의 전환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직접 종교적 수행을 하고, 상대방과 대화하고, 예술을 실행하는 체험은 사고나 태도의 전환으로는 얻을 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선사한다. 이러한 체험 가치가 바로 인류문명에서 찬란하게 빛난 창조적 문화유산의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화유산답사를 통해 이러한 체험을 할 수 있다면, 여행은 더욱 빛날 수 있다.--- p.123 「7장」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윤리경영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즉, 기업이란 단순히 상품의 가격이나 품질만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보호, 직원의 복지증진, 양성평등, 노사관계 구축, 협력사와의 협력, 지역사회 공헌 등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도 좋은 시민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업시민정신(corporate citizenship)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윤리경영은 일종의 사회적 트렌드이기 때문에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성공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이윤을 많이 남길 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도 훌륭하게 수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기업의 이윤도 많이 남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일종의 기업의 생존전략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오늘날 세계 일류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겠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사회적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것은 기업 사회공헌활동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명희 씨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p.180 「11장」
인혜 씨는 대안학교에서 비로소 모든 교육가가 외치고 교육이론이 주장하는 참된 교육이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흔히 말하는 전인교육, 공동체적 가치, 환경친화적 인간 등과 같은 이념은 기존의 공교육체제에서는 추구하기가 힘들다고 할 수 있다. 그곳에서는 성적을 올리고 대학에 가기 위해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피상적으로 머릿속에 지식을 주입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조차 배경과 사상을 이해하고 원리를 탐구하기보다는 시험에 초점을 맞추어 문제풀이식 공부에 그치기가 일쑤이다. 그러한 공부는 시험이 끝나면 아무런 교훈도 남기지 못한 채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야말로 일회용 지식이자 임시방편의 공부인 것이다. 그리고 공교육체제에서는 공부가 결국 경쟁에서 타자를 이기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공부가 이기주의적 가치관에 매여 있다. 질문도 토론도 없고, 협력과 유대도 없다. 성적과 관련 없는 것이면 모든 것이 금기시된다. 이에 반해 대안학교에는 인격을 도야하고 타자를 고려하며 환경과 조화하는 삶을 위한 교육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그녀는 이런 교육 속에서 학생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뿐만 아니라, 교사도 함께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음을 깨달았다.--- pp.202-203 「12장」
용희 씨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고 나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기업의 공동운영에 따르는 갈등조정, 청년실업자의 고용에 따른 노무관리, 수익창출을 위한 마케팅 등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대적 대세가 가정채원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고 있고, 중앙정부의 정책과 지방정부의 관심도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면서 지역사회와의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회적 기업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신뢰와 네트워크라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에 의존해서 지탱될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형식의 모임이나 이벤트를 통해 지역 주민 및 지방정부와 함께 논의하고 즐기는 것을 지향했다. ……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강요당할 수밖에 없는 성과압박의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으면서도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용희 씨는 큰 보람을 느낀다.
--- pp.237-238 「1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