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 심장이 시키는 대로 해. 이제껏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래야 죽는 순간 후회하지 않을 거 같거든. 너를 사랑하게 된 것도 그래서야.” 마지막 그 한마디에 하영은 무너지고 말았다. 간절한 눈빛과 함께 하영은 말했다. “꼭 살아 돌아와.” “꼭 그럴게.” --- 「냉동인간의 탄생」 중에서
창백한 미란의 팔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흐르기 시작한 피는 그녀의 심장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가쁜 숨을 내쉬며 미란은 마침내 눈을 떴다. 후들거리는 발을 겨우 내딛으며 미란은 무의식에 탈의실로 향했다. 동찬의 캡슐에서도 거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호흡을 크게 내쉬며 동찬도 눈을 떴다. --- 「부활」 중에서
“깨어났더니 쉰둘이 돼 있어. 난들 제정신이겠어? 근데 우리 살아났잖아. 20년 만에 실험에서 성공해서 살아난 거잖아. 생각해보면 우리 정말 대단하지 않아? 우리 정말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거잖아. 우리 인류 최초의 냉동인간이야. 우리 그 영광을 가슴에 새기고 만족하며 살자. 우리 이 난관을 함께 극복해보자.” “싫어요.” 미란은 오열과 함께 답했다. 그러다 울음을 멈추더니 문득 물었다. “근데 피디님, 나한테 왜 말 까요?” ---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들」 중에서
냉동인간의 체온이 31.5도란 사실, 그리고 임계점인 33도를 넘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차마 말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돌아온 동찬은 사건 파일의 나머지도 살펴보았다. 그러다 문득 드는 의구심이 있었다. 어째서 아무도 냉동인간 프로젝트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담당 형사마저도? 파일을 살피던 동찬의 눈빛이 갑자기 싸늘하게 변했다. --- 「차가운 것이 좋아!」 중에서
“정신 차려. 고미란.” 미란은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때, 거짓말처럼 차량 한 대가 동찬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미란을 응급실에 맡기고 동찬은 화장실로 달려갔다. 찬 물로 겨우 몸을 식힌 동찬은 젖은 몸이 되어 잠든 미란의 곁으로 돌아왔다. 44세 고미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건 동찬 자신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응급실 밖에 앉아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동찬은 자책해야 했다. --- 「31.5도의 운명」 중에서
“그때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거야. 우리 사랑이 아직 덜 끝 났잖아.”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때 별안간 편집실 문이 열리며 미란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저기, 피디님.” 미란은 뭔가 말하려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급히 문을 닫았다. --- 「캡틴 코리아」 중에서
“피디님, 정신 드세요?” 다시 눈을 뜬 동찬이 몸을 일으키려 했을 때, 미란은 그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왜 입맞춤을 했던 걸까? 미란 자신도 알지 못했다. 다만 변명해보았다. 자고로 사람으로 태어나서 키스는 해보고 죽어야 한다고. 입맞춤을 마친 뒤 미란은 동찬의 품속에서 쓰러졌다. 한동안 비는 억수같이 쏟아졌다. --- 「사랑에 관한 모든 것」 중에서
“야, 너 내가 우습니? 너 내가 만만해?” “그런 거 아니에요. 만만하면 제가 15억이나 까드리겠어요? 15만 원 정도로 퉁 치죠.” “그러지 말고 한 열 번 하고 150억 까주지?” “됐어요. 더 할 생각은 없고요.” “너 정말 또라이구나. 너 지금 날 성 상품화했니?” “전들 기분이 좋겠어요? 첫키스를 그렇게 날렸는데? 아무튼, 전 이 정도로 제 성의 표시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가려던 미란을 동찬은 사람들의 눈이 없는 곳으로 데려갔다. 미란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투였지만, 동찬은 그렇지 않았다. --- 「썸 그리고 쌈」 중에서
“왜 울어? 고미란답지 않게?” “웃을 일은 아니잖아요.” “내가 지켜줄게.” “무슨 뜻이에요?” “내가 책임자잖아. 그러니까 그게 뭐가 됐든 네가 울지 않게 내가 다할 거야. 걱정하지 마. 넌 네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그러면 돼.” 서로의 심박수가 함께 뛰기 시작했다. --- 「냉동과 열정 사이」 중에서
“무슨 일 있어요? 왜?” 동찬은 대답 없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떨리는 눈으로 미란 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바이탈 워 치가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순간만은 더 이 상 멈추고 싶지 않았다. 샤워부스로 자리를 옮겼다.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두 사 람의 차오른 열기를 식혀주었다. --- 「후회하지 않아」 중에서
“나는 네가 날 버렸다고 생각했어. 내가 20년 만에 깨어나서 젤 힘들었던 게 뭔지 알아? 이렇게 변해버린 세상도 내 실종을 찾지 않았던 방송국도 아니야. 나를 찾지 않은 너였어. 내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데.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데.” “내가 더 버텼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 결국 당신을 찾지 않았잖아. 당신하고 성공을 바꿨잖아.” 하영은 여전히 미안함만을 말했다. 동찬은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다가와 눈물 닦아주며 하영은 동찬을 안았다. “난 이제 당신 품에서 울기엔 너무 늙어버렸어. 내가 당신을 안아줄게. 그리고 나 용서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