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프라이데이!
미국에서 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금요일로, 1년 중 가장 큰 폭의 세일 시즌이 시작되는 날을 말한다.
이날은 미국 소매업 연간 매출의 20% 이상이 팔릴 정도로 쇼핑 절정기를 이루며, 백화점과 쇼핑센터 앞에서 밤새워 기다리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즐거움에 넘쳐나는 날을 가리키는 단어의 뜻이 바뀌는 날이 온 것이다.
미국 증시의 최악을 가리키기 위해서 말이다.
이튿날 13.7%가 넘게 폭락했던 미국의 증시는 정부의 즉각적인 개입으로 안정세를 취하는 듯 보였지만, 헤지펀드들과 투자은행들의 천문학적인 손실이 알려지면서 이날 16.8%에 달하는 폭락세에 몸서리쳤다.
서킷브레이크가 발동하지 않았다면 1987년 10월 19일 하루 만에 22.6%나 빠졌던 블랙 먼데이를 재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주 들어서 주가가 30% 넘게 떨어진 것은 블랙 먼데이를 충분히 연상시키는 일이었다.
언론들은 제2의 대공황을 이야기하며 아시아에서 촉발된 경제위기가 미국을 덮칠 수 있다고 앞다투어 보도했다.
위기가 코앞에 닥쳤다는 언론의 기사는 불안한 심리를 조장했고, 투자기관을 비롯한 개인 투자자들도 주식을 내던지며 폭락세를 더욱 부추겼다.
미국의 주가 하락은 곧장 유럽과 아시아에도 영향을 주었고, 전 세계 주식시장이 동반 폭락했다.
특히나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한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하락 폭이 컸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비롯한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중국 등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는 나라들의 하락 폭 또한 더욱 두드러졌다.
“미국 증시의 하락 폭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헤지펀드의 손실률이 저희가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한 것 같습니다.”
“과도한 욕심은 늘 화를 불러오지. 우리가 예측한 하락 폭은 어느 정도였지?”
모스크바 국제금융센터장인 마트베이의 보고에 질문을 던졌다.
“최대 하락 폭을 최고점에서 40%로 잡았습니다. 이대로라면 50%를 넘어설 것 같습니다.”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인 FRB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헤지펀드와 투자은행들의 손실이 예상치를 웃돌자 충격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었다.
‘음, 2008년 금융위기 때 50%까지 빠졌었지…….’
2008년 미국 경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충격에 휩싸였고, 부동산 거품 붕괴로 파생상품 시장도 함께 붕괴하며 미국의 월가도 무너질 뻔했다.
“50%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 움직이도록 해. 미국이 이대로 무너지지는 않을 테니까.”
미국의 증시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증시가 떨어질수록 소빈뱅크의 이득은 더욱 늘어나고 있었다.
이미 소빈뱅크는 3천억 달러가 넘어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어들였다.
“예, 대비하겠습니다.”
마트베이는 대답을 할 때 비서인 제냐가 들어왔다.
전화가 아닌 직접 집무실로 들어오는 것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이었다.
“뉴욕 연준의 윌리엄 맥도너 총재가 회장님에게 면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미국 내 12개의 연방준비은행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실질적인 FRB(연방준비제도 이사회)를 움직이는 곳이 뉴욕의 연방준비은행이다.
12개의 연방준비은행은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클리블랜드, 리치먼드, 애틀랜타, 세인트루이스, 미니애폴리스, 캔자스시티, 댈러스 등에 자리를 잡고 있다.
***
남의 나라 일처럼 여겼던 경제위기가 블랙 프라이데이를 통해서 현실처럼 다가오자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은행 관계자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모여 대책 회의를 열었다.
주가 폭락을 주도하는 것은 헤지펀드들로서,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와 빚 독촉으로 인해 자산 매각에 따른 투매성 주식 물량이 줄지 않았다.
여기에 어두운 전망을 쏟아내는 언론 보도와 개인 투자자들의 매도세까지 합세하자 돌아오는 월요일에는 얼마나 주가가 얼마나 더 빠질 것일까가 관심사였다.
“LTCM도 문제지만 퀀텀펀드와 타이거펀드가 이대로 파산하면 월가가 무너집니다.”
미국의 최대 헤지펀드인 퀀텀과 2위를 달리는 타이거펀드의 존립 위기는 월가의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
“두 펀드가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에 따른 피해도 크지만, 엔화 폭등에 따른 투자 손실액이 알려진 것보다 엄청납니다.”
“채권은행들과 투자은행의 무차별적인 마진콜을 우선 중단시켜야 합니다.”
월가를 대표하는 5대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라더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는 돈을 빌려준 헤지펀드들에 마진콜과 함께 돈을 떼어먹힐 것을 염려하여 직원들을 파견해 거래를 감시했다.
“그러다가는 채권은행들까지 위험해집니다. 은행들이 망하는 것을 볼 생각입니까?”
“이대로 무차별적인 자산매각이 발생하면 부동산 폭락으로 인한 연쇄 폭락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건 제2의 대공항의 전초입니다.”
회의에 참석한 미국의 10개 연방준비은행장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진행했지만, 원론적인 이야기들뿐이었다.
해결책을 찾아야 했지만, 헤지펀드들의 투자 손실금액이 예상보다 너무나 컸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회의는 잠시 휴식을 하기로 했다.
“후후! 모양새가 우습게도 표도르 강에게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뉴욕연방의 맥도너 총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번 피해를 만회하지 않으면 정말로 제2의 대공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로 돈을 벌어들인 은행은 표도르 강의 소빈뱅크뿐입니다.”
회의 참석한 JP모건의 더글러스 워너 회장이 답했다.
월가를 대표하는 대형 은행인 JP모건 또한 이번 사태로 큰 피해를 보았다.
“그러니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습니다.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헤지펀드들의 상대로 통화전쟁에서 승리했으니까요.”
BOA(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데이비드 콜터 회장이 말을 이었다.
자리에 함께한 인물들의 이해를 벗어나는 일을 소빈뱅크가 해낸 것이다.
BOA는 올해 네이션스 뱅크와 합병해 5천7백억 달러의 자산을 가진 초대형으로 재탄생했다.
이는 시티그룹에 이어 미국 내 두 번째 규모였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상대적으로 다른 투자은행들보다 피해가 작았다.
“소빈뱅크는 일본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혹시 일본 은행과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일본 은행은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에 대응한 것뿐입니다. 일본의 은행들도 모라토리엄에 이어서 엔화 강세로 인해서 상당한 타격을 받았으니까요.”
보스턴연방은행 부총재인 로건의 말에 JP모건의 워너 회장이 답했다.
일본의 은행들과 증권사들은 예상을 뛰어넘은 엔화 강세로 인해 수백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소빈뱅크와 미국의 헤지펀드들의 환율 싸움에 따른 애꿎은 피해자였다.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한 대가를 일본에게서 받아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맥도너의 뉴욕연방 총재의 말에 함께 커피를 마시던 인물들이 눈이 그에게로 쏠렸다.
***
IMF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인 한국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과 급격한 엔화 강세에 따른 충격을 피해 가지 못했다.
미국 증시 폭락의 여파는 조금씩 되살아나려고 하던 한국의 증시에 찬물을 끼얹지는 일이 되었다.
아시아 시장에서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인 안정성과 함께 미국은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였다.
이와 함께 유럽 주요국가의 동반 금리 인하로 인한 엔고 추세로 인해서 국내 기업들의 수출경쟁력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여기에 국내 금리가 한 자릿수로 하락하면서 채권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주식 투자에 대한 매력이 커진 점도 호재로 작용했다.
그러나 소빈뱅크와 미국의 헤지펀드, 그리고 투자은행들이 엔화를 두고 벌인 통화전쟁의 여파가 전 세계의 증시를 강타한 것이다.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구별된 이번 투기성 전쟁에서 승리자는 당연히 소빈뱅크였다.
소빈뱅크와 연계했던 아시아의 투자은행과 유럽의 몇몇 은행들도 적잖은 이익금을 챙겼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