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의 꽃가마에는 가마꾼과 장롱을 나르는 짐꾼들. 수모手母 이양댁과 동복댁이 함께 따랐고, 지겟꾼 여러 사람이 가마를 뒤따라가며 신행 행렬을 이뤘다.
며칠 전, 김이장은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변서방에게 일러 일군 몇을 더 사서 품삯을 넉넉하게 주었다. 가마꾼과 오동나무 장롱을 메고 갈 사람들이 안전하게 고갯길을 넘어가려면 품삯을 주더라도 신행에 사람이 많은 게 나을 성싶어서였다. 김이장은 어수선한 마을 일을 제쳐두고 수동댁이 손수 빚은 정종 됫병 두 개를 양손에 움켜쥐었다. 가마꾼의 뒤를 따라가는 김이장의 마음은 제 마음이 아니다. 김생원만 아니라면, 안사람 소원이기도 하여 막내딸 순임이를 오래도록 끼고 살 생각이었다. 그러나 법도를 엄격하게 따지는 김생원의 단호한 결정이 번복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하아, 진달래꽃이 반겨주는 걸 보니 오메, 봄이 참말로 와뿌렀네. 정말 이쁘구나. 어쩜 저리도 울 막내딸처럼 고울꼬……”
김이장은 취기가 있는 사람처럼 웅얼웅얼거린다. 분홍진달래꽃에 취한 것인지, 기지개를 켜는 산새들의 지저귐에 취한 것인지, 시집보내는 아비의 슬픔에 취한 것인지…… 해마다 봄이 되면 메말랐던 산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며 산자락을 타고 오르는 진달래꽃 군무가 장관인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김이장은 봄빛 드는 산등을 빙둘러 본다. 이 고개를 넘어 순임이를 데려다주고 나면,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방정맞은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김이장의 걸음이 자연스레 멈칫거린다. 두 딸을 이미 시집보낸 경험이 있는 김이장이다. 주변에는 적령기에 결혼시키지 못한 딸 때문에 애태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딸 하나 더, 시집보낸다고 마음이 이토록 허전하고 아플 줄이야. 방금 전까지 이쁘다고 감탄했던 눈앞의 진달래마저 야속해진다.
“너의 분홍빛 어여쁨마저 잔인하구나. 진달래야, 너는 내 마음을 아느냐? 이 고갯길을 내 언제 다시 오겠느냐?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웬 심사인지 알 수가 없다. 딸을 보내는 아비는 슬픈 마음을 감추고 한껏 축복해줘야 하는데, 아득히 먼 길을 갈 사람처럼 걸음이 무겁다.
?홀가분해야 할 신부의 아비 마음이 왜 이런다냐?”
참으로 알 수 없는 심정의 김이장이다.
“흐흠”
김이장의 복잡한 속내를 간파한 것인지 김생원이 헛기침을 하며 걸음을 멈춰 섰다.
“아버님, 뭐 불편하신 거라도 있으신게라?”
“가마꾼들도 쉬어야 하것제. 이쯤에서 쉬어가자. 담배 한대 태울란다.”
칠순의 김생원에게 흙재와 같은 산길을 따라 재를 넘어가는 일은 고된 일이거니와, 어려운 시국에 어린 손녀딸을 다른 고장으로 시집보내는 일도 김생원에게는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일이었다.
중략
농촌에서는 열 살 여자아이라도 웬만한 집안일을 할 줄 알았다. 더구나 혼기를 앞둔 여자는 길쌈을 할 줄 알아야 했는데, 길쌈에 능숙한 것이 농촌 신붓감의 덕목이었기 때문이다. 동짓달에 태어난 순임은 제 또래보다 한해 어린 셈인데다, 막내라는 핑계로 힘든 일은 며느리 수동댁이 애써 가르치지 않았다. 자그마한 키에 엉덩이도 실하지 않아서 베틀에 앉아 길쌈할 몸집이 아닌 순임이다. 그런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수동댁이 차일피일 일 가르치기를 주저한 것이다. 김생원은 그저 사돈댁에서 철모르는 순임이를 어여삐 살펴주기만을 간절히 기대할 뿐이다.
“내가 얼마나 더 살아서 집안을 지탱할 수 있을지 모르겄다만, 애비가 지금처럼 신중하게 살아간다면 별일이야 없겠지만……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디……”
생각은 풀린 실타래처럼 밑도 끝도 없이 뻗어 나갔다. 더구나 어린 증손자들을 생각하면 김생원은 더 아득히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기분이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익히 알지만 지금처럼 참담한 눈으로 장래를 내다본 적은 여태껏 없었다. 자신이 너무 오래 살아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탓이라고 여기고 싶다. 하지만 밀려드는 불안감은 쉬이 떨쳐지지 않는다. 김생원은 지금보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조상님들께 누누이 빌고 또 빌었다.
‘못난 조상을 만나 일정시대 간교한 왜놈들 등쌀을 겪고 그 모진 세월을 버텨냈으니, 이보다 더한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라고…… 아암, 안 되제. 난리라니! 더는 안 되제…….’
혼잣말을 하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모로 가로젓는 김생원이다.
흠!~
물고 있던 곰방대를 탈탈 털어낸 자리에 불씨가 남아 있을까봐 다시 발로 짓이겼다. 하얀 고무신 발아래 짓뭉개진 것은 담뱃재가 아니라 김생원의 두려움이었다. 산길을 다니는 사람들은 고개 너머에서 잠시 쉬어갈 때, 담배를 피워 문 자리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특히 봄에는 불쏘시개 천지인 산이라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꼼꼼한 김생원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김이장도 뒤따라 일어나고 일행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양지바른 아래쪽은 참나무 아래 덤불을 헤치고 수풀이 무성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골이 깊은 골짜기에는 봄바람을 밀어낸 살얼음이 쌓여있을 터이지만, 흙속에서 춥고 단단했던 겨울을 견뎌낸 생명들이 용솟음쳐 오르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헐거워졌던 산등성이도 머잖아 튼실하게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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