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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애인에게

이름 없는 애인에게

리뷰 총점9.7 리뷰 22건 | 판매지수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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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사랑 에세이 top20 40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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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3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210쪽 | 194g | 115*180*14mm
ISBN13 9791196812621
ISBN10 1196812624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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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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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선생님 제겐 위로하는 재주가 없습니다. 구원역시 불가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것 말고는 별 방도가 없습니다. 그저 싸늘하게 사랑하는 재주. 밤낮으로 실패하기를 반복하지만 지겹게도 사랑하는 재주. 윤을 사랑하는 재주.
제겐 그것 하나 말고는 없습니다.
--- p.25

내 사랑. 그거 알아요? 제가 그토록 자주 울먹였던 이유를 알아요? 아름다운 것. 그 다음은 꼭 슬픈 구절이 얽혀 있어서예요. 당신의 고른 숨결에 제 이름이 섞였다가 입술 끝에서 부서지던 순간과 별똥별이 단호하게 밤하늘을 찢으며 추락하던 밤과 새벽 이슬 꽃을 주워 건네며, 꽃말은 영원이야 속삭이던 순간처럼요.
그래요. 포슬포슬 잔별처럼 웃는 당신 뒤에 숨죽여 뒤따라오는 안녕의 말이 저를 찌르기도 전에 당신의 그믐달처럼 큰 눈이 삭이 되기도 전에 저는 조금 일찍 슬퍼했답니다. 저항도 없이 절망도 없이 여실히 슬퍼했답니다. 이제 구태여 덧붙일 말은 없어요. 단지 저는 그 슬픔으로 여기까지 멀리도 왔다고, 이곳에서도 당신이 많이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내 사랑. 저는 아주 저 멀리까지 슬퍼도 당신을 사랑해요. 눅눅한 노래가 속절없이 베개를 적셔도 당신은 고집스럽게 아름다워져요. 이제 저는 아름다운 것과 슬픈 것을 구분할 수 없어요.
--- p.46

점점이 기어가는 저녁을 사랑해야지. 드뷔시 달빛 따위나 흥얼거리면서 거짓말 같은 밤을 보내야지. 여지껏 기른 울음들을 하나하나 목 조르는 저 코발트색 새벽녘을 사랑해야지.
손잡고 지나던 골목길에 핀 꽃이 벚꽃이었는지 매화였는지 조잘거렸던 그 시간을 추억해야지. 당신이 떠난 날 내 곁에 남은 게 죽음 같은 슬픔이었는지 슬픔 같은 죽음이었는지를 점쳐보느라 이 작은 동네에 꽃잎 하나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써야지. 그리하여 낮은 골목길에 봄볕 하나도 들 수 없었다는 괴담을 써 내려야지. 정작 중요한 말들은 단 한 줄도 쓰지 말아야지. 가장 슬퍼할 당신을 떠올리며 아침까지 부질없는 자장가를 불러야지. 모든 날을 그렇게 물끄러미 지내야지. 초저녁에 싹트는 그리움은 밤이 깊어질수록 넉넉해질 테니 내일 아침에는 덜 가난해진 추억으로 당신을 기다려야지. 지난 눈물은 모두 내 마음속 저 먼 곳으로 흘려보냈으니 당신 그림자 하나 기다리며 무수한 순간들을 사랑해야지.
--- p.78

우리 천천히 오래도록 맑아지자. 그 마음에 먹구름이 있다면 당신 곁에 바싹 붙어 앉아 말랑말랑한 이모티콘이나 주고받으며 느긋하게 웃어 보여야지. 너 보여주고 싶어서 가져왔다며 고양이나 강아지 사진 따위도 나눠봐야지.
내 온몸을 비틀며 당신이 좋다고 말한 뒤에 속도 없이 당신 품에 안겨야지.
이렇게 당신을 쓰고만 있어도 내 눈시울이 뜨끈뜨끈해진다. 당신에게 내 모든 용기를 낼 수 있으니 앞으로의 걱정들은 조촐한 것이다. 복숭아 같은 당신을 생각하면서 쓴 편지들엔 생략한 말과 지워버린 마음이 너무 많다. 당신을 생각하며 연약해지는 이런 날들이 영영 계속되길 바란다. 아무래도 당신에게 보낼 편지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 p.106

현아. 혼자 지내는 건 어떻노? 갠찬나? 항시 잘 챙겨묵고 겅강하고 그래야 한다. 할미가 가보질 못해서 미안하고 할미 잊아묵지도 않고 멀리서도 전화해줘서 고맙다. 착실하고 착해가꼬 타지 나가서 고생은 안 하는가 모르겄다. 사람이 모진 데도 있고 그래야 잘산다. 할미는 잘 묵고 있지. 니는 할미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큰 외삼촌이랑 같이 좀 전에 묵었다. 우리 똥강아지도 잘 챙겨묵고 혼자 살면 음식이 질고 딱딱해진다. 항시 부드러운 음식 먹고 밥때 잘 챙기고 과일이랑 야채도 묵고 있제? 이제 다 커가꼬 할미가 걱정할 게 없네. 그래. 바쁜데 시간 많이 빼사가꼬 미안네. 그래 끊자. 일부러 전화할 필요 없다. 열심히 살고 주말에 쉬다가 할미 모하노?하고 생각날 때 전화해주면 된다. 알긋제?
그래. 할미 끊는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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