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조지 W 부시와 토니 블레어가 이라크 정복을 시작했을 때 미국은 천하무적처럼 보였다. … 사실, 바로 이것이 공화당의 네오콘이 이라크 침략을 주장한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 네오콘의 계산은 이랬다. 이라크를 차지하면, 냉전 해체 뒤 미국이 이렇다 할 경쟁자 없이 세계를 지배한 역사적 상황이 영속화할 것이다. 이라크를 지배하면, 중동을 지배하는 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지위가 확고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의 함의는 중동 지역에 국한되지 않을 터였다. 급진적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가 지적했듯이, 미국이 중동을 확고히 지배하면 유럽연합·일본·중국 같은 잠재적 경쟁자들이 중동 석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석유 수도꼭지’를 잠글 수 있을 것이다. …
그 계획은 어떻게 됐는가? 미군은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속전속결식 전쟁으로 몇 주 만에 이라크 군대를 이겼지만, 점령에 반대하는 대다수 이라크인들의 저항에 직면해서는 대체로 무능력했다. … 중동에서 힘의 균형은 조금씩 워싱턴에 불리한 방향으로 기울어 왔다. 미국이 세운 꼭두각시 이라크 정부는 이란, 시리아, 레바논의 헤즈볼라에 동조하고 있다. … 미국은 이집트 무바라크 독재 정권이 아랍 혁명으로 타도되면서 중요한 동맹을 잃어버렸고, 에르도안 정권이 들어서며 독자적 목소리를 키우는 터키를 상대해야 한다.
---「미국은 왜 중동에서 전쟁을 벌였고 왜 실패했을까?」중에서
미국과 이란의 최근 대결에서 누가 피해자인지는 명백하다. [2020년 1월 3일 미군에게 암살당한] 이란 장군 가셈 솔레이마니와 [2020년 1월 8일 격추된] 우크라이나 여객기의 승무원·탑승객을 빼놓을 수 없다. 잔뜩 예민해 있던 이란 혁명수비대가 그 여객기를 격추했다. 그러나 대결의 승자는 누구인가? … 단기 국면으로만 보면 트럼프가 이겼다는 주장에 일부 진실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시간은 미국 편이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했다.
“버락 오바마와 트럼프 모두 미국이 아시아에 집중해야 할 자원과 신경을 중동이라는 수렁에 쏟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오바마는 협상으로 중동에서 퇴로를 열려 했지만 실패했다. 반면에 트럼프는 협박으로 퇴로를 열려 한다.” 그래서 이란과 핵 합의를 한 오바마와 달리 트럼프는 대對이란 경제제재 수위를 높이며 “최대 압박” 정책을 펴고 있다. … 그러나 트럼프는 전임 오바마와 마찬가지로 중동이라는 수렁으로 빨려 들어오고 있다. …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전망했다. “오바마처럼 트럼프도 실패할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트럼프의 대對이란 전략이 성공하려면 미국이 이란을 억제하기 위해 중동에서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 미국은 중동에서 빠져나오지도, 이기지도 못한다.
---「트럼프가 이란을 위협하는 이유는?」중에서
2007년 8월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신용 경색이 시작됐고, 이윽고 경제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2008년 8월 러시아와 그루지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패권 국가의 지위를 지키려는 미국의 모험 때문에 러시아와 매우 위험한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냉전 종식 후 미국 패권 전략의 핵심적 내용 하나는 러시아의 약점을 이용해 유럽연합과 나토를 중동부 유럽으로 거침없이 확장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러시아를 포위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유라시아 깊숙이 확장한다는 계획이었다. … 현재 미국만이 유일한 세계적 제국주의 열강이다. 그래서 미국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 자신의 재원을 훨씬 더 넓은 지역에 사용해야 하고, 폴 케네디가 “제국의 과잉 확장”이라고 부른 것에 취약하게 됐다. 러시아는 미국이 서아시아(중동)에 발이 묶이면서 나타난 이런 약점을 이용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여전히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에너지 호황에 힘입어 군사력을 현대화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 전쟁을 통해 자국 국경 지역에서 제국주의적 이익을 지킬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했다. 러시아는 지구적 수준에서는 미국과 경쟁할 수 없을 것이지만 몇몇 중요한 지역, 특히 중요한 에너지 공급 지역인 캅카스나 중앙아시아, 어쩌면 중동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에 도전할 수 있다. 이것이 보여 주는 것은 비록 미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오늘날 세계 정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전통적으로 제국주의 간 경쟁이라 부른 동력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체제의 실패가 낳은 경제 위기와 전쟁」중에서
2018년 3월에 시작된 미·중 무역 전쟁에서 트럼프는 중국의 대미 수출품 약 절반에 관세 폭탄을 부과했고, 중국도 마찬가지 수법으로 대응했다. … 미·중 무역 갈등이 그저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별종이라 벌어진 일은 아니다. … 이제 중국은 경제 규모가 세계 2위이며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이자 수출국이다. 시진핑 정부의 핵심 정책 하나는 ‘중국제조 2025’다. 이 정책은 첨단 기술을 더욱더 발전시켜서 중국 경제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려는 정책이다. 중국 기업에 자기 나라 시장을 잠식당할까 봐 우려하는 서방 기업과 정부는 이 정책에 두려움을 느낀다. 중국이 가치 있는 지식재산을 노리고 서방 기업들을 인수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널리 퍼져 있다. … 이는 단순히 경제적 경쟁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부상은 지금까지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적 헤게모니에 제기된 가장 심각한 위협이다. …
미국은 태평양에서 2년마다 벌이는 대규모 다국적 해군 훈련인 환태평양군사훈련에 [전과 달리] 중국을 참가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은 인민해방군 일부가 러시아산 S-400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입했다는 이유로 제재 조처를 가했다. 그런데 이런 조처에 관해서는 미국 지배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미국 지배자들은 태평양과 유럽을 모두 관장할 권리가 미국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기업가들 사이에 트럼프의 관세 부과에 대한 반대가 많지만, 그들은 중국에게 누가 최고인지를 보여 주기 위한 조처는 괜찮다고 본다.
---「미·중 무역 전쟁은 왜 벌어질까?」중에서
코로나19는 마치 엑스레이처럼 세계경제의 구조 변화를 훤히 드러내고 있다. … 코로나19는 세계 2위 경제 대국을 마비시켰다. … 중국은 세계 최대 수출국이자 세계 최대 원자재 수입국이다. 그러므로 중국 경제가 둔화하면 전 세계 재화·서비스 수요와 공급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 그러나 가장 심각한 타격은 공급에서 벌어질 공산이 크다. … 현재 중국은 세계적 전기·전자 부품 수출품의 30퍼센트를 생산한다. 미국은 물론 아시아 경제 대국들도 중국이 수출하는 기계와 운송 장비에 크게 의존한다. …
코로나19 때문에 실제로 미·중 무역 전쟁에서 새로운 전선이 생길 수도 있다. 미국의 의약품 공급 사슬은 완성 의약품, 약재, (현재 수요가 폭등한 마스크 같은) 의료 용품을 중국에 의존한다. 2020년 2월 12일 트럼프의 무역 보좌관 피터 나바로는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오랫동안 수면 아래 있었지만 미국 경제와 안보에 치명적인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는 단지 세계화의 영향(인류가 전 지구적 전염병 확산에 물리적으로 취약해지고 세계적 공급 사슬에 경제적으로 의존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19는 이른바 “탈세계화”, 즉 선진국 경제가 생산을 자국으로 되돌리려 하는 흐름을 더욱 가속화할 수도 있다. 결국,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현대 자본주의의 병세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자본주의가 병들어 있음을 보여 주는 코로나19」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