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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

: 당신과 내 삶에 대한 이야기

아주 보통의 글쓰기-03이동
리뷰 총점9.3 리뷰 4건 | 판매지수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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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에세이 top2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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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3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432g | 135*200*19mm
ISBN13 9788967357627
ISBN10 8967357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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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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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일찍 가고 아들마저 잃었을 때 그 동네서 고개를 들고 사는 것이 부끄러웠다. 마을을 뜨고 싶었다. 할머니에게 더 멀리 내딛을 용기는 없었다. 타향에 가본 적도, 가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재주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이제는 바삭바삭 부서질 것 같았다. 죽으면 좋으련만 자기보다 더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어버린 며느리 때문에 살 수밖에 없었다. 당분간 부둥켜안아서 지켜주고 싶었다. 친정과 시댁을 걸어다닌 것이 바깥출입의 전부였다. 기껏 멀지 않은 친정 마을로 왔다. 마을 사람들은 허리가 끊어질 듯 여위어 온 출가외인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소문을 들었으나 들춰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힘을 얻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 p.38

그러나 비밀을 지킨다는 것은 떠벌리기보다 어려워 방촌댁과 타시락거리던 한 여자가 통쾌한 제압이라고 생각했던지 내뱉었다. “이 쌍년. 동네 첩년.” 그 순간 방에 모였던 김씨의 아내들이 모조리 일어섰다. “뭔 소리! 방촌떡이 당신 서방하고 일 났어? 뭔 소리 하고 있어? 그러려면 어서 이 자리서 나가.” 그때가 명절 끝이어서 시어머니는 주말에 온 내게 이 말을 하고 실제로 간이 툭 떨어진 얼굴이 되었다. “문 열고 나오는디 마당에 아들이 윷 놀고 있더란 말이다. 명절에 내려왔다가 안 가고 있을 때였제.”
--- p.46

엄마 나는 알아. 엄마는 스스로 솜이 되었지. 엄마의 방어 기전이었을 거야. 매운 시집살이, 남편의 깔깔함과 외도. 자고 나면 큰 농가를 짊어지고 나가야 하는 노동. 엄마가 촉촉하고 여린 감성을 가졌다면 실성하지 않았을까. 어느 날 엄마의 중얼거림을 들은 적이 있어. “이 집구석은 뱀을 독사로 맨들었지.”
--- p.116

처음에는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지 않았다. 방송은 연일 폭도라 했다. 소문은 수그러들 줄 모르고 갈수록 흉흉해졌다. 공단 입구에서는 서울에서 지원 오는 대학생들이 비아에서 모조리 총살당해 죽었다고 했다. 비아 쪽에 사는 사람은 걱정스러운 전화를 걸어왔다. “공단 입구에 수백 명 죽은 시체를 쌓아놨다는데 어쩌냐?” 나는 자박자박 걷는 아이와 업어야 하는 아기를 키우고 있었다. 단독주택 이모네 이층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이모 또래들은 육아를 벗어나고 나이를 먹어 너른 친분관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시국 이야기를 했다. (…) 5·18의 한가운데를 우리는 수수방관자로 살았다. 시장이 열리지 않았고 가게의 식료품이 떨어지자 이모와 친구들은 이웃 방부동으로 열무를 사러 갔다. 머리에 이고 온 채소를 내게도 한 다발 건네주었다. “밭에까지 와서 사는 바람에 비싸기도 하고 그나마도 얼마 없더라. 물 많이 부어 흥건하게 담가라. 이런 때일수록 나눠 먹어야지 밭이 가깝다고 우리만 먹을 수야 없지.” 나는 우리 고장의 아픔을 보면서, 핏빛으로 변하지 않는 푸른 하늘을 보고 울었고, 이런 살육은 기어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엄마였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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