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나는 광산촌의 교사였다. 학살을 알게 된 이후, 무슨 일을 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쪽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 학살극에서 내 역할은 다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 슬픔은 나를 자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비참한 슬픔’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p.17
“나는 골목에 똥이 그득한 광산촌 사택촌 끝자락의 한 자취방에 엎드려, 책을 읽으면서 여러 차례 흐느껴 울었다. 그래서 세로조판의 '청년사'판 내 첫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주오》에는 지금도 내 눈물자국이 배어 있다. 그것은 디 브라운도 말하듯, 그 책이 '기분 좋은 책'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백인의 야비한 잔혹성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우리 현실 때문이었다.” ---p.82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더 풍요로워졌는가? 그렇다고 치자. 그래서 우리가 과연 더 행복해졌는가? 풍요는 어디에 소용되는 가치인가? 풍요는 단지 풍요를 위한 것인가,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인가? 풍요가 만약 인간의 복된 삶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조국 근대화가 얼추 완수된 이 시점이라면 풍요로 인해 우리는 바랄 데 없이 행복해져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과연 우리는 오늘 행복한가?” ---p.155
“치산치수(治山治水)는 요순시절부터 쉽지 않은 일, 이명박 정부가 2년 안에 서둘러 꼭 수행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 더 음흉한 독선은 따로 없다. 정말 그대들이 살리려고 하는 게 국토인가, 그대들의 한탕 돈벌이인가, 국민들은 이미 모두 알고 느끼고 있다. 다시금, 간곡하게 드리는 말씀인데, 그 느낌을 힘으로 묵살해 얻을 이득이 결코 크지 않을 것이다.” ---p.170
“우리는 일찍이 보기로 한 것, 보기로 되어 있는 것, 그리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면서 살고 있다. 세상은 열려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보고 싶은 것,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감옥 속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누가 닫혀 있는가? 인간의 야만에 침묵으로 대응하면서 죽어가고 있는 동물들이 닫혀 있는 존재일까? 기계처럼 자폐적인 사고방식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갑갑한 우리 인간들이 닫혀 있을까?” ---p.295
“전 지구적 환경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다. 이보다 무섭고 끔찍한 일은 다시없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국경도, 이데올로기도, 부자나라나 가난한 나라도 차별하지 않고 불가항력적으로 인류에게 닥칠 재앙이기 때문이다. 어디 인류뿐일까? 이 행성에 살고 있는 1000~3000만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차별 없이 닥칠 재앙이기 때문이다.”
---p.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