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현장이다. 문제가 있는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주체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자원과 주체를 초대할 때 비로소 융합과 협력은 시작된다. 융합이 가능한 현장은 동(洞) 수준의 근린(近隣)지역이다 로컬랩이라는 현장 중심의 융합적 실행모델을 활용하여, 지역사회에 커뮤니티 기반의 사회적경제를 뿌리내리게 하고, 주민들이 직접 필요한 서비스를 주민들이 직접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게 한다. 정책형성과정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필요한 공공서비스의 생산과 전달까지 주민들이 참여하여 해결한다는 의미의 ‘공동생산자’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마을 일자리와 일거리가 생기고 마을고용이 발생한다. 지역사회에서 비로소 사회적경제(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주민들이 주도성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조직된 체계를 가지고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조달할 때, 사회권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지역을 토건의 방식이 아니라 재생적으로 혁신할 수 있다.
---「머리말」중에서
이 책은 서울(시)에서 풀뿌리에 기초하여 ‘시민 이니셔티브’를 구축하기 위해 추진되었던 ‘마을 → 협치 → 자치’ 정책의 진행 과정에 대한 맥락적인 이해를 도우면서 정책의 철학과 원리를 확인하고 실천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잘 살펴보기 위한 기록이자 성찰의 시도이다. 전국의 다양한 혁신 정책의 실험들이 잘 공유되고 풍부하게 해석되기 바라는 마음이다.
---「머리말」중에서
하지만 코앞에 닥친 “당신들은 10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이루려했고 무엇을 얻었는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지나온 10년의 경험과 성과는 “새로운 10년을 살아갈 희망과 비전을 주고 있는가?”에 답해야 한다. 그 대답을 하려고 한다. 충분하진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대답해 보려고 한다. 최소한 기록하는 심정으로 공유할 사실과 고민들을 보고해 보려고 한다.
---「머리말」중에서
민선 6기에 들어서면서 추진한 「마을계획」 정책은 공론장을 효과적으로 형성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마을계획이라는 소규모 공론장에서 동네에 사는 다양한 주민들이 서로 다른 요구와 이해에 대면하여 민주적인 소통을 통하여 함께 합의하는 과정을 촉진하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근린형 마을계획을 고민했다. 골목 수준의 범위에서 주민모임 몇 개 정도가 함께 공론장을 형성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민들의 자발적 연결을 중요하게 포착하고, 이 연결을 더욱 촉진시키기 위한 새로운 유형의 프로그램으로 마을계획을 기획하였다. 마을계획의 핵심은 ‘공론장’이었다. 하지만 동 단위로 촘촘한 복지전달망을 짜기 위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이 민선 6기 초부터 추진되기 시작되면서, 근린형 마을계획에서 행정동으로 고민이 확장되어, 결국 동 단위의 마을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결국 마을계획 프로그램은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정책에 탑재되면서 행정동을 거점으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1부│마을, 시민의 등장과 연결」중에서
미래학자들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일거리가 일반적인 노동의 형태가 될 것이라 한다. 이는 앞으로 개인마다 다양한 ‘일거리 노동’을 포트폴리오로 구성하는 시대가 다가옴을 의미한다. 하고 싶은 일거리들을 선택해서 자신의 일을 새롭게 구성하는 일거리 시대는, 가까운 거리 안에서 다양한 일거리들이 풍성할수록 실현 가능성이 높다. 즉 일거리는 직주(職住)가 통합된 조건에서 실현 가능한 노동의 형태로, 일터와 삶터가 함께 있을 수 있는 장소, 바로 마을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미래사회는 일상의 대면관계가 살아 있는 스몰 소사이어티(small society)인 ‘마을’을 상정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질 낮은 비정규직 노동으로 보이는 ‘일거리’가 마을이라는 관계망 안에서는 미래의 일자리로 그 의미가 바뀔지도 모른다.
---「1부│마을, 시민의 등장과 연결」중에서
행정이 이제껏 시민사회가 축적한 경험과 지역사회에서 발휘한 주민의 창의를 존중하고, 생활현장의 호흡과 일상의 감수성에 예민하게 반응할 때 진정한 거버넌스, 주민(시민) 주도의 협치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시민(주민)이 ‘시정(구정)의 주인’으로 관과 대등한 민간 파트너로 인정받는 것이 참여행정의 참모습이며 협치가 작동하는 전제다. 더불어 “시민이 시장이다”로 상징되는 박원순 시정철학의 핵심이 비로소 구현되는 지점이다.
---「2부│협치, 참여에서 권한으로」중에서
통상 임기 후반에 접어들게 되면, 행정의 리스크 관리가 한층 강화된다. 중간지원조직 역시 기존 행정 관행에 적응하도록 더욱 강력하게 요구받을 것이다. 마을과 청년, 인생이모작(시니어), 사회적경제 등 다양한 정책 영역에서 새로운 시민 주체가 등장하고 서로 연결되면서, 지역사회를 토대로 새로운 연대와 융합의 흐름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 시점에 행정의 관리모드가 강화된다는 것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애써 키워 온 혁신과 협치의 흐름을 크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현장의 융합 현상은 궁극적으로 ‘지역사회 시민 생태계’를 지향한다. 시민사회가 정부의 지원에 덜 매이고 우리 사회가 당면한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를 해결해 내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중간지원조직의 자율과 활력을 더욱 배가시키기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동시에 민간(중간지원조직)의 책임성을 명확히 하고, 평가의 기준과 방법도 재검토 되어야 한다. 자율성과 효과성이 함께 달성되고, 권한과 책임이 균형을 이루는 개선이 필요하다.
---「2부│협치, 참여에서 권한으로」중에서
시민의 참여는 정책 수립 과정에 그치지 않고 직접 서비스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역할로 나아간다. 이른바 정책의 수혜자와 서비스의 소비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책과 서비스의 생산 주체인 ‘공동생산자’의 지위로 진화한다. 이제 시민은 서비스의 생산·공급자와 이용·소비자 역할을 함께하는 프로슈머(prosumer)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시민이 프로슈머로서 역할을 할 때는, 그 활동의 범위는 불가피하게 ‘로컬(local)’이 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문제에 부딪치고 또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삶의 현장인 지역사회를 기본 무대로 활동을 하게 된다. 지역사회는 일상의 대면관계에 기초한 친밀한 이웃관계를 기본으로 한다. 이웃관계로부터 점차 쌓여 가는 신뢰를 기반으로 자원이 융합하고 이웃들이 협력한다. 즉, 로컬은 ‘커뮤니티’의 원리로 조직되고 작동한다.
공동생산자로서 지역사회에서 역할을 하려면, 상응한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 민간이 스스로 조달하는 자원에 행정의 자원을 적절히 융합하고, 주민이 실효적으로 집행하려면 의사결정의 권한이 동반해야 한다. 민과 관 사이에는 단순한 위수탁 관계를 넘어서는 수평적인 협력의 파트너십이 만들어져야 한다. 물론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주민들에게는 민주적인 공론장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책임이다. 다양한 주민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형편과 처지가 달라서 발생하는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절하고, 민주적인 합의를 끌어내는 일은 주민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문제를 해결하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즉, 지역사회의 필요와 주민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를 제대로 생산하고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생산·전달하는 서비스의 수준을 올리고 이용자의 체감적 만족을 이끌어내야, 비로소 서비스생산 활동이 지속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은 시민을 파트너로 여기고 시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높이도록 행재정적 자원을 동원하여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협치이고, 협치 속에서 자치의 능력이 성장한다.
---「3부│자치, 시민 이니셔티브와 마을정부」중에서
이른바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명실상부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를 서울 구석구석에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참여에서 권한으로”를 핵심 내용으로 삼고, 결정의 권한을 관(官)에서 민(民)으로, 광역에서 기초로, 나아가 생활세계의 현장인 동(洞)으로 전환시키려는 것이다. 동에서도 소수의 주민이 차지한 권한을 다수의 주민으로 확대하는 정책이다. 즉, 서울형 주민자치회 정책의 목표는 ‘권한의 민주화’다. 생활세계의 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의 출발이다.
---「3부│자치, 시민 이니셔티브와 마을정부」중에서
로컬랩(Local Lab)을 우리말로 풀자면 동네연구소다. 학식 높은 전문가들이 모여 논문을 써내는 연구소가 아니라, 동네에서 골목골목 주민들이 나서서 함께 머리 맞대고 동네의 문제를 찾아내고, 해법을 궁리하고, 당장 실행이 가능한 실천계획을 세워 실제로 실행하는 전체 과정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연구소다. 연구소 연구원들도 동네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중심이 돼서 외부의 전문가들을 초대하여 협력하는 역할을 한다. 나아가 행정의 공무원과도 협의하고 지역 내 다양한 기관과 단체들과도 긴밀한 연계를 맺으며 협력방안을 강구하는 역할을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마을현장연구소’라 할 수 있다.
“실제 삶의 현장인 마을, 동(洞) 단위 지역사회의 문제를 발견하고, 공공, 지역전문가, 마을공동체, 비영리단체, 사회적경제, 일반 시민 등 다양한 지역사회 이해당사자와 전문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마을(커뮤니티) 기반의 융합적 사회문제해결 혁신방법이다.”
---「3부│자치, 시민 이니셔티브와 마을정부」중에서
2022년 지방선거는 이 상식을 증명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다시 살아난 자치분권의 흐름은 역전될지 모른다. 2022년 지방선거가 대선과 동시에 치러지기 때문에 자칫 지방정치가 실종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동네에서 시민의 직접행동이 조직되고, 권력을 만드는 과정에 시민이 적극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물꼬가 트일지 알 수 없지만 동네 차원에서 다양한 정치실험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한 실험에서 동네가 움직이고 삶을 변화시키고, 그 실험에 시민의 참여가 보장될 때, 시민의 마음을 얻고 결국은 주도권을 잡을 것이다. 이 글의 독자들이 만들어 가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현장에서 필자도 함께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3부│자치, 시민 이니셔티브와 마을정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