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는 우라늄 원자가 아니라 ‘원자핵’의 분열 에너지를 이용하는 만큼 ‘핵발전소’가 과학적으로 정확한 표기이다. 그런데 원자력 추진으로 기득권 유지·확대만을 꾀하는 핵마피아는 ‘과학’(정확히는 공학)을 앞세워 시민들을 무지한으로 몰아붙이면서도, 정작 원자력발전소라는 과 학적으로 잘못된 표기의 수정은 외면하고 있다.
핵발전소의 구조적 문제점으로 1)가동 및 유지·보수 작업에 따른 피폭 리스크가 하청 기업 작업원에 집중하는 비윤리적인 차별적 구조, 2)정상 가동 시에도 온배수 및 대기를 통한 주변 지역의 일상적인 해양오염 및 주 민 피폭, 3)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처분 곤란, 4)중대사고에 따른 시간적· 공간적 범위의 피해 및 불가역(不可逆)적 피해 등 4가지를 들 수 있다.
이런 핵발전소의 근본적 문제점을 은폐·왜곡하기 위해 핵마피아가 상투적으로 이용하는 프로파간다를 보면 가)중대사고 이외의 사고로 방사능이 외부로 배출되어도 ‘규제치 이하의 방사능이므로 인체 및 환경에 피해가 없다’, 나)중대사고가 발생하면 ‘상정외(想定外) 사고’ 또는 ‘작업원의 미스로 왜소화하면서도 관련 학자 및 정치인 중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여러 ‘신화’까지 창조(?)하여 이용해 왔다.
즉 1)중대사고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안전 신화’, 2)핵발전 소가 입지 지역에 발전과 번영을 가져온다는 ‘지역 발전 신화’, 3)다른 발전원보다 싸다는 ‘경제성(효율성) 신화’, 4)1980년대 후반부터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아 지구온난화 대책에 기여한다는 ‘청정(clean) 에너지 신화’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해외에서 인정도 하지 않는 국내의 원자력 기술이 세계 최고라는 허무맹랑한 신화까지 창조하여 시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이는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전에 세계 최고의 안전성을 가졌다고 외쳐 왔던 일본 핵마피아의 주장과 너무 닮았다.
그러나 1) 안전 신화는 붕괴된 지 오래지만, 핵마피아는 입지 지역 확보와 주민 소송 대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안전 신화를 계속 주장해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2) 일본의 경우 핵발전소 입지로 지역 인구가 증가 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핵발전소는 자본 집약적 산업으로 주요기기 납품 및 건설 관계 이익의 대부분이 다른 지역(대도시)으로 유출된다. 다른 한편 지역 산업인 1차 산업의 피폐와 함께, 입지 지역 내 일부 하청적인 건 설업 및 관련 서비스업(숙박·교통·음식업 등)도 건설 종료에 따라 급격히 축소된다. 지역 발전 신화의 구조적 취약성, 즉 마약 중독의 ‘금단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또다시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3) 경제성을 강조하려면 폐로·사용후핵연료의 처분, 중대 사고의 피해 배상, 정부 보조금 등까지 포함한 경제성을 공개해야 마땅할 것이다. 4) 핵발전소는 ‘발전’ 시에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지만, 핵연료의 생산·운송· 송전·배전·폐로 및 사용후핵연료의 처분 등 각 단계에서 이산화탄소를 대량 배출하고 있다. 또 핵연료 제조에 필요한 우라늄 1톤을 추출하려면 약 7만 톤의 광석이 필요할 정도로 관련국의 자연 파괴 및 노예적 노동 구조가 존재한다.
게다가 이 같은 신화로도 부족하여 핵마피아는 원자력 추진을 위해 불가결한 제도적 장치로, 모든 비용을 전기요금에 전가(轉嫁)하는 총괄원가 요금 방식의 ‘전기요금제도’, 중대사고의 배상에 대비한 ‘원자력손해배상 제도’, 핵발전소 입지 지역에 보조금 등을 살포하는 ‘발전소주변지역지원 제도’를 도입·이용하고 있다. 필자는 약 30년간 일본의 핵발전소 관련 제도를 중심으로 연구해 왔지만, 국내 제도가 일본 제도를 인용했기 때문에 국내 제도의 분석이 가능하였다.
이 책의 발행은, 필자가 2018년 원자력안 전위원회 의뢰로 진행된 ‘원자력손해배상제도 개선 관련 정책연구’라는 공동 작업에 참가한 것이 계기이다. 정책연구 보고서에도 적혀 있듯이, 연구 대상인 현행 원자력손해배상제도는 약 50년 전의 시대착오적인 내용 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으며, 몇 차례의 개정도 원자력사업자의 이익만을 우선한 탓으로 법의 정합성조차 상실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원자력안전 위원회에 제출한 정책연구 보고서는, 국내의 중대사고 발생 가능성 및 중국의 원자력 확대 정책에 따른 월경(越境) 피해의 리스크도 더욱 높아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현행 제도의 근본적 개정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2019년 10월 말 현재 극히 한정된 부분의 개정법(안)조차 정치적 이해 대립 때문에 국회에서 심의되지 못한 채, 현행법이 실효성을 상실한 상태로 무려 약 18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의 목적은 국내 원자력배상제도의 바람직한 수정과 국제·지역 배 상책임협약의 가입 또는 도입을 통해, ‘피해자 구제와 사고억지’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 설계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아울러 법경제적 분석같은 제도경제학은 다른 제도에도 적잖이 적용되고 있 는 만큼 이 책이 여러 분야의 연구자로부터 많은 비판 및 교시(敎示)를 받아 향후의 연구에 반영할 수 있게 된다면 더없는 행운이 될 것이다.
---「작가의 말」중에서